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가장의 자본주의 생존기
평생을 몸을 쓰는 일을 해왔다. 타고나기를 체력도 힘도 좋았던 나는 대부분의 육체적인 노동 업무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던 거 같다. 운동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힘쓰는 건 자신이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
20대 중반에 마지막으로 했던 축구경기 이후, 37세의 나이에 풀타임으로 축구경기를 하게 됐다. 시작하자마자 5분 만에 체력은 미친 듯이 빠졌고, 몸뚱이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니 더 힘들었다. 꼴에 승부욕은 있어서 악착같이 했다.
종료 5분 전 최종 수비수였던 나는 실점하지 않기 위해 재빠른 10대 공격수를 악착같이 쫓았다. 서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며, 달리기를 10m 정도. 나는 미끄러졌고, 퍽하는 소리와 함께 내 왼쪽 무릎인대는 완전히 파열됐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무릎을 부여잡고, 악악 소리를 내는 거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뼈가 부러진 건 아니라 생각보다 고통의 지속시간이 길지 않았던 거 같다.
그대로 구급차에 실려가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동이라는 것을 처음 이용하게 됐는데, 24시간 전문간호인력이 상주해 있어 따로 간병인과 보호자를 둘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병실에서 자게 되었다.
고통이 잠잠해지자 걱정이 밀려왔다.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못 깨어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고 하고.. 무엇보다 이틀 뒤에 새 회사에 입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4개월 동안 전문교육을 이수했고,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평생 몸을 무기로 살아왔던 내가 다리 한 짝을 쓸 수 없게 되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순간 좌절하기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나의 정신상태였다. 그래 뭐라도 하연 되겠지. 일단 다리 낫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