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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Oct 08. 2023

슬픔의 무게

죽음을 대하는 자세...

슬픔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슬픔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나에게는 형제자매가 떠났을 때가 가장 무거웠고

그다음이 부모 그다음이 조부모였다. 


얼마 전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는 부모님과 남다른 애착 관계를 갖고 있었기에 친구의 인생에 부모님의 자리도 남달리 컸었다.

20대 초반 그 친구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는 친구의 상심이 정말 걱정이 되어서 거의 매일 

귀찮을 정도로 안부 전화를 했었다. 

일찍 떠나신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90을 훌쩍 넘기시고 기력을 잃어 도움이 필요해지자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주변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헤어짐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떠나셨다.

서로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살기에 장례식에 참석은 못해도 전화로 위로의 인사를 전했고 가신분의 마지막 

이야기도 들었다.  친구에게 마음 깊은 위로는 전했지만 천수를 누리다 예정된 길을 가신분에 대한 나의 

애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금세 지나간 일이 되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떠나신 지 3개월쯤 지나서 한국을 방문했고 다른 친구 부부도 함께 만나 식사자리를 갖었다. 근 1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 반가워서 늘 그랬듯이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데 친구의 분위기가 

그전과 사뭇 달랐다.  얼굴은 웃고 떠들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말이 자꾸 끊기고 이야기가 

술술 이어지지 못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어 곰곰이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친구는 엄마를 보내드리고 슬픔의 애도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친구를 대한게 상처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나를 잡고 울고 싶었을지도... 

언니의 장례식 때,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를 보자마자 내가 잡고 울었듯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친구의 슬픔의 깊이를 내가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친구의 슬픔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사실 나는 죽음에 대해 되도록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빨리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누군가의 부고를 들으면 고인과의 헤어짐이 말할 수 없이 슬퍼 눈물을 흘리지만, 일찍 떠나든 천수를 

누리다 가시던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언제부터일까...  내가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게. 

원래 나는 무척 겁도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별일 아닌 것에도 겁을 먹고 걱정을 달고 살다 보니 

인생이 너무 힘들고 고단하다. 겁이 많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처음부터 시작도 안 하고

걱정이 많으니 또 걱정거리가 생길만한 일은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 하지만 세상이 어디 내 마음대로 

흘러갈까. 감당하기 어려운 무서운 일들, 해결할 수 없는 걱정스러운 일들은 늘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중 누군가의 죽음 특히 가족의 죽음은 내가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가족들이 다 건강히 잘 지낼 때도 막연하게(나는 걱정이 팔자인 사람이라) 

가족 중 누군가가  먼저 떠난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 적이 많은데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밤에 베개를 적시도록 쓸데없는 눈물을 쏟아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걱정도 팔자인 성격...  

그래서 나름 내린 결론은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니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이유는 이렇게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대해 거스르지 않고  '항복'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40대 나이에 갑자기 골수종이 발병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는 언니소식을 들었을 때, 

오랜 지병으로 기력이 약해져서 몇 번의 Stroke 이 있었다는 아버지 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마다 나는 사실 '항복'하는 마음으로 걱정하지 않고 겁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내 불안함을 언니나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

암 진단받은 후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언니가 떠났을 때는 언니와 좋은 시간을 많이 나누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한창 사춘기의 두 아들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언니생각에 많이 울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꿈이 많았지만 힘든 시절을 지나오며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의 인생이 너무 가엾어서 많이 울었지만 언니와 아버지의 시간은 거기까지구나... 꽃이 피면 지듯이...라고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나의 애도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슬픔의 무게를 빨리 덜어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2~3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친구도 나처럼 일상으로 돌아와 있을 줄 착각을 했었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친구의 슬픔의 무게는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친구와의 어색한 만남 후 카톡으로도 그리고 위로의 선물과 함께 간단한 편지로도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게 한계가 있기에 직접 통화하며 진심을 전하는 사과와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나 기다릴 테니 손만 놓지 말라고 전했다.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은 하나도 없다.

정말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눈 친구이기에 지금은 그 친구의 상처만 보인다. 

상처가 빨리 아물고 그 잘 아문 상흔을 어루만지며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빨리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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