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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Jun 01. 2021

어쩌면 이혼. 3

결말이 '어쩌면 이혼'인 관계에 대하여









3.





벼락같이 엄마가 된 스물 아홉의 겨울.

나는 2주간 산후조리원에서의 지독한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퇴소한다. 이 핏덩이를 어엿한 인간의 형태로 성장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퇴소 후엔 먼저 엄마가 된 선배의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죄 없는 선배는 우왕좌왕하는 신병을 겸허히 포용해 주었다. 선배. 먼저 엄마가 된 선배. 나를 낳고 인간으로 기른 내 친정엄마였다.


그렇게 친정에서 아들과 함께 120일을 지냈다. 핏덩이였던 아이가 인간의 형태를 갖추면 축하하는 스텝 1인 백일을 지날때까지. 백일 전까지는 아이도 엄마도 그다지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정 엄마는 나를 세상에 내놨다는 죄로 두 동물을 데리고 고군분투하신 셈이다. 갑자기 엄마의 바다에 던져져 질식할 것 같았던 나는, 나의 친애하는 선배님 곁에서는 다소 진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가 벼락같이 내던져진, 부연 안개 낀 이 엄마라는 바다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서서히 깨달았다. 나는 내가 습득한 바른 육아에 관한 각종 정보들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모범 엄마'가 될 수 없음을.


아이 살이 짓무르면 천기저귀를 쓰는, 모유수유를 아이 두돌까지 완모하는, 유기농 재료로 끼니마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아이가 엎지르거나 먹지 않겠다고 푸푸 불어 뱉어도 상냥하게 구는, 아이의 두뇌 발달을 위해 TV나 핸드폰 등 자극적인 영상 매체는 일절 보여주지 않으며, 가능한 구체물로 놀아주고 아이가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하게 해주며 애착 형성을 위해 아이와 눈을 맞추고 블라블라블라...!


타고난 기질이 예민해 잠이 매우 짧고ㅡ세돌까지 통잠을 자 본 일이 없다ㅡ무척이나 활동적이었던 아들. 이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홀로 이 모든 모범 육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기질이 순하다면? 눕히면 눕힌대로 누워만 있는 아이의 엄마라면 모범 육아가 가능할까? 단언컨대, 육아 서적에나 나올 법한 그 정석 육아를 엄마 1인이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엄마 아빠 2인이 해내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할 수도 있겠다. 엄마 아빠 두 사람 다 일하지 않아도 된다면. 일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집 구석에 묻어둔 단지에서 불로소득이 펑펑 샘솟는 가정이라면 말이다.











120일을 뭉개는 동안 나날이 늙는 친정 엄마를 목도하려니 무거운 엉덩이도 뗄 수밖에 없었다. 지방의 친정 집에서, 남편이 기다리는 서울 집으로 아이와 함께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120일의 뭉기적거림 동안 훌륭한 모범 엄마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종종대던 마음을 일부 내려 놓았고, 덕분에 질식할 것 같던 엄마로서의 막막함을 걷어낸 나는 용감한 척 친정집을 나섰다. 이제 정말 나홀로 육아의 시작이었다. 물론 서울엔 남편이 있었으나 이 남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이 불보듯 훤했다. '내가 어떻게 육아를 해? 나는 바빠서 애 볼 시간도 없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바쁘기도 했고. 서울에서 육아를 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를 볼 수 있는 주말에라도 육아에 어떻게 참여시켜 볼라치면, 5분 보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리모콘이나 스마트폰을 쥐기 일쑤였으니 나중엔 분노를 넘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기 시작한 2018년부터는 은근히 그런 말도 했다. '대낮에 밥 먹고 카페 가는 애 엄마들이 제일 부럽다. 그런 상팔자가 없어.' 말인 즉,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노는 부인들 꼴=지금의 내 꼴이 보기 싫다는 뜻 아니겠는가.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남편의 시비를 아이 앞이라는 이유로 눌러 참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이가 두 돌이 되기까지의 2017-2018년. 나홀로 육아에 고군분투하던 그 시절엔 얕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도 같다. 모범 엄마 되기는 일찌감치 내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아이의 TV 시청 시간이나 잠 사이클에 집착하는 것은 강박증이었고, 새롭고 좋은 서적이나 교구가 나왔다 하면 가진 것을 탈탈 털어서라도 사고 싶은 마음은 일종의 쇼핑 중독이었다. 대개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들인데, 내 아들 또래의 애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 정도의 불건전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이따금 가슴이 눌린듯 답답하고, 이따금 연기처럼 기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그것 역시. '엄마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었을 테고 당시엔 특별히 문제로 삼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육아 서적은 보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이름도 성도 모르는 육아 선배는 도처에 있어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면 애를 이렇게 춥게 입히면 안 된다는 둥 애 음식을 저런걸 먹이면 안 된다는 둥 라떼는 말이야가 서라운드로 들렸다. 그 무렵 '맘충'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인스타 감성 충만한 카페들이 '노키즈 존'을 내거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애 키우는 엄마로서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졌다. 엄마임이 죄인인 순간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순간순간 즐거운 일들도 있었고. 아이가 처음으로 걷던 순간. 문장을 말하던 순간. 애 써서 재우지 않아도 순하게 스스로 잠이 들고 일어나던 순간. 그렇게 일어나 그림처럼 웃어주던 순간. 아이들이 나란히 잠이 들고 나면 같이 육아하는 엄마들과 함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순간 등등. 그런 순간들이, 홀로 육아하던 그 시간을 견디게 했다.


2019년. 나는 2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서울로의 교환은 당연히 성공적이지 않았고, 나는 급한대로 일단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지방의 학교로 복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복직을 결정하니 아이가 문제였다. 6시에 일어나 최소 6시 40분에는 지방행 기차를 타야 하는 나와, 아침 7시가 조금 넘으면 출근을 해야하는 남편. 아침 7시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등하원 도우미를 쓰기엔 두 돌이 갓 지난 아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엄마 껌딱지 낯선 사람에게 쉽게 적응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나와 아들이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가기로. 친정에서 내 근무지까지는 1시간 거리였지만 아이를 전담해서 봐주실 친정 부모님이 있기에 마음이 놓였다. 2016년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 120일이 되기까지 일시적으로 경험했던 주말부부를, 또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주말 부부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고 느낌표로 문장을 맺을 수 있다면 이 이야기의 제목이 <어쩌면 이혼>이 아닐 것이다. 2017-2018, 같이 부대끼며 사는 동안 야금야금 커졌던 부부갈등은 2019년에 주말 부부를 시작하며 절정에 이른다. 남편은 서울에서 혼자 사는게 외롭다고 했다. 늦은 밤 내게 전화를 해 고함을 지르며 표현하기도 했고 우수에 젖어 추억 팔며 이야기 하기도 했는데 요지는 전부 혼자 있어 외롭다는 말이었다. 전부 취중 진담. 술을 마시지 않고 통화할 때는 그런 말이 일절 없었다. 얼마나 힘들면 이런 소릴 하랴 싶기도 했으나 육아와 일에 힘든 건 피차 마찬가지였어서. 분명히 새벽같은 출근을 했다 퇴근을 했는데 집에 가면 육아 출근이 또 시작인 삶의 연속. 애 재우다 쓰러져 자기 바쁜데 남편의 늦은 밤 전화를, 다시 말해 주사를 받아줄 여력이 있었으랴. 게다가 죄없는 친정 엄마 아빠는 고집 센 아이 땡깡에 허리가 휘는 중이었다. 이중 삼중으로 눈치가 보이는데 남편의 주사까지.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미안한 마음도 물론 있지만, 자기 혼자 떨어져 있어 외로움을 느끼고 그것을 피력하는 것조차 엄마인 나는 못 누리는 사치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내 홀로 외롭고 싶었던 나를 앞에 두고 '내가 여기서 어떻게 혼자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거나, '너는 거기서 니네 엄마 밥 먹고 지내잖아!' 같은 말을 하다니. 피곤한 날엔 불쌍하다 싶은 마음도 쑥 들어갔다. 남편이 취해서 아무 말이나 주워 섬기며 내게 폭언을 하면 지지않고 맞받기도 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내가 어떻게 여기서 애랑 둘이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니? 나이 70먹고 애 키우느라 허리 휘는 니네 장인 장모한테는 고맙지도 않고? 그저 집 사는데 돈 대준 니네 엄마한테나 미안하고, 그 집에서 호의 호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랑 니 아들한테 열이나 받겠지. 원룸에서 거지같이 지내며 마누라가 차린 밥 한끼 못 얻어먹는 니 신세가 처량하고. 야 근데 나는 있잖아. 내가 너 사는 그 원룸에서 혼자 지내고 싶다. 제발 좀 혼자, 아무도 나를 안 찾는데서 혼자 지냈으면 좋겠어. 애 키우고 일하고 정신없는 나한테 도대체 어떡하라고 이러는건데? 그렇게 혼자 외롭고 미치겠으면 거기서 나 몰래 딴 살림을 차리든가!


심했다.

안다.

나도 악에 받쳐 한 말이다.


차리랬다고 진짜 차릴 줄은, 정말 몰랐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쯤에서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다. 내 이야기의 제목이 <어쩌면 백년해로>가 아니라 <어쩌면 이혼>인 까닭에 대해.


2015년에 결혼해 2016년에 아들을 얻고 난 후 5년. 2021년, 그러니까 올해 벽두에, 우리는 부부로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6년의 혼인 기간 동안 크고 작은 싸움으로 '결혼 파탄의 강' 한가운데쯤 멈춰 이쪽 저쪽을 오가던 이 지리한 나룻배의 움직임에 별안간 모터 단듯 추진력이 생긴 까닭은 남편의 큰 결심 덕분이다.


2021년 벽두는 금요일로 시작했다. 주말 다녀올 곳이 있다그는 늦은 밤 전화로 그간 자신에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음을 고백해왔다. 내가 딴 살림 차리든가 내질렀던 2019년부터 만남이 시작됐단다. 리고 이 여자는 자신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 나와 아들 대신 이 사람을 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자신이 없으면 자살하겠다는 여자를 죽게 내버려두면 자신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이 선언의 이유였고. 나는 별안간 폭탄을 떨구는 수화기 너머에 소리를 지르는 대신 기가 차 웃었다. 이어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입밖으로 튀었는데 그것은,


너는 아직도 연애 하고 싶어하는구나?


였다.

그 첫마디를 조금 후회한다. 기왕 소리를 지르지 않을 거라면 차분히 개를 찾거나, 십단위 숫자를 여럿 낀 상욕을 하거나, 야 니네 사이좋게 뒤지겠단 얘길 색다르게 하는구나 정도는 했어야 했는데.


어쨌든 6년간 허울은 내 남편이었던 남자가 신년부터 이런 이야기를 뱉었다는 것은 이혼을 반드시 하겠다는 것이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내 너를 땡전 하나 없는 알거지로 만들어 내쫓겠다 고래고래 멱을 따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해야 마땅한 것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이혼하지 못했다.


이혼 성사는 결혼 성사만큼 수월하지 않다. 혼인을 끝내기까지의 감정도 오르락 내리락 질퍽한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미성년 아이를 둔 부모에겐 국가의 시스템 마저 너희 이혼을 삼고 초려하라며 발목을 잡는다. '마침내 골인'이라는 수식어를 혼인과 관계된 단어에 붙여야 한다면, 마침내 결혼에 골인보다는 마침내 이혼에 골인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이혼 쪽이 훨씬 더 고되고 풍진 역경 극복의 과정이므로. <마침내 이혼에 골인한 이야기.> 이것이 요즘 남의 로맨스보다 더 확실하게 팔리는 남의 통쾌한 독립이 아닌가.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은 아직 이혼에 골인하지 못한 나의 이야기다. 어쩌면 3개월 뒤, 어쩌면 1년 뒤, 어쩌면 3년, 5년, 10년 뒤…. 어쩌면 이후에 붙는 시간이 무엇이 되더라도, 마침표 앞 단어는 반드시 이혼이 될 나의 이상한 서사,


<어쩌면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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