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2022년 7월 21일 새벽 6시, 아내, 아들, 나 셋은 집을 나섰다. 이쁜 딸이 생활하고 있는 싱가포르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홀로 떨어져서 어떻게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가 볼 생각을 못했는데, 한 번 오라는 딸의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에 작정한 여행이다. 참 무심하기도 했었다. 오래전에 어린 딸이 망망대해를 건너 호주에 유학했을 때도 아예 들러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반성을 겸한 방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이쁜 딸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눈시울이 약간 붉어짐이 느껴진다. 처음 맞은 풍경은 유리관 인공폭포다. 싱가포르에서의 첫 번째 물과의 만남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거대한 조형물과의 첫 대면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여정도 이렇듯 놀라울 것이라는 기대가 절로 든다.
3일 동안 머물 리버 밸리 호텔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분이 친절하시다. 짐을 싣고 내려주시고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분이시다. 운전석과 도로 통행의 방향이 우리와 정반대다. 일본이 이런 방식이다. 싱가포르인들은 일본으로부터의 식민지 경험이 있으면서도 일본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와는 다른 면이다. 호텔 프론트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민족 국가임이 느껴졌다. 9층 객실에서 바라본 스카이라인이 질서 정연하다. 바로 아래 흐르는 싱가포르 강이며, 우리 주공아파트와 비슷한 아파트들, 멀리 바라 보이는 마리나베이샌즈 등 색다른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퍼스트 임프레션 이즈 아름답다 이다. 4박 5일 싱가포르 여행기를 적어본다.
강변에 있는 롱비치 레스토랑. 칠리크랩의 맛이 황홀하다. 다른 씨푸드도 정갈하고 맛있다. 후덥지근한 적도의 나라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더더욱 훌륭했다고나 할까. 여기서 잠깐 내키지 않지만 담배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다. 안내 책자마다 담배, 침, 껌에 대한 벌칙을 강조해서 봉변당할까 봐 인천 공항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버리고 왔던 터라 끽연이 급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좀 더 참지 못하고 진중하지 못했던 점이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담배문화가 생각보다는 자유스러웠고 행인들로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강변의 풍경은 시끌벅적이다. 자유스러운 옷차림, 바이크족, 워킹족, 러닝족, 서양인, 동양인, 이슬람 등 가지각색 그 자체다. 시끄럽되 시끄럽지 않고, 분방하되 질서가 있다. 자유 그 자체인 조르바가 생각남은 과장일까.
루프탑바 스모크 앤 미러스. 와인향이 탁 터진 풍광만큼이나 좋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관람차의 현란한 빛들. 밤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싱가포르는 물과 빛의 도시라고 할만한데, 물에 이어 빛과의 첫 만남이다. 저쪽 아래 광장에는 축구에 열심인 젊은이들이 보인다. 마무리 운동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축구를 꽤 좋아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강을 주제로 한 공원, 리버 사파리. 메콩강의 거대한 수족관 속 가오리, 3미터나 됨직한 메기, 플라밍고, 재규어 등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보트를 타고 돌며 동식물을 볼 수 있는 보트라이드. 손님이 없어서인지 또 한 번 타게 하는 친절함에 민정이 엄마가 특히 좋아한다. 조그마한 나라에서 이렇듯 넓은 자연공원을 보존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인데, 자연생태계를 아끼는 아름다운 마음이 감동이다.
물과 빛의 도시임을 실감하게 되는 리버크루즈. 멀라이언상, 싱가포르 플라이어, 마리나베이샌즈,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을 가로지르는 야경이 일품이다. 이쁜 딸이 근무하는 빌딩에 눈길이 많이 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쁜 딸이 근무하는 회사 오피스에 왔다. 탁 트인 경관, 널찍한 사무실, 소통을 중시하는 듯한 배치, 딸의 땀이 서려있는 곳.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쇼핑으로 유명한 오차드. 이쁜 딸이 명품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는 계기가 된 곳이다. 명품을 알아보는 자가 미인이라고 했던가. 오차드 근처 딸이 살고 있는 집에 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에 입이 쫙 벌어진다. 깨끗한 거실, 주방, 방 등 안전하게 사는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혹자는 어린 자녀를 홀로 유학을 보낼 때는 치안이 안전하고 영어를 공용어를 쓰는 국제도시 싱가포르로 보낼 것을 추천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니 맞는 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멀리 홀로 생활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주로 외식에다 너무 소식인 듯해서 건강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현명한 식생활을 할 것을 믿어본다.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70년대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이 생각나고, 우리와 생활, 문화 형태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민시대 일본군의 탱크가 전시되어 있는데 의아스럽기도 하면서 그 정신을 본받을 만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2개의 커다란 돔, 적도 식물, 수직 정원, 슈퍼트리가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에 경탄을 안 할 수가 없다. 클래식의 선율에 맞춰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변화하는 빛의 트리쇼. 가족 모두가 누워서 감상하였는데, 영원히 간직하고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마리나 베이 샌즈. 이쁜 딸이 근무하는 빌딩과 그동안 관광했던 곳들이 두루 보이는 리버뷰다. 아들은 그랬다. 이런 좋은 경험을 하려면 역시 돈은 벌어서 있어야 한다고. 치열하게 생활해야겠다는 다짐이 있었음직 하다. 이런 멋진 건물을 우리의 쌍용이 건축했다니 자랑스럽다. 57층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오션뷰. 무역항임을 말해주는 수많은 크고 작은 배들, 하늘과 바다가 연결된 비 내리는 구름, 가까이 보이는 인도네시아 섬들. 지금도 아련하다. 강 쪽으로 낭떠러지처럼 보였던 인피니트 풀. 엄마와 딸이 가까이 어울려 수영하는 모습은 가히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다. 엄마의 해맑은 미소, 딸의 하염없이 좋아하는 웃음. 바라보는 나에게도 행복의 극치였다.
이쁜 딸과의 심야시간 노천 바에서의 대화와 맥주맛. 물과 빛의 환상적인 조화를 또 한 번 볼 수 있었던 광장 앞의 불빛 분수 쇼. 김성파크, 호커센터, 카야 토스트, 한인 식당, 전통 가옥, 티옹바루 시장, 국립 도서관, 조그만 카페의 아메리카노 등 벌써 아련한 과거가 되었다. 한 번 더 가고 싶다.
또 한 번의 창이공항. 일시 헤어짐에 마음이 좀 그러했던 그날 밤. 우리는 많이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볼 것을 소망하며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었다. 이쁜 딸 많이 고맙구나. 많이 변화하마. 싱가포르를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쁜 딸이 생활하는 나라, 또 가 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