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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May 03. 2023

m으로 시작해서 y로 끝나는



Melody


내가 막 성인이 될 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 진심 내 인생이 트루먼 쇼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인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집합이다. 내 연약한 멘탈을 흔들어줄 다른 개인적인 일들이 이미 충분히 많이 일어났으므로 당시 나는 현실 도피를 위해 하루 14시간씩 자면서도 깨어 있는 동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줄 아는 인성파탄자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0시쯤, 우리 집 위층에서 어떤 장르인지도 알 수 없는 개미친 음악을 최대 볼륨으로 틀어댔다. 나는 그게 밖에서 들려오는 호박나이트 홍보 차 노랫소리인 줄 알고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가 문득 이딴 멜로디가 나이트에서 나올 리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헤비메탈충 이웃사촌과의 친목질을 통해 단련한 스킬로 웬만한 프로그레시브 장르는 그냥 넘기곤 했는데 그런 음악은 난생처음 들어 봤었다. 지구는 다 망했고 우리는 좆됐다는 게 영상의 내용인 컨템퍼러리 비디오아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도적인 불쾌한 사운드 비슷했다. 아무튼 그때 화난 나는 '나 인생 좆같고 지금 싸가지 없음'을 좀 보여주고자 막대기로 천장을 쿵쿵 쳤다. 몇 초 후 위층은 드디어 그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음악을 껐다. 방금 쓴 문장이 이 썰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날 나는 사람 죽이고 싶어 하는 조현병 환자를 자극한 것이다.


Malady


우리 집 위에 정신질환자가 산다는 정보는 전혀 몰랐던 우리 가족은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로운 주중을 맞이했다. 나는 수능 끝난 고삼이고 딱히 할 것도 갈 곳도 없는 히키코모리였다. 집에 틀어박혀 엄마가 해주고 간 밥도 안 처먹는 불효를 저지르면서 거실에서 코난 정주행이나 했다. 혼자 소파에 쭈그려 앉아 첫 끼를 먹으려던 때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나며 베란다 창이 깨졌다. 마찬가지로 밤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몇 분 동안 베란다에 나가길 주저했다. 로코 드라마나 프듀 같은 거 보다가 유리창이 깨졌으면 덜 무서웠을 텐데 나는 코난 스산한 에피 중독자였다(도서관 에피 추천한다). 유리가 깨질만한 현실적 이유들을 떠올리며 베란다에 나가 보니 창의 위쪽 가장자리가 크게 깨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강풍이나 새 충돌 같은 이유는 아니었으며 기분이 싸해 그날은 엄마가 일찍 들어오기를 바랐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엄마와 나 둘 뿐인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아직 잠에서 깨지도 않아 안 돌아가는 머리로 나와 엄마는 둘 다 방문객이 적당히 하고 돌아가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일어날 때까지 몇 번이고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발로 차댔다. 엄마가 왜 저런대, 하며 현관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잠에 젖어 잊고 있었던 어젯밤의 기억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아파트 관리 서류에 확인 서명을 받는 사무소 직원은 이렇게 일찍 와서 이렇게 집요하게 나오길 재촉하지 않는다. 열어선 안 된다는 직감이 퍼뜩 들어 엄마를 붙잡으려 뛰쳐나갔지만 엄마는 이미 문을 열고 나가 있었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반쯤 계단을 올라가 위층의 누군가에게 왜 그러시냐고 묻는 엄마의 하반신이었다. 위층의 그가 우물거리다 말했다. 딸 있죠?


나에 대해 묻자 정말로 화가 난 엄마는 조금 날 선 말투로 왜요? 물었고, 그 남자는 갑자기 분노했다. 하지 말라고 하세요.(뭘요?) 하지 마시라고요. 좋은 말로 할 때, 뭐 그런 말을 하다 욕하며 뒤를 돌아 다시 내려오려는 그 사람의 손에서 엄마는 어떤 물건을 봤고 소리 질렀다. 악 칼 들었다! 고. 후에 확인한 우리 집 현관문에는 남자의 발자국과 선명하게 칼로 엑스자를 그어댄 흔적이 있었다.


Misery


그리고 엄마는 출근했다(아침에 칼 든 남자한테 협박받고도 출근하다니 대단하다). 나는 혼자 집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판단해 보려 애썼다. 그때까지도 나는 위층의 그 남자가 내가 천장을 친 것에 대한 리액션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용한 집안에서 앉아 있으니 위층의 소음이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예민해진 귀를 기울이다 그건 기분 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남자는 일부러 쿵쿵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고, 창문을 열고 잠시 조용히-아마 이때 그도 아래층 소리를 들으려고 했던 것 같다-있다 다시 매우 화난듯한 걸음으로 바닥을 찍어댔다. 그의 행동을 깨닫고 두려워진 나는 소파에 이불을 둘러싸매고 웅크려 앉았다. 상황을 가족에게 전했지만 엄마는 딱히 별 일 아니라는 듯 대응했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별 일 아니라고 나도 자기세뇌 해보려던 중 내 눈에 어제 미처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깨진 유리창이 들어왔다. 해가 밝자 깨진 모양이 정확히 보였던 것이다. 딱 봐도 위층에서 긴 물건을 휘둘러 일부러 깬 게 분명했다-보통 아파트 위아래층 창틀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 보면 그가 얼마나 큰 의지로 우리 집의 유리창을 깼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의 일도 그 남자가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든 내가 질리기도 전에, 위층에서 도어락 소리가 났다. 그 남자가 다시 나오더니, 조용히 우리 집 앞으로 내려와 한참 기다렸다. 터질 것 같은 심장으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그 남자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집안이 조용한 것 같자 남자는 화를 내며 올라가 자기 집 문을 부술 듯 닫고 또다시 돌아다니기를 반복했다. 적당히 무시하면 잦아들 일이 아니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런 행동을 반복하고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를 듣다 내가 물을 쓰거나 하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 나왔다. 나중에는 현관 도어락을 눌러대는 등 점점 대담해졌고 내가 쥐 죽은 듯 있자 이 행위 자체를 즐기는 듯 보였다.


나는 결국 이러다 미칠 것 같아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근처에 사는 친구들 중 덩치가 큰 친구들에게 데리러 와 줄 수 있느냐 부탁했다. 절대 한 명씩 오지 말고 다 같이 모여서 와야 한다고. 전화 소리도 그 남자가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최대한 짧게 말하고 끊었다. 나는 이때 이미 그 남자의 미친 집념을 믿고 있었다. 마주치면 뭐든 할 새끼라는 내 생각을 믿었다. 꼭 엘리베이터 내리기 전에 내게 알려달라는 둥 진짜 무서워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구는 나를 친구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알겠다고 답했고 나는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먼저 칼을 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안 그랬지만 나에겐 그 정도의 각오가 필요했단 말이다.

아무튼 무사히 친구들이 도착해 나는 집에서 나왔다. 집 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우선 어디 가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나는 혹시 오면서 이상한 사람 못 봤어? 물었다.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가 내릴 때 집 앞에 어떤 아저씨 있던데. 책 같은 거 들고 있었는데 우리가 내리니까 당황하면서 책 덮고 내려갔어. 다른 친구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만 봤어? 책에 뭐 칼…같은 거 끼워놓던데 설마 내가 잘못 본 거겠지. 나는 피가 쭉 빠지는 기분이 뭔지 그때 알았다.


Mentality


그 사람이 진실로 칼을 들고 날 찾는다는 걸 안 나는 다시 가족에게 연락해 경찰에 신고하리라 말했다. 안전 불감증이 의심되던 부모님은 내가 울먹이며 설명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보였다. 집에 가기 무서웠다. 퇴근 시간까지 가족을 기다려 함께 들어가는 길에도 연신 주위를 살폈다. 우리 집 도어락 비밀번호가 길어서 존나 원망스러웠다.

다음날 오전 경찰 2명이 집에 방문했다. 그때까지도 윗집은 어제와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덕분에 사건 진술하는 데에 큰 어려움 없이 지금 들어보세요 뭐 그렇게 전달할 수 있었다. 개같이 떨리던 내 목소리와 아무리 주물러도 차갑게 식는 손은 어쩔 수 없었지만 추하게 울진 않았다.

연이어 위층에 방문한 경찰은 다시 사건의 전말을 들고 찾아왔다. 혹시 이 썰을 읽으며 지금까지 위층에 그 남자 혼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나?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 그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형이 함께 있었고,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부모가 함께 살았다. 그가 골프채-나는 여기서 도구의 정체를 알아 궁금증을 해소했다-를 들고 팔을 뻗어 아래층의 유리창을 깼을 때 그는 형과 같이 있었다. 듣기로는 그 형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관심도 없었고 말릴 의지도 없는 것 같았다. 뭔 개지랄을 하든 칼 들고 어딜 자꾸 왔다 갔다 하든 모른 척했다는 말이다. 그는 벌써 비슷한 일로 여러 번 경찰서에 간 전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조현병을 이유로 다른 지역의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최근 상태가 호전되어 부모의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나와는 눈도 안 마주치던 보호자는 경찰에게 그랬다. 내가 여기 경찰서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야, 옛날엔 이렇게 대처 안 했어. 친절하게 어쩌고 도와줬는데 어쩌고.  내가 느그 서장이랑 마 밥도 먹고 다 했어 이런 건 영화 대사일 때나 웃기다.

그렇게 그 사람이 다시 정신병원으로 격리될 때까지 하루는 더 걸렸고 나는 그 밑에서 걔가 억울해 소리 지르는 거 들으며 있었다. 끝까지 걔네 아빠는 자긴 시간이 없고 번거로우니 경찰 니네가 경찰차로 아들 양쪽에 경찰 끼고 차로 왕복 4시간 거리인 병원까지 데려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경찰이 왜 그랬느냐고 물었을 때 그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어떤 전자파를 보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전형적인 조현병 환자의 발언이었다.

나는 딱히 보상받은 게 없었다. 어차피 고소해 봤자 큰 증거도 없고 실제로 내가 피를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새끼가 진심으로 칼을 갖고 집을 찾아오든 말든 처벌할 게 없다고 했다. 대충 예상은 했다. 결국 그 사람이 깬 베란다 창을 새로 갈아주는 걸로 끝났다. 사건 마무리 짓는다고 경찰과 함께 우리 집에 온 그 보호자는 창을 보고 에이 잘 됐네, 이참에 유리창도 갈고 하니까 좋죠? 이 지랄 떨었다.  돈 아까워서 싸구려 업체 썼던 거 모를 리가. 그 가족은 아들의 뒤처리를 하는 게 졸라 지겹고 귀찮은 듯했다. 이젠 내가 정신적으로 병 걸릴 것 같았다.


Mercy


계속 그 남자라고 하기 짜증 나서 그냥 걔라고 했는데 어쨌든 걔는 40살은 된 남자였다. 나는 그 아파트에 꽤 오래 살았는데, 그 가정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른 건 정말 그가 첫 범죄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정신병동에서 보냈기 때문이었다. 3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 사건이 내게 남긴 것은 오래갔다. 나는 내가 얼마나 살고 싶은지 깨달았다. 그 집은 내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게 됐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밖에서 아파트 층을 셌다. 위층의 그 방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 자주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을 상상했다. 그 사람은 책 사이에 칼을 숨기고 있다. 그 후로 나는 집을 떠났지만 이사할 때까지 본가에 가는 길에는 약간의 공포가 잔재했다. 나는 몇 년간 벽이나 천장에서 큰 소리가 나면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잠시 얼어 숨을 멈추곤 했다. 그러고 나면 가끔 몰래 화장실 가서 울었다. 슬퍼서라기보단 눈물이 나는 게 불가항력이었다. 대학에 간 뒤 자취방까지도 그가 어떠한 경로로 알아내게 될까 봐 두려웠고 혹시 퇴원한 그가 타겟을 나에서 내 가족으로 바꿨을까 봐 엄마에게 자주 아무 일 없지 물었다. 취객이 집을 잘못 찾아 도어락을 누르면 부들부들 떨며 현관문 앞에서 몇십 분을 버텼다.

이 일이 트라우마의 위치에서 벗어나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썰 수준으로 내 기억의 위계에서 하락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백 번쯤 나를 그때 그 집에 가뒀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일종의 정신 훈련이었다. 그 남자를 분이 풀릴 때까지 찌르고, 아예 처음부터 그 개 같은 노래를 무시하고 살아 보고, 그냥 한번 찔려서 그를 감방에 처넣어 보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비웃어도 봤다. 그 과정을 거쳐 기억이 너덜너덜해지자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이제 그 집의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 나는 그냥저냥 살 만하다. 내가 그 사건과 그 사회를 용서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용서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잊고 나아갈 수 있는 게 얼마나 인간에게 축복인지를 떠올린다. 그 사람은 아마 혼자 병원에 있을 것이다. 어려울 줄 알지만 그가 낫길 바란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그로 인해 내가 과거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사족

정신질환을 훅처럼 써서 미안하다.

사실 글쓰기 활동의 재활훈련인데 너무 자전적인 이야기인 듯



Metallica - the memory remains



https://youtu.be/RDN4awrpP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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