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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코와푸치코 Apr 08. 2021

강남구 청담동에서 산다는 것

  나는 청담동에 산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화려한 샹들리에를 뽐내며 한강변에 자리한 고급스러운 외관의 펜트하우스가 있고 도로에는 대한민국에 몇 대 없다는 초고가의 슈퍼카들이 다닌다.  동네 세탁소나 편의점에서 종종 유명 연예인들을 마주치고 5분만 걸어 나가면 sns에 단골로 등장하는 핫플레이스가 곳곳에 자리한 곳. 그렇다. 나는 청담동에 산다.  그렇지만 나는'청담'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낡고 헌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가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아파트 외벽은 비가 오는 날이면 색이 더 어둡게 바래 을씨년스럽고 밤마다 단지는 쉴 곳 없는 차들로 인해 주차전쟁이 벌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수도며 전기가 고장 나기 일쑤라 동네 인테리어 가게 사장님은 우리 아파트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이런 청담동일지라도 누군가 나에게 어디 사냐고 물었을 때, "청담동"이라고 답하면 그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다. 그 벽은 '청담동'이라는 단어에 써진 의미들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구차하게 내가 사는 곳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야 라고 매번 설명할 수 없어 그런대로 대충 얼버무리며 넘기곤 한다. 땅값이 비싸기 때문일까. 집 앞 슈퍼의 과일 가격은 웬만한 백화점 지하매장 가격과 비슷하고 커피도 빵도 심지어 떡볶이까지 비싸다. 그런 곳에서 살다가 가끔 다른 동네 시장에 가면 그 물가의 차이를 체감하고 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여기에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온다.      

  

    누구나 그렇듯이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기에 살았다. 결혼 후 친정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두 아이도 여기서 낳았다. 그때는 지금과 집값도 달랐고 분위기도 아주 많이 달랐다. 4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내가 살아온 동네의 주민들, 그들의 집, 자동차, 골목 분위기까지 아주 많이 변했다. 그래서일까. 평생을 살아온 곳이지만 낯설기도 하다.                

    큰 아이가 일반 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주 비싼 원비를 내야만 하는 영어유치원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시절도 있었다. 고가의 패딩점퍼를 입히지 않아서 괜히 나 혼자 주눅들었던 때도 있었고, 파스타 한 접시에 3만 원 하던 집 앞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라 외벌이 직장인 남편의 월급을 떠올리며 제대로 먹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나에게 청담동은 그런 곳이다. 평범한 나와는 달리 혼자만 아주 멋지게 커버려 감히 쉽게 손 내밀 수 없이 유명해져 버린 소꿉친구 같은 존재. 다시 예전처럼 친해지고 싶지만 괜히 흉내만 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질 것만 같아서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청담동을 무기 삼아 말하곤 한다. 나보다 뛰어난 능력의 누군가를 대하며 주눅이 들 때, 남편 친구의 와이프가 예뻐서 기분이 나쁠 때, 백화점 매장 거울에 비친 초라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부끄러워질 때 나는 기대한다. 그쪽에서 먼저 어디에 사냐고 물어보길, 집이 어느 동네에 있냐고 묻길 바란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힘주어, 그러면서 조금은 수줍다는 듯 연기를 섞어 말한다..........  "저희는 청담동 살아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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