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연인 드라마 미생
억울한 듯 억울하지 않다. 한 회에 큰 사건이 터졌다면 그 다음 회든 그 회 안이든 그 사건이 잘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 마무리가 너무 희극적이지도 억지스럽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극 전체의 긴장감은 깨지지 않을 정도로 진행되는 에피소드.
전체적인 큰 틀은 건드리지 않되 인물 하나 하나를 잘 표현한다.
시청자와 밀당을 참 잘한다고 해야 하나. 잇고 끊기를 참 잘하는 드라마.
흔히 한국 드라마를 보면 너무 억울하거나 답답해 미쳐버리는 스토리가 많다.
주인공이 너무 많이 고통받다가 갑자기 결말만 번뜩 해피. 권선징악. 끝 디엔~드
나는 성격상 너무 억울하거나 너무 답답한 드라마는 잘 못 본다. 사실 그래서 미생도 1,2회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왜? 주인공 장그래가 너무 억울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3회부터 미생의 진짜 재미가 시작된다. 사실 1,2회도 보고 느끼는 게 참 많았다. 번뜩 정신 차리는 기분이었달까...?
주인공은 장그래가 아니다.
장그래를 포함한 모든 인물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다.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없다. 우리 삶에서 우리를 포함한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 이듯 미생은 그런 우리들의 삶을 참 잘 표현했다. 각각의 캐릭터는 우리가 충분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각자가 처한 상황들도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다. 특별히 밉고 짜증 나는 캐릭터야 상황상 있을 순 있지만 그들 조차도 각자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다 있다.
사람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건 우리가 현실사회에서도 충분히 겪는 일이 아닌가?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보는 것이 다르고 이해의 폭이 다르기에 나쁘게도 좋게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내가 그 상황에 처해있지 않다면, 속하지 않는다면 그 상황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아니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지상파, 케이블을 포함하여 만들어진 우리가 생각하는 정통 드라마들은 주인공 자체가 나에게 공감되지 않았다. 공감을 하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세상에 푹 빠지기 위해서 봤던 것들이 많다.
또 다른 세상이란, 특별히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뜬금없는 요소들. 예를 들자면, 눈앞에 미모가 출중한 이성이 나타나는 것. 주인공의 특출 난 재능. 신비한 과거, 혹은 아주 꼬여버린 처절한 과거.
미생의 경우도 장그래가 멍청한 것만은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물론 극심한 노력이 동반되긴 했지만) 사전을 다 외우기도 하고 위기의 순간에 중심이 되는 한마디로 판을 뒤엎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보면서 세상과 '다르네' 가 아니라 세상과 '똑같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장그래가 이기면 내가 이기는 것 마냥 기쁘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인 것이다.
힘들고 각박하기만 한 세상에서 "아직 내가 살아있을 만한 존재가 되는구나" "나라는 존재가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던져준달까.
회사에서 치이고 세상에서 치이는 장그래의 모습은 단순히 회사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지위, 분야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왜?
어디에서든 사람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겉으로 착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은 적은 없을 것이다. 미생은 이러한 인간사회를 '회사'라는 틀 안에서 철저하게 보여준다.
회사원 이외의 다양한 사람들이 왜 미생을 보면서 같이 울고 웃을까? 굳이 회사생활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 그리고 처절함이 공감되기 때문이다.
공감
공감의 힘은 크다.
때론 누군가와 몇 시간 동안 속풀이를 하는 것보다
드라마 속 대사 하나가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많다.
지극히 평범한 드라마.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에게 공감과 희망이 되는 드라마. '미생'
앞으로의 제작과 모든 방영이 정말 잘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 특출 나지도 않은 그리 멍청하지도 않은
이 세상의 모든 우리들에게 마음 속 큰 힘이 되는 소중한 작품이 되기를!
예전에 미생을 보면서 느꼈던 점들을 글로 적어놨었는데, 첫 게시물로 올리고 싶어 업로드한다.
아직까지도 마음에 아련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 미생. 미생 덕분에 많이 반성하고 정신도 차렸다.
앞으로 좋은 작품이 또 생긴다면 차곡 차곡 브런치에 기록해 놓아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