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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Nov 03. 2024

뮤지컬 루카스 덕분에

자꾸 잊는 감사함

수능을 보는 달, 갑자기 추워지는 그런 달, 11월이 왔다.

큰 애도 꼭 1년 후에는 수능을 보겠지...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나이스에서 확인한 그 순간 얼음놀이를 한 것만 같았다.

나도 얼었고, 아이도 얼었다.

누군가 "땡~!"을 외쳐주길...

하지만 현실은 쉽게 녹지 않았다.


자연스레 아이를 대하는 말투에도 서리가 꼈다.

어쩐지 시험이 코 앞인데도 그렇게 놀더라니...

정시로 가더라도 내신에 노력한 애들이 수능을 잘 본다고!

눈치 보는 아이에게 한 바가지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말한들...

서로 거칠어지는 대화가 불편할 뿐이었다.




작은 애는 중3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말고사를 10월 말에 끝내버렸다.

제발... 중학생으로 보는 마지막 시험인 만큼 딱 한 번만이라도 잘 보자!

그렇게 기도했건만, 아직 기적을 보여주시는 타이밍이 아닌가 보다.


다음에 잘할게요.

다음에, 다음에....


그놈의 다음이라는 기회는 천년만년 있는 것이 아니란다..

한숨 쉬는 엄마를 웃기려고 한 건지 둘째의 입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마, 제가요... 시험 점수가 낮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요."

뭐지.. 적어도 메타인지는 발달한 건가? 기대하고 물어봤다.

"그래? 도대체 뭐야?"

"음.. 제가 마킹 실수를 절대 하지 않아요. 그래서 실수로 정답을 고를 확률이 낮아요!"

"................."


그래, 얼음땡 놀이보다는 이게 낫다.

피식, 입주위 근육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교회 모임에서 함께 뮤지컬을 보고 식사를 했다.

<루카스>는 발달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극이다.


주인공 현우는 상견례에서 무슨 이유로 결혼 파투가 난다.

그 충격으로 캐나다에 쉬러 갔는데, 발달장애인들을 돌봐주는 가정집에서 원치 않게 머물게 된다.

발달장애인들 중 커플이 있었는데 곧 출산을 할 예정이었고 주인공은 그것을 비난한다.

제대로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를 도대체 왜 낳냐고..

심지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죽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의사가 말한다.

하지만 출산 후 기적적으로 17일을 살았고 그 17일 동안 발달장애인 부부는 잠깐 찾아온 아기, 루카스에게 감사하며 동시에 상처받은 주인공의 마음도 따뜻하게 녹였다.

<스포 주의!>

알고 보니 주인공 현우의 아버지가 발달장애인이었고, 아버지가 상견례에 참석하면서 파투가 난 것이었다.


"나는 내 이름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아빠지만,

우리 아들 루카스 이름을 열심히 연습해서 출생신고서에 썼고,

세례를 받아 하늘에도 내 아들이라고 이름을 남겼으니 나는 루카스 아빠가 맞아요.

이런 나를 아빠로 만들어준 소중한 루카스야, 너무 고마워..

나중에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많이 놀아줄게!"


뮤지컬은 내 마음도 함께 녹였다.




눈치 보는 아이는 기숙사로 가기 전 슬쩍 귀가 간지럽다고, 뭐가 있는지 봐달라고 말한다.

엄마는 노안이 와서 위험하니 이제 귀를 봐주지 못할 거라 했다.

그래도 괜찮댄다.


덩치가 나만한 아이는 애착인형을 들고 내 침대로 와서 귀를 보여주며 살포시 눕는다.

작은 애는 엽기적인 농담이라도 던질 줄 알지만 큰 애는 이게 최선의 표현인 것이다.

안 보이는 눈을 비비며 아이 귀를 살폈다.

느낌적으로 귀지를 제거하자 살짝 올라간 아이의 입꼬리가 보였다.


루카스는 17일 동안 부모에게 큰 기쁨을 줬는데 우리 아이는 17년 동안이나 기쁨을 주었음에도 매일 감사하기는커녕, 성적표 하나에 그토록 이른 겨울을 만들어버렸네...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너에게 고맙다고 말해도 부족한데 말이야.


루카스 덕분에 아이도 나도 편안한 11월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m.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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