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는 현역 시절에 매번 무결점 무대를 선보였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아무리 미디어들이 그녀의 경쟁상대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를 꼽으며 두 사람의 실력을 비교하려고 했지만, 사실 상 김연아 선수는 과거의 자신을 능가하기 위해서 경기를 계속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인이 세운 최고기록을 계속해서 경신하는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늘 뜻 대만 되지 않는 게 세상 일이다. 그렇게 높은 실력을 가진 김연아 선수도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넘어졌으니 말이다. '운도 실력'이라고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김연아 선수의 위대함은 실수로 넘어지고 난 이후에도 담대하게 경기를 계속해서 결국 금메달을 따냈다는 데 있기는 하다.
결과만을 놓고 판단하려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사실 너무 힘들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어떤 일을 끝냈다고 해도 반드시 그 일을 '완벽하게 잘 해냈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 우리가 경험한 것들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때로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피치못할 상황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능력한 것일까?
우리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도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 내가 해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비록 실수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떨기도 하고, 운이 나빴더라도 노력한 나를 인정해 줘야 한다. 나는 수많은 과정의 단계 단계를 착실하게 밟아온 것만으로도 우리가 기울였던 모든 노력은 인정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웰씽킹>의 저자인 켈리 최 회장은 지금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던 회초밥 도시락 창업을 하기 직전에 약 2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두문분출하던 '멈춤의 시간'을 가졌다. 그녀의 일본 유학담부터 프랑스에서의 첫 번째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녀의 성격이 담대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신선한 초밥 도시락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성공하기 전까지 그녀 역시 첫 번째 사업의 실패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칩거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게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나 역시 직장인으로 지내는 동안 자주 '리셋(reset)' 버튼을 눌렀던 사람이 되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계속 방향 전환을 하는 동안에 내 삶 전체의 추진력을 잃었던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 때가 많았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에는 쫓아야 할 가치들이 많다. 그런데 오직 일 위주로 우선순위를 정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챙기지 못하면서 살게 될 때가 자주 있다.
어떻게 보면 나 역시 스스로 '퇴보'라고 정의했던 순간들 역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나의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다녔던 회사의 리스트가 길어진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도전한 나의 삶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게 있어서 리셋의 의미는 ‘끝까지 희망을 갖는다’고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건 리스크였다. 리스크를 줄이는 게 인간의 생존의 기술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앞에 계속해서 놓이게 되면 불안감은 커지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잦은 리스크와 자꾸만 커져가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과 조직을 경험해 보는 쪽을 택하는 이유는 다양한 경험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직 역시 실제로 시도해봤을 때에야 이 일이, 이 조직이 나랑 진짜 안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자주 있었다. 게다가 시도해보고 안 맞는 결과에 이르렀다고 해서 나의 모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만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될 때가 많았다.
과거에 해온 일들은 결국 나의 자산이 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뒤처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내가 과거부터 해온 모든 일들이 언젠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분야에 적용이 될 때가 있다. 그러니, 나의 선택이 그 당시에 반드시 성과를 내지 않았더라도 다음에 하는 일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제 나는 인생의 모든 결정을 오로지 실리적인 관점으로만 내릴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히려 실리적인 결과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다 보면, 아깝게 놓치고 지나가는 경험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일을 하는 동안 세상을 바꿀 만큼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아니지만,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책임을 다하고 계속해서 좀 더 나은 스스로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맞다.
어느덧 일터에서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내 삶에 대한 확신은 다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확신은 오직 스스로 가지는 것이다. 이제야 말로 훨씬 더 나다운 삶을 사는 게 화두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가장 스스로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야 말겠다는 남다른 의지는 필요하다.
‘리셋’이면 뭐 어때! 해보고 아니면 ‘이건 나랑 안 맞는구나. 다음부터는 하지 말아야지’하고 배우면 된다. 그리고 다시 하면 그만이지.
내 인생에 가끔 리셋은 필요했던 건 분명하다. 얼마 전부터는 리셋을 통해서 단순히 멈춰있었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성장을 위한 능동적인 재정비의 기회였다고 관점을 바꿔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