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oW Culture : 이우환 공간
'점'과 '선'으로 유명한 이우환은 1968년경 시작한 일본 '모노화' 운동의 중심적인 이론가이자 작가, 평론가입니다. 1969년 평론 사물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사물에서 존재로>라는 평론을 통해 등단하여 타자 배척과 '나' 중심의 근대적 사고에 대한 의문을 갖고 모노화의 중심 이론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우환의 예술관에서 '관계'는 굉장히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그의 그림이나 조각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주위 공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울려 퍼지는 공기이고 장소'이며 작품은 대상 자체가 아닌 ' 관계에 의해서 열리는 여백'을 의미합니다.
있는 그대로 사물을 재제시하고, 작품에 개입하는 여백과 공간 등 다른 여러 요소들과의 교감, 즉 '관계'를 통해 사물을 '보는 것'의 의미를 확장합니다. 다시 말해 물질성만을 강조하지 않고, 작품을 봄으로써 다른 세계로 연결되며, 그 과정에는 보는 '행위(참여)'와 함께 '시공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거죠.
이우환에게 있어 여백은 생성과 소멸의 장이며, 단순히 비어있는 곳이 아닌 사물과 공간이 서로 강력한 에너지를 반향 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곳입니다. 그러한 가치관은 작가의 작품에는 물론 관람객들이 작품과 상호 작용하길 바라는 그의 전시 공간에도 투영되어 있습니다.
이우환 공간은, 일본 나오시마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이우환 개인 미술관이며 이우환 작가가 직접 입지 선정부터 건축 기본설계와 디자인을 한 공간입니다. 작품 20여 점을 기증하고 현장에 세 차례 방문하며 마감재, 집기, 조명에까지 세부 설계와 작품 한 점 한 점의 섬세한 설치에 작가의 무한한 열정을 담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우환 공간에 대해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어 타 미술공간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고 이야기하며, 작품 나열 및 전시의 목적을 넘어 공간과 작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함께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이우환 공간은 이곳이 작가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무대라고 전합니다.
하나의 막이 끝나고 그다음 막이 전개되는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좁은 복도가 있는데, 이는 한 무대(전시장)에서 장면(작품)을 보고 사유한 후 씻어버리기 위한 일종의 여백 공간으로, 새로운 것과 만나도록 공간구조가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처럼 미니멀하면서도 디테일이 섬세한 이우환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층을 연결하는 긴 나무 계단이 독특하게 전면 유리 정면을 따라 위치해있어서 이동하는 동안에도 야외 설치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2층 옥상에서 들리는 에밀 종소리는 희미하지만 작품에 집중하는 관람객들에게 미묘한 울림을 더해줍니다.
1층에서는 작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기존의 물질들을 중재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깨진 유리 위에 놓인 돌의 <관계항 : 지각과 현상>, 그림이 그려지는 바탕재로서의 역할을 거부한 <물(物)과 언어>, 눈이 아닌 몸으로 체험하는 지각의 대상인 미술로써, 직접 문 사이를 지나며 관객이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며 시간의 경과를 느낄 수 있는 <관계항 : 좁은 문> 등 8점의 작품이 있습니다.
2층에는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시리즈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점과 선을 이용한 선생의 대표적 회화 작품으로 선의 시작과 끝점으로 생성과 소멸까지의 과정을 담은 <선으로부터>, 그려지는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관계 짓고자 하는 <점으로부터>, 혼란의 시기에서 탄생된 <바람과 함께> 등 13점의 작품이 있습니다.
"내게는 창조자라는 인식이 없고 내 작품은 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창조'라는 것은 작가가 생각한 대로 완결을 시키는 것이니까, 언제 어디서 누가 보나 다 같은 것이라야 한다. 내 작품은 공간이나 장소에 따라 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창작이나 창조가 아닌 '재제시'이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서 각기 다른 형태가 되어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면, 그것을 철저히 추려 정리하고 정제한다. 후에 내 손을 극히 일부만 거치도록 하여 나의 숨결이 느껴지도록 재제시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창조가 아니라 있던 것을 다시 제시하는 것으로 일종의 '괄호 넣기 또는 판단 중지'이다. 그럼으로써 현실이 다시 보인다. 예술은 그래서 창조가 아니라 재제시에 불과하다고 본다." - 이우환
이우환 공간은 관람자에게 열린 상황을 '제시'하여 세계 내의 존재임을 인식하게끔 하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입니다. 이우환 작가가 직접 기초 설계 및 디자인을 하며 목표하고자 했듯, 눈 바로 앞에 보이는 작품과 공간을 넘어 물질 사이의 관계, 작품과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 그리고 관람객 사이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죠.
이곳에서 우리는 채우기보다 여백을 감상함으로써 미술이란 무엇인가 사유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사진 하단 표기 참고
-부산 시립 미술관
-https://www.archdaily.com/894288/space-lee-ufan-kaga-architects-and-plan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