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들끓던 2002년 나는 새내기였다. 다들 중국이 뜰 거라고 했다. 어쭙잖은 과를 가느니 언어 하나 확실히 하면 길이 많을 거라고 했다. 주변 어른들의 조언이 실상과 다름을 아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경영을 복수 전공했다. 특히 남자 선배들은 그러지 않으면 대기업에 원서조차 넣기 힘들다 했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경영에는 전~혀 관심도 의지도 없었다.
중국으로 교환학생 다녀온 직후가 내 인생 중국어 실력의 정점을 찍었을 때지만 그것도 뭐 대단히 뛰어나진 않았다. 그저 남들 1년 갔다 오면 하는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제2 외국어였던 중국어를 좋아하긴 했지만 국어 시간을 더 좋아했다. 책을 끼고 사는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나름 그쪽으로 감각이 있다고 느꼈고 재밌었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생각을 정리하고, 말로든 글로든 발표하는 시간이 두렵지 않았다. 손은 못 들었을지언정 선생님이 나를 지목해주길 마음속으로 빌기도 했다.
애초부터 그게 나의 길이었을까, 호기롭게 중문과로 걸어 들어갈 땐 언제고 국어교육으로 대학원 문을 닫았다. 중국어는 이제 어디 가서 전공했다는 말을 하기가 민망하다.
이런 연유로국문학 전공자에 비해 문학적소양이나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국어 교과를 가르친다고 하면 당연히 책을 좋아할 것이고 고전 현대 막론하고 모든 문학작품을 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건 내게 늘 콤플렉스로 다가왔다.
다행스러웠던 건 중학교 국어 교과를 가르치는덴 그런 깊이가 필요치도 중요치도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담임으로서의 생활지도, 상담, 학급 운영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받았다.
나는 수업보다도 담임 업무에 더 매력을 느꼈었다. 학급신문, 반 아이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이벤트들. 아이디어 많고 열정 넘치는 젊은 여교사, 그것도 '미혼의 무자녀 여교사'에게 돌아오는 학생과 학부모의 피드백은 하트로 넘쳤다.
많은 선생님들 틈에서 차별화될, 돋보일 무언가는 그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내가 맡은 아이들이 학교를 즐거운 마음으로 오게 만드는 것.
아무튼 가르치는 일보다는 무언갈 기획하고 만들고 실행했을 때, 거기서 오는 성취감과 피드백이 나의 원동력이었고 그 일이 나와 잘 맞는다 느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사설이 길었지만 유튜브는 그러한 나의 성향을 십분 활용하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지금 나는 유튜브를 통해 나의 개인적인 욕망을 하나씩 채우는 중이다.
욕망의 첫 번째는 프로듀싱이다.
아이들과 가족의 일상을 최대한 설정 없이 찍고 있다. 카메라 감독(나)은 핸드폰 하나로 거의 모든 순간을 담는다. 그렇다고 그 영상들이 전부 업로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름 까다로운 편집자(나)의 눈을 거쳐 탈락된 에피소드도 많다. 백지에서 시작한 편집은 이제 손에 익었다. 웃음 유발이냐 정보 전달이냐의 기로에 설 때 참 난감하지만 아이들의 대화가 많은 영상은 재미 위주의 기록으로, 그렇지 않은 영상은 자막이나 내레이션으로 정보전달과 소개에 집중한다.
욕망의 두 번째는내가 주인공인 '탱준맘 다이어리'라는 코너를 만든 것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처음에는 아이들일상 사진과 채널 관련 피드만 올렸다.그러다 어느 순간 현재 소통하는 이는 아이들이 아닌 엄마이자 편집자인 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론 내 사진도 올리고 일상도 올리며 인친들과 소통하게 되었다. 어떠한 관계에서든 나를 어느 정도 오픈해야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건 진리다.
'탱준맘 다이어리'는 육아 관련 정보와 꿀팁, 제품 리뷰 등을 다루고 있으나 요즘은 거의 휴면 상태다.지난 5화에서 나는 관종임을 인정한 바 있다. 화면 가득 나오는 내 얼굴은 볼 때마다 부담이지만 그래도 가끔 관종 재질(?)을 보이고 싶을 때,이렇다 할 콘텐츠가 없을 때활성화시키고자 한다.
욕망 세 번째는 내레이션이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교과서를 읽는 시간이 있으면 내가 못 읽어안달이었다.(속으로ㅋ) 성실하게 학교 다니다가 뜬금없이 성우가 되고 싶다고 얘길 해서 엄마를 황당하게 만든 적도 있다. 하나에 심취하지는 못하고 이것저것 관심은 참 많았다.
첫 내레이션은 '천 원의 행복' 편인데 인간극장의 이금희 아나운서 분위기를 내본답시고 따라 했다가 어색해서 혼났다. 톤은 꽤 차분해서 반응이 좋았는데, 대본없이 편집하며 그때그때 생각나는 말을 녹음하니 텍스트에 아쉬움이 많다.
최근 올린 '오산 미니어처 빌리지' 편은몇 번의 경험으로 나름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무엇보다 한글을 아직 못 읽는 아이들이 나의 내레이션을 좋아해 주니 좋다.
욕망의 마지막은 글쓰기다.
딱히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유튜브를 시작하고 기록에 대한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영상이든 글이든 순간에 감정과 감성을 듬뿍 담아 남기고, 후에 다시 꺼내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유튜브를 시작으로 브런치 작가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고, 또 이곳에서 자극과 영감을 주는 많은 글과 사람들을 만난다. 유튜브 안 했다면? 도전을 안 했다면? 글쓰기는 유튜브와 함께 꾸준히 하고 싶다.
대신 욕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더 많은 욕망들이 샘솟고 나의 고마운 욕망 분출구를 통해 뻗어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