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하나님이 주신 실력으로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께서 맡기신 능력과 지혜

by Bloomlink

‘하나님이 주신 실력’이라는 말 앞에 서면 마음이 단순해지지 않는다. 이 표현은 언제나 두 방향의 긴장을 동시에 불러온다. 한편으로는 감사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하지 않으면 자기 확신이나 자기 합리화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따라온다. 실력을 말하는 순간 겸손과 멀어지는 것 같고, 하나님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마치 신앙적으로 부적절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실력이라는 단어를 피한다. 차라리 부족함과 연약함을 말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하지 못하는 일을 먼저 고백하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과 삶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이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다루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실력을 부정하지도 않으시고, 그렇다고 그것을 자랑하라고 부추기지도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에게 분명한 능력을 맡기시고,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시는 분에 가깝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실력으로 산다’는 말은 잘난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더 무거운 질문과 더 깊은 책임의 자리로 들어가겠다는 고백에 가깝다.


우리가 실력을 능력이나 재능의 차원에서만 이해할 때, 삶은 빠르게 왜곡되기 시작한다. 실력을 내가 만들어낸 결과로 착각하게 되거나, 혹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할 가치로 오해하게 된다. 이때 실력은 은사가 아니라 부담이 되고, 책임이 아니라 압박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실력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위탁의 개념에 더 가깝다. 그것은 자랑의 근거도 아니고, 비교의 기준도 아니다. 다만 각자에게 다른 무게로 맡겨진 몫이며, 감당하라고 주어진 범위다.


이 관점이 바뀌는 순간, 실력을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실력은 더 이상 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에게 요구되는 책임의 경계를 알려주는 기준이 된다.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이 책임져야 하고, 적게 받은 사람은 그 범위 안에서 성실하면 된다. 여기에는 우열도, 서열도 없다. 다만 각자에게 다른 질문이 주어질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같은 기준으로 세우지 않으시지만, 같은 방향으로 부르신다.


문제는 이 단순한 구조가 현실 속에서는 쉽게 흐려진다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실력을 말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며,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능력을 숨긴다.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하지 못하고, 늘 부족함만을 앞세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실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며 과시한다. 성과와 결과를 신앙의 증거처럼 말하고,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한다. 이 두 태도는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오류를 공유하고 있다. 둘 다 실력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실력을 감추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실력을 앞세워 자신을 증명하라고 부르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실력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용하라고 부르신다. 이 ‘안에서’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실력의 방향과 경계를 동시에 규정하는 말이다. 실력은 방향을 잃는 순간 은사가 아니라 위험이 된다. 능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능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력이 위험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분명하다. 속도가 하나님보다 앞서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결과가 빨리 나올수록 옳은 선택이라고 믿게 되고, 지연과 멈춤을 실패로 해석한다. 또 결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할 때, 실력은 사명이 아니라 자존심의 도구로 변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보다 성과를 먼저 계산할 때, 실력은 관계를 살리는 힘이 아니라 관계를 소모하는 힘이 된다. 이때부터 실력은 공동체를 세우기보다 균열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이 이런 상황에서 실력을 곧바로 거두어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실력을 빼앗기보다, 실력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먼저 멈추신다. 일이 막히고, 속도가 늦춰지고,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실력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신다. 이 실력이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하신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실력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같은 능력이라도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열매를 맺는다. 나를 증명하는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길을 여는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이 경계에서 ‘하나님이 주신 실력’과 ‘내가 휘두르는 실력’은 분명히 갈라진다. 기준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실력이 나를 더 드러내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더 살리는지를 묻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실력은 결국 관계를 향한다. 하나님은 실력을 통해 더 많은 일을 하게 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품게 하신다. 실력이 커질수록 하나님은 사람을 더 많이 보게 하신다. 결과보다 과정에 남아 있는 사람을 보게 하고, 성과 뒤에 남겨진 얼굴을 보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실력은 언제나 관계의 무게를 함께 가져온다. 그 무게는 때로 부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실력이 감당해야 할 본래의 자리다.


앞선 편들에서 이야기했던 ‘사람을 향한 시스템’과 ‘대체되지 않는 사람’의 조건은 여기에서 다시 만난다. 실력은 언제나 시스템 안에서 사용되며, 그 시스템이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들어낸다. 사람을 소모하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 안에서 실력을 사용한 사람은, 실력 자체보다 태도로 기억된다. 그는 무엇을 해냈는가 보다, 어떻게 감당했는가를 남기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실력으로 산다’는 말은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에 가깝다. 실력을 낮추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는 태도. 하나님 앞에서는 위탁된 것으로, 사람 앞에서는 책임으로, 삶 속에서는 방향으로 실력을 다루는 태도다.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잘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고백이다. 이 고백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점점 나는 이런 삶을 꿈꾸게 된다. 실력을 통해 인정받기보다, 실력을 통해 신뢰받는 삶. 결과로 나를 설명하기보다, 방향으로 나를 드러내는 삶. 하나님이 맡기신 만큼 성실하게 감당하되, 그 결과를 내 이름으로 소유하지 않는 삶. 이런 삶은 빠르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실력은 언젠가 사라진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면 지금의 능력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실력으로 살아온 태도는 남는다. 그 태도는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되고, 다음 세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 결정하는 방향이 된다. 그래서 실력은 결과로 남지 않고, 사람으로 남는다.


하나님이 주신 실력으로 산다는 것은 특별해지겠다는 욕망을 내려놓고, 더 깊은 책임의 자리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자리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배우게 된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실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방향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