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이 푹 퍼져 뜸이 들 수 있도록 불을 줄여야 하는 시간이 온다. 바깥으로 들끓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안으로 잦아들도록 마음의 심지를 낮춰야 하는 시간. 40대에도, 50대에도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면 밥은 타버리고 말 것이다. (김효원,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중)
지금, 내 심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한다.
아마 절반도 남지 않았을 마음의 심지를 뜨거운 청춘이라 오해하고 있지 않은지. 지나치게 심지를 올리려 욕심부리다 하얀 뿌리가 드러나지 않았는지. 석유풍로를 사용해 본 사람이면 안다. 뿌리 끝까지 심지를 올리면 그을음만 난다는 것을. 관계 속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을음처럼 속이 타는 일이 생긴다면 자신을 돌아보자. 겸손을 망각하고 공연히 자존심을 높이지 않았는지. 나의 부끄러움을 찾기보다 자랑거리를 먼저 찾지 않았는지. 나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드러내게 하지 않았는지. 어쩌면 지금은 불이 꺼지지 않을 만큼 심지를 내리고, 인생의 뜸을 들여야 할 나이. 그동안 열을 가했던 삶들이 차분히 하나의 요리로 완성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하는 시기. 좋은 요리는 가열보다 뜸과 숙성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우리 이제 고요하게 살자.
자존심의 심지를 낮추고 뜸이 들기를 기다리듯 고요한 시간을 살자. 이유 없이 억양을 높이는 풋내기 연인들의 대화가 거슬리지 않고, 올망졸망 남매 손잡고 나들이 나온 4인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면, 이미 고요한 시간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이웃집에서 들리는 부부싸움 소리조차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익숙함 때문이고, 우리의 시간들이 이제 많은 일에 익숙하단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익숙해질 무엇이 없을 때, 고요한 것이다.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한 고요한 시간을 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