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술 문화 - 용수
“여기 청주 한 병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낯선 오늘날. 청주는 제사 지낼 때나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청주야말로 메인스트림이었다고 한다. 술덧을 걸러내어 맑은 부분만 떠낸 청주, 그리고 청주를 떠내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만들어내는 것이 막걸리였기에 청주는 선비들의 술이었고, 막걸리는 가난한 농민들의 술이었다.
그런 청주를 걸러내는 필터가 바로 대나무로 만든 용수라는 물건이다. 용수는 대나무로 엮은 빗살무늬 토기처럼 생겼는데, 최근 유행했던 라탄 같기도 해서 꽤나 이쁘게 보인다. 물론 오늘날 청주를 빚을 때는 용수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전통 방식으로 용수를 사용하더라도 대부분 값이 저렴한 중국산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환경 때문에 국내에서 용수를 제작하는 장인의 명맥이 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국내에서 아직 용수를 제작한다는 분을 어렵사리 알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장인분이 계신 담양으로 취재를 떠났다.
장인분께 들르기 전, 담양과 광주의 사이에 있는 식영정과 소쇄원에 들렀다. 식영정은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었다는 곳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시를 지었다면 술이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주로 청주를 마셨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식영정은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작은 별채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작은 별채에 온돌이 설치되어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경치를 즐기며 마시는 술은 포기 못했던 것이다.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옛사람들이 어떤 술자리를 즐겼을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술을 가져오지 못한 스스로를 한탄하며 잠시 동안 경치를 바라보았다.
소쇄원은 식영정에서 걸어서 15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소쇄원은 조선의 학자 양산보라는 사람이 기묘사화 때 스승이었던 조광조가 화를 입자 시골로 은거하기 위해 지은 정원이라 한다. 소쇄원이라는 이름은 빗소리 소, 깨끗할 쇄라는 뜻이라는데 이름의 뜻을 알고 봐서일까 비 오는 날에 매력적일 것 같은 곳이었다.
식영정이 탁 트인 시야와 강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면, 소쇄원은 높대 뻗은 대나무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원래 이곳은 학문적 교류를 위한 장소로 쓰였다고 하나 점점 술도 즐기는 곳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웬만한 참을성 없이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초인적인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참을 소쇄원을 거느리다 또다시 술을 챙겨 오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했다. 다음 취재 때는 기필코 술을 챙겨 다니리라 다짐하며 소쇄원을 떠나왔다.
다음날 드디어 취재의 목적지인 용수 만드는 장인 분이 계신 곳에 도착했다. 담양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었고, 작업장은 펜션 뒤쪽에 있는 작은 가건물이었다. 작업장 안에는 사방이 대나무로 만든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신 장인분은 차와 사과를 내놓으셨는데, 그릇도, 포크도 모두 대나무였다.
간단한 티타임을 마치고 장인분은 작업에 들어가셨다. 대나무를 자르고, 손질하고, 용수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며 손질되어있는 대나무들과 80%쯤 완성된 용수를 준비해주셨다. 본격적으로 용수를 제작하기 전에 대나무 손질 과정을 지켜보았다.
대나무를 손질하는 과정은 생각보다도 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대반하기, 기피, 쪽치기, 배따기(죽내리기), 찢기, 잔사리, 모따기. 이름도 낯선 과정들의 연속이다.
여기까지가 재료 준비과정이었다. 이제 드디어 용수를 만들기 시작한다. 도자기 물레에 대나무를 올려두고 위쪽과 아래쪽을 번갈아 두르며 고정시킨다. 어느 정도 고정되면 용수 틀에 올려 모양을 잡는다. 그 상태에서 앞선 작업을 반복하면 된다. 적당한 높이까지 완성이 되었다면 윗부분은 단단히 고정한 후 그 위에 테두리를 만든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용수를 장인분께서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빈손으로 받기 미안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간 용수를 손에 쥔 채 서울로 떠났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용수를 손에 쥐고 연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물한 용수 때문에도, 전통을 이어 나가 주고 계신 모습에도.
취재를 다녀와 서울에 올라온지도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취재팀은 다시 모였다. 용수를 직접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술덪은 미리 준비해두었다. 용수는 사용하기 전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해주었다. 대나무도 나무라고 송진이 나온다. 식으면 제거하기 어려우니 뜨거울 때 제거해주어야 한다.
술덧에 용수를 박았다. 이윽고 맑은 부분만 용수 안으로 들어왔다. 국자로 맑은 부분을 떠서 잔에 따른다. 용수를 어렵게 제작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일까. 맛있다. 급하게 만든 샐러드를 곁들여 반주 삼아 마셨다. 샐러드와의 궁합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맛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용수를 썼을 때의 맛과 용수를 쓰지 않았을 때의 맛 차이를 나는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할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청주, 그 청주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용수를 만드는 사람. 청주가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의 노력이 가치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취재지를 물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