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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Oct 30. 2023

그대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스포 있음


https://youtu.be/RURusloLi-s?si=d7ESKWklEnq621xz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라는 소식에 개봉 전부터 굉장한 관심을 받았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드디어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은퇴 선언을 번복했지만 어쨌든 이 영화가 그가 은퇴를 결심할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들어진 것은 맞다. 다만 국내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나는 두 의견 모두를 듣고 싶다. 그에 앞서 그냥 내 리뷰 하겠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는 사라져 버린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탑으로 들어가고, 왜가리가 안내하는 대로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통과하는데…!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시놉시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감독님은 어떻게 살 건데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많은 설정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경험과 겹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무위키 생애 문서 페이지만 읽어도 무슨 얘기인지 알 것이다. 검색하러 가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나 군용 물자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전란을 피해 도쿄에서 우츠노미야시로 피난을 갔다가 후에 도쿄로 돌아오며, 그의 어머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릴 때부터 결핵균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자주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손자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앉혀 놓고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한 감상을 준다. 극 중 대할아버지와 주인공 마히토 모두에게서 감독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다. 대할아버지는 지금 손자에게 화두를 던지는 현재의 미야자키 하야오인 것이 분명하고, 마히토는 아직 인생을 쌓아가는 시절의 어린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많은 설정을 따온 것이 보인다. 한 작품에서 두 모습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볼 수 있는데, 이게 이상하지 않다. 한 사람의 일생을 둘로 나눠 뽑아낸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둘로 나눠 녹여 영화를 만든다면 이 영화의 대할아버지와 마히토가 나올 것이다. 감독은 영화 밖에서 존재하면서 영화 안에 두 명의 캐릭터로 존재한다. 이미 생의 많은 부분을 보낸 감독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다음 세대들에게 '그래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을 던지는데 작중 배경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이다. 여기까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 이렇게 살았습니다'다. 아니, 그래서 무슨 말하고 싶은데요?



일단 영화 얘기 할게요



이 영화에서는 다른 세계 (탑 안에서 연결되는 세계)가 존재하는데, 이 이세계에서는 마히토가 온 현실에서의 상태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멀티버스에서, 인물들은 다른 시공간에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이렇게 중첩되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 배경을 이용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간, 정확히 말하면 나이의 제약 없이 캐릭터를 움직인다. 현재와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캐릭터들과 만나 모험한다는 이 스토리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이용한 시간 여행이 떠오르게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세계라는 개념과 함께하면서 더 복잡해진 양상을 띤다. 복잡해진 것은 설정만이 아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은유 또한 그렇다. 게다가 중간중간 감독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해 온 전작들에 대한 이스터에그가 들어있다.




시놉시스에 이어 가며 영화 이야기를 하겠다. 탑 바깥의 현실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물자는 부족하고, 부잣집에서도 담배와 설탕은 아주 귀한 물건이며, 마히토의 아버지는 전투기 부품을 생산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쟁 속 가난에 시달린다. 탑 안은 어떠한가? 여기에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 선과 악의 경계는 흐려져 있다. 마찬가지다. 제로센 전투기를 상징하는 듯한 펠리컨들은 새 생명인 와라와라를 잡아먹고, 불꽃을 쏘아내는 소녀 '히미'는 펠리컨을 공격한다. 펠리컨은 우리도 와라와라를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이며, 대할아버지가 만들어낸 이 탑의 세상에 억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환경-전쟁-과 희생에 대해 대변하는 것이다.




주인공 '마히토'와 생명을 상징하는 '와라와라'




마히토는 상실을 겪은 슬픔에 시달리는 소년이다. 마히토에게 갑자기 바뀐 환경과 가족 구성원, 학교 아이들 같은 것들은 버겁다.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 속에서 마히토는 세상을 어둡고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염세적인 마히토를 집안의 어른들은 따뜻하게 감싸준다. 처제와 재혼한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의 동생을 새어머니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꺼리던 마히토는 결국 새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며 그를 받아들인다.

탑 안의 세상은 대할아버지가 쌓고 있는 몇 개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탑의 안정성에 그 존부가 달려 있다. 탑을 움직여 쓰러지지 않으면 세상이 무사한 것이다. 마히토를 후계자로 점찍고 있던 대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탑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지을 것을 권하지만 마히토는 이를 거절하고, 이때 탑의 세상 속 또 다른 계층인 앵무새가 탑을 무너뜨려 이세계는 무너지게 된다. 마히토는 돌아가기 전 이세계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친어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인 '히미'와 인사한다. 마히토의 친어머니는 화재 사고로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히토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과거 시점의 현실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마히토는 무사히 새어머니와 함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세계로 향한다.



탑의 시공간을 통해 만난 어린 엄마 '히미'와 '마히토'




미야자키 하야오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할아버지는 탑 안의 세상을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결과물로 보여주며 마히토에게는 악의가 없는 세상을 만들라고 말한다. 과연 이 세계는 썩 잘 만들어진 세계라고 할 수 없다. 지난한 삶과 죽음 사이, 피곤한 선과 악의 판가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해야 하는 세계는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너무나 고되다. 이는 탑 바깥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나날들만이 앞으로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사실은 참담하고 무망 하다. 그러나 마히토는 친구를 만들고, 싫어했던 새엄마를 찾고, 소중한 과거인 히미를 지킨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몰락 틈에서 자신의 세상을 붙잡아 나간다.

이 무력하고 두려운 세상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소중한 것을 끌어안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상실과 슬픔, 염세는 파괴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것들이 있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애정과 희망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이 우리를 내일도 살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금까지 기성세대는 세상을 악의가 섞인 상태로 쌓은 탑처럼 만들었지만 마히토의 세대, 즉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는 악의가 없도록 정성 들여 우리의 탑을 쌓으라 말하는 듯하다. 이 치열하고 지난한 세상에서 절망은 연속되더라도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최선을 다해 우리의 세상을 지켜내라고 말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로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이 여기 있다고. 여기에는 막중한 책임도 부담도 없다. 딱 자신이 살아갈 세상만큼의 질문이다. 이 어지러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즉 이거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래서…





먼저 일본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거장 감독이 이런 도전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경탄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토록 끈질기게 풀어내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 구성은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들의 것들은 이 설정의 파편이었다는 듯 거대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세계관의 총망라, 혹은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대할아버지가 쌓아온 탑 안의 세상은 그간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을 만들면서 살아온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컫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야자키 하야오 방식의 멀티버스라니, 충분히 매력적이다. 결말부 어머니의 메시지는 왠지 모르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네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이 우주를 선택했다든가 하는 것.

작화 또한 훌륭하다. 초반부 어머니의 병원으로 향하는 마히토를 덮치는 불꽃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마히토의 꿈속, 무너지는 이세계, 지브리 특유의 배경화를 특히 인상 깊게 보았다.

조금 꺼림칙하게 보이기도 하는 집안 할머니들에 대한 표현력은 인간 군상에 대한 집요한 관찰의 결과 같다. 결국에는 이 할머니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스토리는 너무 감독 의도대로 잘 넘어가고 싶게 되어서 얄미울 정도다.

요네즈 켄시가 참여한 OST, 아이묭, 스다 마사키, 기무라 타쿠야를 적극 활용한 성우진 역시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는 선택이었다. 성우가 본업이 아닌 이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몰입감이 깨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잠시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새엄마 '나츠코'와 집안 사용인 할머니들.






그러나…




다만 상처한 아버지가 아내의 동생과 결혼한다는 설정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게다가 세계 제2차 대전 시기라는 시간적 배경의 일본 부잣집이라는 설정은 국내 정서상 반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기만으로 느껴질 가능성. 충분하다. 자전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이니만큼 미야자키 하야오 개인의 인생사를 별개로 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국내 반응이 차가운 것은 감독이 일본인이거니와 군수물자 생산으로 유복한 유년기를 누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반전反戰 영화를 일생에 걸쳐 계속 제작해 왔음에도 일본에서는 매국노, 우리나라 같은 세계 제2차 대전 피해국에게는 위선자로 보이게 되는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은 작품 결말부에서 왜가리가 말하는 다 잊게 될 거라는 대사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치히로'가 모든 일을 잊게 되는 것을 끌어 와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결국 어떤 메시지를 던지든 결국은 조금씩 잊히리라는 것을 감독도 알고 있다는 표현 같기도 하다. 결코 역사를 잊으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세계의 붕괴-현실로의 귀환 부분이 매우 짧게 묘사되어, 조금 급작스럽게 끝맺어지는 바람에 관객들이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에 더해 이세계 아래층의 바다와 젊은 '키리코'가 등장하는 부분은 조금 지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는 이게 스토리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뚝뚝 끊어지는 각 장소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이 꿈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매우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걸맞은 영화인지는 관객 개개인의 생각마다 다를 것 같은 영화다. 모두의 의견합일로 훌륭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여러 의견이 나누어진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역할을 한 것은 맞다. 미야자키 하야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하면 정말 이 영화가 나올 듯하다. 그러나 너무나 개인적인 자전적 사연을 투영하고, 이야기를 다소 불친절하게 푸는 바람에 상업 영화를 바라고 왔던 대중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얻어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냥 씨네필 평론가 마인드를 버리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분석은 2회 차에 해도 충분하다. 아니면 훌륭한 유튜브 선생님들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가지고 영화의 메타포를 해석해 줄 테니 머리에 과부하 걸리도록 힘들게 보는 것보단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고 오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본인이 보기에 별로였으면 별로라고 말하고, 좋았다면 좋았다고 말하면 된다.





https://youtu.be/L39bRZMCuoM?si=fSRWAgtG6gJczX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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