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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과맘 Mar 26. 2023

엄마랑 있으면 가슴이 답답한 아이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 마음이 잘 통해요

 

초등학교 1학년 상호를 상담했다. 말을 예쁘게 한다고 칭찬했더니 선생님이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 자기는 혼자 있을 때 나쁜 욕도 한다면서. 좀 놀라서 이유를 물었다. 엄마가 매일 저녁 늦게까지 수학 문제를 너무 많이 풀라고 해서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다고 했다. 그럴 때 자기 혼자만 아는 상상 친구에게 욕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수학이 없는 세상이면 좋겠다고 했다.  

     

상상 친구가 고마웠다. 어린 아이가 자기만의 감정 쓰레기통을 만들고 처리하게 해주니 말이다. 엄마는 낮에 일하는 동안에는 상호가 밖에서 놀다 다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어 바깥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도 허락하지 못했다. 어린 아이 혼자서 집에서 엄마가 시킨 공부를 해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공부는 놀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고 나서야 집중이 가능한 종목이다. 상호의 공부보다 먼저 정서가 걱정되었다. 정서가 불안하면 공부를 해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정서는 안정되지 않았지만 공부는 잘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한 사람이어도 갑작스럽게 사건을 터뜨려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은가. 정서가 공부보다 먼저 잡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엄마와 상담했다. 낮에 상호를 챙기지 못하니 혼자만 공부가 뒤처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심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공부를 하기 싫어하니 일찍 공부를 놓을까 두렵다고 하셨다. 엄마의 걱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환경을 갖추지 않으면 공부는 손에서 멀어질 것이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공부는 힘이 없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분위기를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상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바깥에 나가서 노는 일이 어려울 때는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린다면 정서가 좀 더 안정을 찾을 것 같았다. 상호는 엄마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런 거 할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라고 다그친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했다. 엄마에게 공부 정서가 안정되지 않을 때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문제점과 사춘기의 갈등 가능성 등을 이야기했다. 지금부터라도 상호가 언제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도록 하자고 말씀드렸다. 그림을 그려서 마음이 안정되면 공부 집중하는 힘이 더 커지니까 말이다. 또한 상호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어 보길 추천했다. 초등학생이면 놀이가 가장 중요하다.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자리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친구와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잘 노는 아이가 공부 집중력도 높다. 

     

논의 끝에 상호를 수학 학원으로 보내기로 했다. 엄마가 가장 걱정하는 과목인데 지금처럼 엄마가 수학의 개념을 이해시키지 않고 답지를 보며 채점만 하는 상태에서 상호가 절대로 수학을 좋아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수학은 학원에 맡긴 뒤 엄마는 수학에 대한 걱정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걱정되는 것이 생기면 수학 학원 선생님과 상의해서 해결 하기로 했다.


다른 모든 과목은 독서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독서는 가장 저렴하고 가장 효과가 좋은 공부법이기 때문이다. 사정도 넉넉지 않다면 더구나 독서를 하지 않을 필요가 없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상호가 독서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상호에게 집에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대화를 하면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서 읽기로 했다.      


상호에게 하루에 동화책 한권을 읽어주는 숙제를 내드렸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엄마도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엄마와 상호는 기질과 생각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엄마의 생각으로 활동을 진행했다가는 상호는 더 힘들고 엄마도 기대치에 미치지 않는 결과에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독서를 꾸준히 하면 수학을 빼고 모든 과목이 수월하다. 영어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미국드라마 같은 영상을 보여주는 방법을 추천했다. '엄마표 영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있으니 찾아서 참조해 보시라 했다. 유명한 책들을 원어민이 읽어주는 audiobook도 무척 많으니 자료가 부족하지는 않다.

      

공부 방식을 리모델링 하고 엄마의 걱정은 줄고 아이의 기쁨은 늘었다. 독서를 함께 하면서 아이의 생각을 들으며 엄마와 생각 차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상담 후 상호는 친구들과 놀 수도 있고, 수학을 학원으로 나가게 되면서 엄마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사라졌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집에서 더 이상 뛰쳐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자가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한 격하게 반항하는 사춘기 없이 커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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