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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담화 Aug 19. 2022

3번의 위기를 넘긴 양조장

충북 진천 덕산양조장 방문기

지난 번 <판교마을 동일주조장 방문기>를 시작으로 술담화는 사라져가는 양조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충북 진천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미리 조사한 자료를 살펴봅니다. 덕산 양조장은 1930년 문을 열어 3대가 이어 운영하다 2013년 세무조사와 가정 불화로 대가 끊기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 했습니다. 이 한 문장안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들어있을 지 생각하니 어느새 버스는 덕산에 도착했습니다.




덕산 양조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양조장 바로 앞에 서있는 거대한 측백나무입니다. 양조장의 높이를 한참 넘긴 이 측백나무도 양조장만큼이나 오랜 역사가 있어보였죠. 


제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4대 양조장 주인이신 이방희 대표님께서 나와 측백나무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측백나무는 더위를 막아 건물의 온도를 유지해줘요. 그리고 측백나무에서 향과 진액이 나오는 데 이 물질들이 벌레를 쫒아내거든요. 과거 조상님들의 자연 방역을 위한 방법이었던 거죠.




오래된 나무현판이 걸려있는 입구를 지나 우리를 안으로 안내해주셨습니다. 입구에는 덕산 양조장이 등장한 식객의 에피소드 <할아버지의 금고> 표지가 액자에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안쪽에는 <할아버지의 금고>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양조장 복도에는 작은 우물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어보이지는 않지만, 옛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죠. 복도에 햇빛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높은 곳에 창이 나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기계로 온도를 컨트롤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온도를 조절하려면 자연을 활용해야 했어요. 그래서 바람이 양조장 내부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높은 곳에 창을 둔거죠”



왕겨가 채워져있는 벽 내부

창문 뿐 만이 아닙니다. 양조장 벽 사이에는 왕겨를 넣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고 합니다. 왕겨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죠.


“덕산 양조장은 6.25 전쟁 때 사라질 뻔했어요. 북한군의 진군으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은 덕산 양조장이 북한군의 기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해 건물을 불태우기로 하거든요. 하지만 당시 양조장 대표가 한국군에게 돈과 소 등을 넘겨 건물을 살릴 수 있었죠. 


그리고 북한국이 양조장에 왔을 때는 벽 사이에 있는 왕겨 속에 숨어 지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양조장 한쪽에는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어 덕산 양조장의 옛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옛날 술을 빚을 때 쓰던 물건 뿐만 아니라 술병과 술잔, 담배갑, 심지어는 화약식 권총도 있었죠.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말통과 항아리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항아리와 말통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술을 빚는 모습과 술을 배달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본격적으로 술이 만들어지는 발효실과 제국실을 살펴봅니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을 지나면 방안 가득 들어서 있는 발효조를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덕산 양조장이지만 발효실에는 최신 장비가 들어있었습니다. 원래 양조장 설비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4대 대표님의 노하우를 들여온 것이죠.




덕산 양조장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수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위기는 위에서 말했던 한국전쟁이었고요.


두 번째 위기는 도로 계획이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도로 계획상 길이 나는 곳에 덕산 양조장이 있었던 것이죠. 다행히 2003년 근대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건물 철거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위기는 2013년 세무조사 여파와 가족 간 불화로 양조장이 경매로 넘어간 것이었죠. 경매로 양조장 설비가 낙찰자에게 넘어갔고, 이를 반출하는 과정에서 양조장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었죠.


현재는 경매로 양조장을 이어받은 이방희 대표가 덕산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 양조장을 유지하는 일, 전통을 계승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 일 겁니다. 몸이 편한 최신 설비를 포기하고 옛 방식 그대로 손으로 술을 빚어야 하니까요.


전통 있는 양조장이니 무조건 옛 방식을 고수하라고 하는 것, 어쩌면 그 주장이 양조장을 사라지게 만드는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설비와 제조법이 바뀌고 집안의 대를 이은 것이 아니지만 양조장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덕산 양조장의 모습도 전통을 유지하는 방법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술담화가 사라져가는 양조장을 탐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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