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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PD Oct 07. 2021

혼자서도 잘 놀고 싶어

혼자는 싫은데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해

야근이 몰아치던 업무 시즌을 보내고

어딘가 떠나고 싶어 평일 충동 연가를 내고 서울에 갔다.


간만에 쓰는 평일 연가이기도 하고, 최근 가지고 있었던 우울감을 털어버리려고 썼기 때문에,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떠났다. 사실 하루를 꽉 채워 보내지 않아도 괜찮은데, 어느 순간부터 휴일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굉장히 억울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빡빡한 스케줄을 겹겹이 잡고 나서야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쉬는 하루가 그리워진다. 멍청하지만 가끔 해줘야 하는 나만의 루틴.


다행히 오랜만에 떠나는 평일 일탈의 날씨는 너무너무 좋았고, 계획대로 서울에 잘 도착했다.


평소 꼭 혼자 가봐야지 하고 찜해놨던 앨리스 달튼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혼자 다니는 건 익숙해질 듯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행히 이 전시를 간 날은 평일이었고, 혼자 온 사람들이 꽤 많아서 머쓱하지 않게 잘 들어갔다.


지니에서 전시회에 맞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이용권을 줬다. 몇 곡 듣다가, 평소에 저장해놨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 다시 돌아갔다.


앨리스 달튼 전시회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딱 3개의 사진만 촬영이 가능한데 덕분에 혼자 조용히 그림을 잘 감상할 수 있었다.


인스타 감성이 가득한 전시도 사실 좋아한다. 사진을 찍히는 것도 좋아하고 애정 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좋아한다. 근데 혼자 온 이 전시에서는 어차피 그렇게 사진을 남기지 못하니 촬영 금지가 오히려 좋은 규칙이었다.


앨리스 달튼 전시회는 사진 같은 느낌을 내는 그림이었다. 좋았지만 공허한 마음이 꽉 채워지지는 않았다. 나에게 전시는 항상 어렵다.


이 하루를 위해 전날 나름대로 열심히 스케줄을 짰다. 혼자 먹기에도 좋고 연가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는 식당 찾기.

결론은 성공! 오랜만에 먹은 돈까쓰는 정말 맛있었고, 함께 먹은 하이볼도 완벽했다. 혼자라서 외로운 하루였는데 맛있는 음식과 함께라면 혼자 여행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튀김요리는 느끼해서 종종 남기곤 하는데 

하이볼을 곁들여 먹으니 느리지만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오늘  계획 중에 제일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직장이 있었다면 퇴근하고 자주 오고 싶은 가게였다.

그냥 집에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주변의 서점을 찾았다. 서점을 찾는 건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는 나의 패턴인데, 항상 갈 때마다 뜻하지 않게 만나는 책들이 있어서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사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많이 들어봤지만 어쩐지 읽게 되지는 않더라.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완독 하지는 못했다. 최근 나의 책장엔 완독 하지 못하고 쌓이는 책이 꽤 늘어나고 있다.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하늘이 이뻤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늘은 언제 봐도 좋다. 하루를 나름대로 잘 보냈지만 어쩐지 혼자인 게 외로웠다. 혼자는 싫은데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했던 하루. 그 하루를 기록하며 다시 돌아보는데 그래도 잘 보냈다고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다 보면 내 모습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가끔 훅 떠나면 내 모습이 조금씩 다시 돌아온다.


외롭지만 좋았던 하루. 혼자 노는 건 어렵지만 가끔 필요하다. 사람들이 좋지만 싫다. 혼자 있고 싶지만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모순이 가득한 29살. 올해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은 가을 겨울 하루하루를 알차게 꽉꽉 잘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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