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집에 손님들이 오시면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여럿이 뿜어낸 연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나는 기침을 하면서도 어른들의 말이 재밌었다. 내용은 어려워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지금 내가 매일 유튜브에 빠져 즐겁게 지내는 것도 궁금했던 얘기를 많이 해주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재밌는 대화를 온라인으로 옮긴 게 ‘유튜브'다.
어른들은 각자 말하는 방법이 달랐다. 어린 나는 그분들이 주고 받는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말은 어려웠지만, 각자의 목소리와 표정을 관찰했다.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 얼굴 표정이 마구 바뀌는 게 신기했다. 말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는 것이.... 관찰을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두었을 뿐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나의 타고난 성격이다.
큰 오빠와 작은 오빠는 자주 싸웠다. 우리 집만 아이들끼리 싸우는 줄 았았었다. 너무 자주 싸워서 오빠들이 싸우는 게 부끄러웠다. 나중에 커서 친구들과 고민을 터놓고 말해보니 집집마다 대부분 그랬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아버지는 두 오빠들이 어떻게 싸움을 시작했는지 보지 않고도 확신 있게 작은 오빠를 먼저 혼냈다. 울고 있는 작은 오빠를 위로해야 했다.
"그냥 혼나지 말고 아빠한테 오빠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해 봐!"
"그래봐야 나만 더 혼날 걸!"
오빠는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자주 궁금했다. 우리나라에는 큰 아들 서열이 아버지 다음으로 높은 문화가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주 이해받지 못한 작은 오빠는 우리 사남매 중에서 가장 심한 사춘기를 겪었다. 부모의 말은 아이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생각했다.
우리 사남매는 엄마와 아빠가 평등하길 무척 바랐다. 엄마와 아빠가 웃으며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그런 기쁜 날은 많지 않았다. 부모님의 대화에서 정답은 아빠의 말이어야 했다. 남편의 '당연한' 권위에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날엔 싸웠다. 우리는 아빠가 대체로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빠 앞에서는 침묵했다. 훗날 '유교'나 '가부장제' 같은 어려운 단어를 학교에서 배우고 나서야 엄마와 아빠의 기울어진 관계의 이유라도 알게 되었다.
나는 크면서 계속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왜 그런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해소되는게 신나서 사람들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친구들은 자기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나와 비밀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없는 지혜를 짜내서 친구 마음을 위로해주면 나와 더 친해졌다. 친구들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본능 덕분에 나는 친구가 많있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금 마음이 어떤지를 살피게 된다. 나는 그와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어떤 부분에서 다르게 생각하는지를 구분하면서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 “네 인생도 복잡한데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게 힘들지 않냐?”며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더 힘들다. 나는 나를 위해 열심히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
내 인생의 첫 책 <독서가 사교육을 이긴다>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고통스럽게 공부하는 모습을 20년 이상 관찰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공부 문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책 한 권으로 생각을 다 펼치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는 마음에 대한 주제로 두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가칭 : 공부 정서가 지능을 이긴다). 초고를 쓰기에 앞서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 이 책을 쓰고 싶은가?"
첫 책과 기본 맥락은 비슷하다. 많은 아이들과 상담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쏟아 놓았던 아픈 마음을 관찰했다. 관찰한 것을 정리해서 지금 자녀 양육과 교육을 시작하려는 엄마 아빠들에게 보여주면 조금이라도 따뜻한 교육이 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그 잔상이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노라고 전하고 싶다.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던 부모의 말과 행동이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결국 득보다 실이 더 크더라고 말해주고 싶다. 책을 쓰면서도 사람 마음에 대해 책과 영상으로 매일 배운다. 교육을 마친 부모님들의 소회를 듣고 있다.
대학 전공이었던 (영)문학은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관계를 통해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더 객관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심리학을 부전공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은 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나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왜 쓰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를 위해서"라고 답변하고 싶다. 나를 더 잘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매일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위해 오랫동안 애쓴 내용이 혹시라도 이후에 아이를 키우는 어떤 부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괜찮을 일 아닌가. 내 아이들은 다 컸고, 먹고 살기만을 위해서 살기에는 삶이 허무해질 우려도 있다. 배움을 좋아하는 난 돈을 벌면서도 삶의 '의미'가 더 커지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책쓰기를 선택했다.
세계에서 경제대국 10위권에 든지 오랜 우리나라가 자타공인 자살율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분명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화는 모르는 사이에 가정에서 시작될 것이다. 잘못인 줄 모르고 습관이 되어 인식하지 못하면 내면화된다.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말과 행동은 자각하지 못하면 대물림된다. 대부분의 원수가 가족이거나 친한 지인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이가가족일 확률이 높다. 무의식 중에 내면화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태도를 다른 각도로 보면서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자각이 일어난다.
지난 20여년간 아이들이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고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과연 어떻게 해야 부모의 찐한 사랑이 왜곡없이 아이들의 마음에 전달될 것인지를 무척 열심히 생각했다. 아주 열심히 아이와 부모의 말을 듣고 공부해야, 각자의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할 수 있었다. 자녀와 부모라는 너무나 가까우나 너무나 멀어져 버린 관계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후배 부모님들이 늦기 전에 마음 챙김 육아를 해나가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상담했던 모든 기억을 끄집어 내어 정리하며 동시에 나의 지난 인생도 조금 더 정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