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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Aug 19. 2023

좋은 평 먼저, 나쁜 평 먼저? <오펜하이머>, 놀란



https://youtu.be/oSqK_v6zPoM


개봉 전부터 '바펜하이머' 밈을 생산하며 초유의 관심을 받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가 드디어 국내 개봉했다. 이 영화를 위해서 새로 만든 비율의 아이맥스 필름을 사용했다는 사실과 놀란 감독답게 CG 없이 최대한 모든 신을 실사로 촬영했다는 사실이 <오펜하이머>에서 대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든다. 먼저 보고 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아이맥스 화면 비율은 만족스러웠고, 양자 역학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들은 꽤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 대한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여러 상반되거나 일관된 진술과 역사적 사실을 통해 스토리에 생명을 불어넣은 전기傳記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핵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서 원자 폭탄 개발을 전두 지휘한 물리학자이고, 후에 수소 폭탄 개발을 반대하다 정치적 싸움에서 몰락하게 되며 당시 소련의 스파이를 색출하는 매카시즘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그가 맨해튼 계획 이후 겪게 되는 1954년 비공개 청문회(오펜하이머 청문회)와 그의 연관인물 루이스 스트로스의 1959년 인사청문회 장면과 함께 시작된다. 본격적인 스토리는 그의 대학 시절부터 짚으며 진행된다.


<오펜하이머>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오펜하이머의 생애는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오펜하이머가 교수로서 성장하여 맨해튼 계획을 지휘하게 되는 시기, 여러 과학자들을 통솔하며 트리니티 실험을 성공으로 이끄는 시기, 핵폭탄의 위험성을 깨닫고 붕괴하며 죄책감을 갖는 시기다. 이 큰 줄기를 쭉 보여주며 중간중간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와 스트로스의 공개 청문회가 교차 편집된다. 또한 극 중 오펜하이머에 대한 적개심과 의심을 표현하는 스트로스의 시점視點은 흑백으로, 오펜하이머의 시점은 컬러로 표현되며 오펜하이머의 내부 시선과 외부 시선에 차이를 둔다.


또 다르게 이 영화를 세 갈래로 쪼개자면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을 주도하는 시점時點,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 시점, 스트로스의 공개 청문회 시점으로 나눌 수 있겠다. 감독의 전작 <덩케르크>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1시간, 1일, 1주일의 시간의 압축을 달리 하며 극 중 시간선을 컨트롤했던 <덩케르크>와 달리 <오펜하이머>는 다소 기교를 줄였다는 감상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킬리언 머피를 등장시킴으로써 반전처럼 시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시간의 조밀도가 다르다는 느낌을 확실히 전달한 <덩케르크>와는 다르게 <오펜하이머>에서의 세 시점 차이는 단순한 교차로 느껴진다. 스트로스 시점의 흑백 장면들과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 압박 장면들을 교차하며 넣은 것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원동력 제공과 스릴감을 위한 선택처럼 보인다.


내가 이 영화에서 먼저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세 단계로 구분한 것은 확실히 각 단계마다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를 따라가며 그의 입장에서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 관객은 오펜하이머의 교수 시절에는 성장과 두근거림을, 트리니티 실험 중에는 긴장감을, 그 후 청문회로 이어지게 되는 맨해튼 계획 성공 이후 시점에서는 고뇌를 느끼게 된다. 오펜하이머에게 이입하는 관객이라면 이 세 감정선의 변화가 시간을 이용한 스릴보다 크게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트리니티 실험 성공까지의 상승하는 분위기와 그 후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까지의 낙차가 관람 포인트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핵무기를 개발한 그를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는 제목인데, 영화에서 이 비유가 직접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를 제작하며 J.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다루기로 한 것은 오펜하이머가 그에게 매우 입체적이고 모호한 인물로 느껴졌고, 그는 항상 그러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독의 발언을 생각하면 우리는 오펜하이머의 다층적 면모에 집중하며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설명하고자 그의 생을 짜깁기하는 각본을 충실히 따라가야 한다.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 J.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해 대략적으로 '공부'해 가야 한다는 평은 이런 부분에서 기인하는데, 이 인물에 대해 선행 지식이 없다면 영화 내내 들이닥치는 수많은 인물들과 교차 편집을 팔로업하는 것도 벅차 오펜하이머의 심리에 충분히 몰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펜하이머의 입장이 되어 보길 바라는듯한 이 영화를 즐기기에는 뇌가 과부하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펜하이머>는 전기 영화로서는 굉장히 잘 만든 영화다. 다층적인 행보를 보여 온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설명하고 그의 신발을 신어볼 수 있도록 하는 전개는 아주 탁월하다. 이전의 다른 SF영화들처럼 화려한 설정과 픽션으로 관객을 홀리지는 않지만 이런 전기 영화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상위의 스토리다.

마지만 신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다가오는 스트로스를 뒤로, '이미 (재앙이)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하는 오펜하이머의 얼굴은 스트로스와의 싸움으로 인해 그 개인에게 닥칠 몰락을 예감한 것처럼 보인다. 코브와 사이토의 대면을 시작으로 하는 <인셉션>도, 우주로 떠나기 전 받은 STAY라는 메세지가 사실 주인공이 보내온 것이었다는 <인터스텔라>도 그러하듯, 스토리를 관통하는 아하 모먼트는 놀란 감독이 배열해 보여주는 캐릭터의 당초 각오와 그에 따른 결과의 나란한 이해에서 온다. 첫 구슬과 마지막 구슬을 같은 것으로 꿰는 놀란의 방식은 늘 그렇듯 관객을 기분 좋은 충격에 빠뜨린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마지막 시퀀스에서 드러내주는 오펜하이머의 예지적 대사가 '놀란 답다'.


전기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상 <테넷>, <인셉션>, <인터스텔라>처럼 물리 이론과 설정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시간에 역동성을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메멘토>처럼 시간의 배열을 이용해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을 거둔 듯하다. 각기 다른 시간대 장면의 교차 편집은 사건의 진상에 점차 가까워지는 스릴을 준다. 한 마디로 플롯의 힘으로 승부하는 영화다. 펜에 힘을 주고 심혈을 기울여 크리스토퍼 놀란이 해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 대해 풀어낸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어떻게 느꼈을지를 상상한 놀란의 시각을, 놀란의 방식대로, 공들여 차근차근 공유하는 느낌의 영화다. '극작가'로서, 펜을 들고 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스킬을 보여준다. 당시의 오펜하이머를 느낄 수 있는 총체적 감각의 전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놀란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듯 보여-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았으니 당연한 일이다-그에 대한 스토리가 중립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과학자로서 실험에 성공하는 것과 그 실험의 결과물에 연관된 윤리적 선택의 압박 사이에서 '당신들이라면 어땠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3시간이라는 압도적으로 긴 시간 동안 오펜하이머의 혼란을 지켜본 관객으로서는 답변이 비슷할 수밖에 없게 되긴 한다. '아무래도 그랬겠지….'


Sci-Fi 장르는 설정과 상상력도 장르를 사랑하게 되는 주요한 요소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또한 장르를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공상과학 영화는 아니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것이지만, 당시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물리 이론을 이용해 상상도 못 할 위력의 폭탄을 비밀리에 만든다는 일은 공상과학 설정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한결같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윤리는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특히나 이념이 충돌하던 시기에 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일어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당시 미국으로 돌아가 함께 고민하게 된다. 놀란이 모호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 또한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제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기를 즐겨왔기 때문이다. 멀리서 역사적 인물을 관조적으로 평하는 것보다 가까이서 인물을 파헤치기를 권하는 시선. 그에 따라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드는 관객의 지적 욕구를 채울 질문 제공. 핵무기, 이념 대립, 정치 싸움과 같은 거대한 문제들은 사실 모두 인간의 이야기라는 말. 인본주의적인 이런 물음은 사람들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또 다른 요소인 듯하다.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과 오펜하이머. 그로브스 장군은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을 이끄는 것을 매우 지지했다.



좋은 평 많이 했으니 이제 아쉬운 소리를 해야겠다. 먼저 '그래도 크리스토퍼 놀란인데'하며 전작들과 같은 신선한 설정을 기대하고 오는 관객들에게는 좀 아쉬운 영화가 될 것이다. 놀라움이나 통쾌함 같은 것을 바라고 오는 이 관객들에게는 특히나 긴 상영 시간을 버틸만한 끈기가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첫째로 전기 영화다. <덩케르크>의 기조와 비슷한데, <덩케르크>나 <이미테이션 게임>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좀 더 만족할 것이다.




아까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하는데, 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 단언하자면 아니다.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모든 것에 수요-공급 곡선을 적용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과학 연구라고 피해 갈 수는 없다. 지금도 가장 주목받는 연구는 가장 필요하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조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위해 연구하고, 이 지점에서 편향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해석하는 우리의 태도라도 이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러시아의 첩자였는지 아닌지를 떠나 핵무기 발명을 지휘한 연구자로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놀란은 오펜하이머를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면서 그가 고뇌하는 모습을 통해 그를 대변한다고 느껴진다. 미지근한 스탠스는 없고, 오펜하이머가 느끼던 책임감을 분담할 만한 인물들을 보여주며 오펜하이머는 단지 죗값을 겸허히 치르는 과학자로서만 그려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덕질'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 제작자에게 윤리적 파장을 고려한 스토리를 쓸 것을 바라는 사람은 이 부분에서 아쉬울 것이다.





또한 진 테틀록(플로렌스 퓨 분) 캐릭터를 그냥 오펜하이머의 치부와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 자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준 부분은 비판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노출과 뻔한 연출이었다.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신선하지도 않았다. 진 테틀록은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행보에 영향을 미치고 공산주의에 대한 지적 욕구를 일으킨 인물이 아니라 그저 내연녀로만 보였으며 진과 키티(에밀리 블런트 분)를 경쟁 구도로 보이게 만든 것 또한 진부했다. 한국에서 <오펜하이머>는 15세 관람가로 개봉되었지만 아이들 손 잡고 관람하기에는 좀 많이 부적절한 장면이다.



<오펜하이머>는 잘 만들긴 했지만 아주 달달한 영화는 아니다. 전기 영화의 고루한 문법에서 탈피한 영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덩케르크>나 <이미테이션 게임>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또 의외의 추천 대상이지만,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추천한다. 트리니티 실험 성공까지 달려가는 연구진들의 모습에서 많은 얘깃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출연진들의 연기력을 보고 싶다면 당연히 추천한다. 누구 하나 거슬리는 연기자 없이 강약을 맞춰가며 연기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또 중요한 정보로는, 쿠키 영상은 없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해서는 위키백과만 읽고 가도 충분하다. 영화 보고 나면 배고프니 밥 꼭 먹고, 화장실 들렀다가 영화관 들어가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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