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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Oct 03. 2021

너는 나를 언제까지 괴롭힐래?

모래알 같은 존재의 번뇌를 이해해 주지 않아도 이제는 괜찮다

호적과 주민등록에 나이 한두 살 많거나 적게 등록된 이가 적지 않다. 이름도 틀리게 올라간 채 한평생 살거나 심지어 자매의 위아래가 바뀐 채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일상에서 “호적이 잘못되어서”라는 말은 관용구처럼 쓰였다. 거짓으로 나이를 속이는 이가 많아서 실제로 호적이 잘못된 이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동급생 중에 두세 살 많기도 하고 한두 살 적은 친구도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호적에 등록된 나이는 명예퇴직이나 국민연금과 개인보험 등을 받을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는 호적에 실제 나이보다 한 살 적게 기재되었다. 누구의 실수로 잘못되었는지 부모님에게 확인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잘못된 호적으로 조금씩 상처 받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동네 친구 때문에 학교에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 동네 친구는 실제 나이로 나와 갑장이고 학년으로는 1년 선배였다. 나는 실제 나이보다 호적에 한 살 늦게 등록되어 후배들과 학교에 다녔다. 친구가 동네에선 실제 나이를 인정해 친구지만 학교에선 친구라고 해서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실제 나이가 같은데도 선배라고 해야 하는 그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선배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동갑 친구를 보면 피해 다녔다.

  

나의 지인은 형하고 생년월일이 뒤바뀌어 형 생년월일로 아직도 살고 있다고 했다. 지인은 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 1·2등을 했음에도 은행에서 두 살이 많다는 이유로 취직을 거부당했다며 아쉬워했다. 은행에 입사할 수 없어 공장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삶이 순탄하지 않아 속상해했다. 지인은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입사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더 많은 것을 손해 보고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며 마음으로 인생을 배운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손해 보는 만큼 마음은 더 넓어진다며 잘못된 호적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며 순응하고 살아간다고 했다. 

  

청춘 시절에는 한두 살 나이 차이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잘못된 호적의 족쇄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살 적게 되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는 해결할 수 없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나 같은 경우 호적이 한 살 적게 되었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말할 수 없는 고민으로 가슴 아파했다. 누가 호적을 바꾸어 놓았을까? 누구의 잘못으로 이토록 아파해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친구에게 호적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아버지 어머니를 무식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실제 나이보다 한 살 적게 되었다는 현실에 억울해하며 오십 년을 넘게 살았다. 하지만 모래알 같은 존재의 번뇌를 이해해 주지 않아도 이제는 괜찮다. 모래처럼 태양과 비바람에 전신을 내주며 강하게 담금질하는 이 굴레에서 강해지고 싶었다. 모래알의 존재처럼 파도에 휘말리며 용서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숨어들었다. 하찮은 모래알이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소중한 삶은 있다. 

  

평생 아파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생각을 바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한 살 적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한 살 적은 멋진 친구들이 있어서 고맙다고···. 이제는 나의 인생을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어 안으려 한다. 동창들보다 한 살 많아도 우린 친구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다. 여태껏 바로 잡지 못하고 허용했으면 과거의 괜한 것들에 발목 잡히지 말고 편하게 살아야겠다. 이 또한 모든 게 자기 복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면 한 살 적은 친구들이 아니라 추억을 함께한 반갑고 소중한 얼굴이다. 숫자 하나에 일희 일비 하지 말고 지혜의 이력에 숫자 하나 더 하는 게 삶을 더 풍성하게 사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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