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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Feb 09. 2023

나에게 맞는 여행이란?

기차 안에서 글쓰기.

좋은 여행 이란...

내가 살고 있는 북 캘리포니아는 일 년 내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한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고 또 한여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는 겨울과, 애매하게 짧은 봄, 가을, 대략 11월 에서 3월, 정도에만 허락되는 귀한 손님이시다.  

대체로 하늘에서 뭔가 내려오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다 보니 한겨울에는 일부러 눈을 찾아서 지대가 높은 산악 쪽으로 눈구경을 위해 몇 시간씩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 눈이 내린 뒤라도 도로 사정이 좋다면  보통은 3~4시간 정도운전하고 가면 되지만 폭설이 있다거나 길에 사고라도 있는 날에는 시간을 장담할 수 없고 특히 운전 중에 눈이라도 내리게 된다면 평소의 두 배가 훌쩍 넘는 6~7시간씩 길에 묶여있거나 길에서 밤을 새울 수도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눈구경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의무감에 해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겨울여행을 했었다. 가끔은 눈에 갇혀 4시간이면 도착할 길을 10시간 넘게 걸려서 돌아온 적도 있었고, 폭설과 강풍을 맞으며 차바퀴에 스노체인을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힘든 여행을 했지만 눈 속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저 힘든 과정이 수고로 느껴지지 않았고 겨울 여행은 저 정도는 해야지... 하며

해마다 눈을 찾아 떠났었다. 올해도 겨울이 찾아왔지만, 눈 속에서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이젠 다른 더 재미있는 일들이 있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에 도로에 나가는 수고가 정말 수고스럽게 느껴지다 보니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눈 구경은 하고 싶고, 운전하기는 싫고, 그래서 이번에는 남이 운전해 주는 차,  

기차를 타고 눈구경을 하러 가기로 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위풍당당 Amtrak!!

출발은 San Francisco 근처의  Emeryville Amtrak Station 도착은  Reno, Nevada.

집에서 Emeryville 기차역까지 가는 게 좀 번거롭기는 했지만  다행히 이번 여행의 도착지 Reno기차역은

도시의 한복판에 있고 주변의 호텔들은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이번이 미국에서는 두 번째 기차여행이다.  첫 기차여행은 2022년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 까지,

시간표상에서는 22시간이지만 실제로는 24시간이 걸려서 왔다.

이번 기차여행은 1박 2일의 아주 짧은 여행이었다.

아침 9시 출발해서 오후 4시에 도착, 기차 안에서 1박 하는 긴 기차여행을 먼저 경험해서인지 이번 7시간의 여행은 상대적으로 심적인 부담이 덜했다. 처음부터 기차를 타고 오가며 설경을 보는 게 여행의 주목적이었기에 별다른 일정 없이 이렇게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정해진 날짜 안에서 되도록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바쁜 여행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선호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느린 기차여행은  정말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매번 여행을 마칠 때마다 되돌아보면, 즐거웠던 기억과 함께 후회와 아쉬움등도 늘 같이 올라온다.

내게 맞는 여행은 무엇일까? 좋은 여행은 무엇일까?

여행을 계획하면서 는 주로 가고 싶었던 곳, 보고 싶었던 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또 먹고 싶었던 음식에 대한 정보도  함께 찾아본다.  그렇게 보고 즐기고 먹을 계획을 대충 이나마 머릿속에 넣고 나면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는데 나머지 시간은 어찌 지낼까? 하는 생각이다.  하루종일 보고 먹고 지내는 것이 아니기에

중간중간  자투리 시간들이 늘 남는다. 여행은 휴식이 필요해서 간 거니까 나머지 시간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롯이 휴식에만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행 일정이라는 게 늘 생각한 데로만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어느 때는 그런 자투리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급하게 일정을 쫓다 보면 숨 쉴 겨를도 없이 여행이 다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번여행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차에서 보내다 보니 그 안에서 먹고, 쉬고, 또 뭔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집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항상 한자리에서 오래 하기가 어렵다 가족들의 먹거리도 챙겨야 하고 잡다한 집안일들이 늘 머릿속에 있기에 중간중간 집안일을 해가며 작업을 하다 보면 늘  몸과 마음이 분주해서 한 가지 일에 긴 시간 동안 집중하는 게 쉽지 않다.

이번에 어찌하다 보니, 내가 참가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의 첫날 줌미팅을 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다들 열심히 하자며 각자 다짐하고 서로 격려하는 첫 미팅이 끝나고 나는 그 다짐이 흐트러지기 전에 큰 창과 넓은 테이블이 있는 기차의 스낵칸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폈다.

기차는 달리고 있고...

창밖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지나가고 있고...

커피 한잔 귤 한 개가 내 앞에 있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백색소음처럼 내 주위에 깔리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

함께 한 남편은 유튭과 게임의 바다에서 역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헤엄치며 즐기고 있고...

집중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평소 스케치여행을 하고 싶어서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짧은 야외스케치 정도만 했을 뿐 제대로 된 스케치 여행을 해본 적은 없었다.

평소의 여행은 주로 새로운 도시를 보거나 다른 나라의 명소를 찾아가는 식의 여행을 즐겼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조금 다른 방향의 여행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만의 맞춤 여행, 말하자면…

글 쓰기 위한 여행.

스케치 여행

정원을 찾아가는 여행

미술관 투어를 위한 여행.

나를 찾는 여행.

생각해 보니 한도 끝도 없고 또 웬만한 건 여행사들이 이미 헤드라인으로 많이 내놓은 문구 이기도 하지만,

내가 주도해서 나에게 최적화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설렌다.

이번 기차여행은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글쓰기 좋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갈 때 한편 돌아올 때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실수로 그 두 편의 글을 날려 버리고

집에 돌아와 기억을 더듬으며 날아가버린 조각들을 다시 모으고 모아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중간중간 저장을 잘했어야 하는데… 여러 번의 실수를 통해서도 학습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또 이렇게 증명하게 된다.

기차가 산 정상으로 올라가니 아름다운 Donner Lake 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번의 이 짧은 여행도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 계획한 데로 순탄하게 흐르지는 않았다.

기차 스케줄상에는 7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철도사정으로 거의 10시간이나 걸려서 Reno에 도착했고 돌아오는 기차도 2시간 넘게 연착해서 이런저런 번거로운 일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목적이 기차에서 보는 설경 감상이었기에 몇 시간의 기차 연착은 창밖에 보이는 설산과 흰 눈을 이고 있는 겨울나무들, 켜켜이 쌓여있는 눈밭을 감상하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서 쓰고 싶던 글도 두 편이나 쓸 수 있게 해 주고 예상치 못했던 고마운 선물이다. 좀 더 오래 기차를 타면 글을 좀 더 많이 쓸 수 있지않을까?

내친김에 3박4일 걸린다는 횡단열차를 타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미쳤어?...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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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기차여행 ... Seattle 에서  San Francisco 까지의 글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976af4231b554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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