300년 동안 예술가를 후원하고 대접하는 가치를 전하다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는 말이 있다. 철학자 세네카의 명언이다. 많은 예술가에게 자연은 영감의 원천이자 주 재료가 된다. 모네가 정원을 보며 '수련'을 그릴 때 조선시대 예술가는 금강산으로 향했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많은 시인, 화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이 되었다. 살면서 꼭 방문해보고 싶은 명승지로 여겨졌고 많은 문학, 그림 등 예술 작품이 남겨졌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여행객, 예술가들이 모여든 집이 있다. 강릉에 있는 '선교장'이다. 선교장은 세종대왕의 형님 효령대군 집안이 터를 잡은 곳이다. 당시엔 대문 앞까지 경포 호수여서 이곳에 오려면 배를 타고 들어와야 했다. 경포호를 배다리로 만들어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선교장(배 선, 다리 교)이다.
선교장 집안은 "내가 가진 재산을 나누지 않으면 하늘에서 나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과 재산을 나누고 상생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들른 여행자들에게 음식, 옷, 머무를 공간, 심지어 노잣돈까지 후하게 대접했다. 그래서 몇 달씩 길게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가치관은 일제 강점기에 국가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집안의 선대는 교육의 부재로 우리 민족이 힘들어졌다는 생각을 갖고 동진학교를 세웠다. 많은 독립 운동가가 동진학교에 출강해 국어, 수학, 한문, 영어 등을 가르쳤다. 또한 독립 운동가에게 후원을 하며 김구 선생님께 독립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님께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글자 세 점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글자, 대원군 글자 등을 선물 받았다. 선교장 내부 박물관에서 300년 동안 사용되었고 소장된 유물 300점을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태극기, 광해군 하사품 말안장, 추사 김정희의 현판, 조선시대 사용됐던 다기, 가구류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선교장 본채에서는 오르간 연주가 있다. 집안의 가치관을 이어받아 선교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문화예술적 경험을 대접한다는 취지로 진행한다. 원래 오르간이 있던 자리는 아니지만 오르가니스트 한지윤 씨가 이곳의 문화예술 행사를 주관하면서 설치하게 됐다. 열화당에 설치된 오르간 연주를 집안사람들이 머물렀던 공간에 앉아 감상할 수 있다. 클래식, 재즈, 영화 OST, 가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곡된다. 연주 중간엔 새소리가 곁들여지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화음이다. 고즈넉한 한옥과 웅장한 오르간 소리, 열화당 뒤로 펼쳐진 소나무 경치 등 색다른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한다.
사실 많은 여행객이 방문하는 시간대는 아니다. 때문에 '오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자리가 꽉 채워진다고.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선교장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선교장의 가치관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옥에서 예술과 자연을 함께 경험하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300년의 역사 동안 많은 예술가가 거쳐간 선교장에서 새로운 문화예술 경험을 원한다면 방문해 보길 권한다.
열화당의 오르간 연주
- 시간 : 수요일 오후 2시 30분 (우천 시 취소될 수 있으니 확인 필요)
- 장소 : 강릉 선교장 내 열화당
- 입장료 : 공연 관람료는 없음 / 선교장 입장료 5,000원 (강릉시민 무료)
위치 :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문의 : 033-648-5303
홈페이지 : https://knsgj.net/
휴무일 : 설날, 추석
이용시간 : 하절기(3~10월) 09:00~18:00 / 동절기(11~2월) 09:00~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