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 후엔 일단 쉰다. 싱크대 가득 쌓인 그릇은 살포시 내일로 미루고. 먼지든 설거지든 보이는 대로 닦고 치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땐 무에 그리 의욕이 넘쳤는지. 신혼 때처럼 하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언제부턴가 손도 마음도 조금씩 놓게 되었다. 엄마라는 자리는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어제는 웬일로 일찍 눈이 떠졌다. 아이들은 한참 꿈나라일 시간이니 괜찮겠지 싶어 덜그럭 덜그럭 설거지를 시작했다. 조금 뒤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탁. 탁. 탁.
첫째 아이가 일어나 제 방에서 걸어 나왔다. 급히 장갑을 벗고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었다.
매일의 시작은 늘 같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꼬옥 안아주고 볼을 부비부비 한다. '귀여워, 사랑해, 소중해' 란 말도 남발(?)하면서.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진정 가장 예쁠 때가잠에서 깬 순간이다. 비몽사몽에 까치집을 짓고 퉁퉁 부은 얼굴로 "엄마 나 잘 잤어~" 하고 나올 때, 추억의 '못난이 인형'이 소환되며 하트 뿅뿅이다.
이제는 한두 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토닥이며 재우지 않아도 되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몸무게는 20킬로그램을 넘어섰다. 키도 120센티가 되어가니 안아도 다리는 허리 밑으로 내려온다. 번쩍 들어올리기가 조금씩 버겁다. 그렇게 아이가 크는 것을 매일 아침 체감하는 중이다.
"아고~ 우리 태영이 엄청 무거워졌네~ 나중엔 엄마보다 키도 더 커지겠지? 그럼 못 안아줄 거 아니야~ 지금 많이 안아줘야지!"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말한다.
"그때는 내가 엄마 안아줄 거야~"
심쿵. 코가 시큰하고 눈물이 핑 돈다.
컸구나. 정말 많이 컸구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컸구나.
이 동네는 처음이 아니다.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했고, 은행의 도움으로 결혼 3년 만에 집을 장만해 이곳에 왔다. 아이들 나이가 세 살 두 살이었으니, 내집의편안함을 느낄 여유는 없을 만큼 일상은 전쟁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무도 많고 꽃도 많고 놀이터도 많았던 단지를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시간. 7개 놀이터를 순회하고 연못 잉어들까지 관찰하면 두세 시간이 지나갔다. 쌍둥이 유모차를 밀고 낑낑대며 언덕을 올라도, 몸은 천근만근이어도, 그렇게 쐬는 바깥공기는유일한 기분전환이었다.
이제 7살 6살이 된 아이들과 단지 곳곳을 걸을 때면 옛 기억이 떠오른다.
단지 중앙 잔디밭에는 커다란 곰 가족 동상이 있는데, 아이들은 유독 여기를 좋아했다. 곰 위에 올라앉거나, 곰들의 자세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동상 뒤에 숨어있다가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거나, 가능한 가장 느린 속도로 곰 가족 주변을 돌면서 아이들을 잡으러 다녔다. 잡을 듯 잡지 못하는 연기는 지금 생각해도 완벽했다.
이제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그 자리에 선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러고 있자면 순간적으로 시간을 뛰어넘은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 같은 공간 그 자리인데 아이들만 훌쩍 커버린 신기한 기분. 동시에 가슴이 살짝 조이는 기분도나쁘지 않다.
아이들은 계속 자랄 것이다. 엄마보다도, 어쩌면 가장 큰 아빠곰 동상보다도. 매일 아침 몸으로도 아이가 크는 순간을 기억하지만. 이 모든 공간 또한 너를, 그리고 우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기억해 줄 것이다.
부디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기를. 가슴 저릿한 순간은 또 얼마든기쁘게 맞이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