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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Apr 03. 2024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군대에 간 동생

동생이 군대에 갔다.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어른스러운 애라서 철이 없는 누나를 오히려 챙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 어른스럽다가도 애 같고, 괜히 놀리고 싶어지고, 고민이 있으면 조금 덜 흔들리게 된 척을 하며 들어주고 싶고, 종종 마음이 맞으면 엄마 아빠 몰래 짓궂은 작당모의를 하는 -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들 다 가는 군대라지만 내 동생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가족으로부터, 이 사회로부터 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떨어지게 되니 마음이 섭섭하기만 하다. 덤덤한 척 가지만 또 본인의 속마음은 어떨까? 


사진 속 박박 깎은 동생의 머리를 본다. 스님의 창백한 삼베옷이 생각나는 옅고 푸른 회색이다. 오랜 시간 정수리와 뒤통수를 덮어온 머리를 가차 없이 깎아낸 서슬 퍼런 면도날이 차갑기만 하다. 입영통지서가 온 날부터, 입대를 마음먹고 휴학을 신청한 날부터, 삼수 끝에 군대에 "합격"한 날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줄 알았는데 막상 오늘이 되니 모든 준비는 0으로 돌아간다. 아마 그간의 준비는 오늘을 위한 거짓말이었나 보다. 이 정도 마음을 먹었으면 덤덤하게 보내줄 수 있을 거라는. 


이별의 순간 옆에 있는 엄마 아빠의 마음도, 멀리 학교에 있는 내 마음도 그게 아니다. 알면서도 잘 안 된다. 모든 이별은 파도처럼 밀려와 그간 쌓아 올린 모래성 같은 마음을 속절없이 무너뜨리는 것을. 


군대는 공백이라고 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일 년 반이라는 긴 쉼표를 찍는 것이고, 그가 속했던 모든 세계에도 커다란 구멍을 남겨 놓는 것이다. 그 구멍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나고 듦에 따라 서서히 메워지겠지만 긴 쉼표의 갈고리는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을 쿡쿡 찌른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이별의 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일 년 반 후 세상에 다시 나올 네 눈에 비칠 세계는 얼마나 낯설까? 일 년 반 후에 보게 될 네 모습은 얼마나 새로울까? 이제는 군대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가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세계에서 살던 사람이 느낄 충격을 상상해 보게 된다. 


가족 톡방에 여전히 남아있는 "1"이란 숫자가 눈에 밟힌다.

오늘의 상념과 넋두리는 과거에서 온 편지가 되어 네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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