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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Sep 13.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유령들(2)


    김 씨는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김장철이라 짐칸에는 절인 배추만 한 가득이었다. 어서 배달을 마치고 자리에 눕고 싶었다. 하-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순간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탑차가 양옆으로 휘청거렸다. 핸들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곤 밖을 내다봤다. 낡은 승용차가 탑차 옆구리를 보기 좋게 갉아먹어 놓았다. 도대체 누가 시골길에서 이따위로 운전을 하는지, 하마터면 논두렁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한바탕 쏘아줘야 속이 후련할 듯했다.   


 이 새끼야! 운전 똑바로 안 해!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어?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사과는커녕 얼굴도 내보이지 않으니 부아가 치밀었다. 부서져라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갑자기 운전석과 조수석 문이 열렸다. 김씨는 문에 떠밀려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유난히 살갗이 검은 남자 둘이 서둘러 내리더니 이내 길 끝을 향해 내달렸다. 뺑소니구나! 김 씨는 여기서 저들을 놓치면 땡전 한 푼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뒤를 쫓았다. 하지만 어찌나 몸이 날쌘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씨익- 씨익- 가쁜 날숨과 함께 화를 내뱉으며 다시 탑차로 돌아왔다.


    으……. 으……. 승용차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강아지인가 하는 마음에 김 씨는 창문에 얼굴을 대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습기 뒤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세상에! 그 자식들 납치범이었나! 뒷문을 열어젖혔다. 외국인 남자가 뒷좌석에 구겨져 있었다. 바지는 새빨간 핏물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김씨는 부리나케 112와 119에 신고했다.




    타랑가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구급대원들은 커다란 거즈로 상처 부위를 누르고 붕대를 감았다. 의료진은 병원을 뛰어다니며 바삐 수혈할 혈액을 찾았다. 하지만 타랑가는 병원에 옮겨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향년 34세, 사인 과다실혈에 의한 저혈량 쇼크사.


    살인사건에 조용하던 시골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낡아빠진 승용차의 동선을 되짚어 숙소에서 황급히 도망쳐 나오는 다눈카와, 축 늘어진 타랑가를 들처업고 나오는 두민다의 모습이 담긴 CCTV영상을 찾았다. 맨손으로 도망친 다눈카가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으리라는 판단 아래 대규모 경찰병력이 검거에 투입되었다. 며칠 뒤 다눈카는 농막 한 켠에 숨어있다가 체포되었다.


다눈카(가명),  죄명 상해치사


    수사는 간단했다. 그날의 참상을 담은 CCTV영상부터 다눈카의 옷가지와 과도에서 발견된 다눈카와 타랑가의 유전자, 수많은 목격자들의 진술까지 증거가 차고 또 넘쳤다. 몇 가지 보완수사를 마치고 망설임 없이 다눈카를 구속 기소했다.


    연말을 맞아 검찰청 의료자문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의료지식이 부족한 검사들에게 바쁜 와중에도 의학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위원 한 분 한 분께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러다 우연히 응급의학과 교수님과 악수를 나눴다. "뚝 검사님이신가요? 얼마 전에 외국인 살인 사건이 있었지요? 그 사건 피해자를 치료했던 사람입니다. 허허" 이유 모를 반가움에 한껏 미소를 지었고, 사건 이야기를 주제로 담소를 주고 받았다.


저는 그 사건이 안타깝더라구요.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에 왔으면 살았을 텐데. 피를 너무 흘렸어요.
대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뭘 한건지 모르겠더군요.


영화 '방가방가',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었던 알리 역의 방대한 배우 [출처 : 네이버 영화]



    락산과 두민다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다. 한국에서 지낸 기간이 얼마인데 119도 모르느냐고. 타랑가를 살리고 싶었으면 그 자리에서 119에 신고를 왜 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두 사람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보며 말했다.


나 돈 모아야 해. 가족 돈 필요해. 119 나 잡아가. 경찰 나 잡아가. 전화 못 해.



    불법체류자. 그 숙소에서 타랑가를 뺀 모두가 불법체류자였다. 관광비자, 단기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한 뒤 체류기간이 끝나고도 고국에 돌아가지 않은 채 공장에서, 농장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만약 이들이 한국인이었다면, 적법한 체류자격이 있었다면, 타랑가는 전문가의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아 목숨을 구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다눈카는 상해치사죄가 아닌 특수상해죄로 처벌받았을 텐데. 특수상해죄(징역 1년 이상 징역 10년 이하)가 상해치사죄(3년 이상의 유기징역)보다 법정형이 낮으니 조금이나마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텐데,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끔찍한 기억 따위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는 짙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엄격한 출입국관리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볼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검사로서 출입국정책에 관해 왈가왈부할 권한도, 능력도 없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삶은 항상 고단하기만 했다. 다눈카가 구속 기소된 그 날, 락산과 두민다 그리고 그 숙소에 있던 외국인노동자들 모두 출입국사무소로 인계되었고, 강제출국되었다.


    그날 검사실 전화는 불이 났다. "검사님, 이렇게 갑자기 직원들을 쫓아내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당장 내일까지 납품을 해야하는데.", "검사님, 지금 딸기를 따야합니다. 그런데 외국인 아니면 일손이 없어요. 이거  썩어버립니다.  죽어요, 정말."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에 돌아가던 공장이며 농장의 업주들이 전화기를 붙잡고 소연을 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은 없었다. 유령으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유령의 혜택을 보고 사는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제는 시골을 떠나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접할 기회는 자주 없지만 기록으로나마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면 여전히 풀지 못한 고민이 실타래처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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