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행복은 없다
구멍 난 양말을 보고 있자니
일요일 아침, 너무 쨍하지도 흐리멍덩하지도 않은 적당한 하늘색과 은은한 봄의 내음이 좋다.
막 내린 아이스라테와 읽다만 책, 민트색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 테라스로 나갔다.
물 빠짐이 좋아 보여 고른 베이지색 야외 의자에 앉자마자 구멍 밖으로 빼꼼 나온 엄지발톱이 보인다.
스타킹이든 양말이든 유독 오른쪽 엄지발톱 부분에 구멍이 난다. 발톱을 자주 다듬어주어도 마찬가지니 신기한 일이다. 신발이 너무 딱 맞나? 내 걸음걸이가 좀 이상한가? 이런저런 이유를 찾다가 구멍 난 이 양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한다. 1회용 스타킹이나 목 늘어난 양말이람 버리면 그만인데. 이 양말은 몇 번 신지 않은, 반짝이는 펄 원사가 포인트인 아끼는 양말이 아닌가.
남편의 양말은 주로 발뒤꿈치나 아킬레스건 부분에 구멍이 난다. 신사양말은 같은 디자인을 다량 사놓으니, 구멍을 기우는 번거로움과 귀찮음보다 차라리 한 짝을 버리는 선택을 해왔다. 한 짝을 버려도 다른 것과 맞추어 신을 수 있다. 고무장갑에 구멍이 나면 그쪽만 버리고 갈아 끼는 것처럼.
오래전 젊고 예쁜 엄마가 양말 기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선 구멍이 났다고 양말을 버리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양말이든 옷이든 바지든 기우는 일은 자연스럽고 흔한 일상이었다.
젊고 예쁜 엄마의 딸은 구멍 난 양말을 버릴 것인가 기울 것인가 고민한다. 구멍 난 양말을 버리는 건 자유지만 당연하진 않다. 그럴 수 있는 여건, 환경이 주어져서다. 단지 양말 이야기는 아니다. 여러 선택지 중에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적 여유가 존재한다는 것은 감사할 일임을 안다.
살아가며 나를 둘러싼 이들의 삶을 바라본다. 평화롭던 일상에 갑자기 지독한 바람이 분다. 부부간의 불화, 자녀의 건강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등은 언제나 예고 없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마주한다. 비교적 순항 중인 나의 삶에도 불현듯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은 갈수록 커진다. 문장 맨 앞에 '아직까지는'이 붙어야 할 이유다.
층간소음 스트레스로 1층을 알아보던 중 테라스가 있는 집을 만나게 됐다.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맘껏 뛰게 해주고 싶었는데, 살아보니 이 공간은 우리 부부에게도 큰 의미가 되고 있다. 2년 뒤 거취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불안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그리고 더 열심히 만끽하기로.
구멍 난 양말로 시작해 뭐가 이리 진지할까. 무엇하나 당연한 것 없는 오늘, 똥손 주부는 양말 기우기에 도전장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