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할머니, 그리고 미국 유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계시는 미국은 아침 6시, 나와 나머지 멤버들이 머무는 한국은 밤 9시다. 다행히 이곳은 금요일 저녁이라 한 주를 마감하며 느긋하게 할머니와 따뜻한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된다. 그 생각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다. 드디어 그 시간이 다가왔다.
▮낯선 사람들, 공통 분모인 나
많은 사람들을 모집해서 온라인 영어 성경 스터디를 운영하려는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나의 삶의 가치를 좀 더 의미롭게 다듬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좋은 분들을 늘 곁에 두고 함께 삶을 나누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멋진 모임이 결성되었다. 총 4명의 모임이 초대 멤버이다. 한 분은 미국 유학 생활 나를 친언니처럼 챙겨주시던 분이고, 나머지 3명은 최근 영어 소설 읽기 모임에서 만난 좋은 분들이다. 그리고 이 모임의 리더는 레인 할머니다. 할머니는 내가 미국 유학 시절 첫 학기에 만난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멋진 할머니시다. 그 분들과 같은 시간, 같은 온라인 공간에 만났다. 그 공통 분모는 나다. 참 유치하지만 다들 내가 모이라 하니 기꺼이 모였다. 무슨 마법 봉이나 췌면을 건 것도 아닌다,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그렇게 마법처럼 우리는 세월을 건너 뛰고 물리적 거리도 건너뛰어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고 있다.
▮따뜻한 소통의 시작점
삶에 대한 따뜻한 소통의 시작은 뭘까? 그저 일상의 가십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토킹 클럽보다는 지혜로 가득한 그 책, 성경을 함께 나누면 그게 바로 따뜻한 소통의 시간이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그리고 실제 현실로 만들 수있게 된 건 순전히 레인 할머니께서 기꺼이 이른 아침을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허락해주셨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경 지식이 풍부한 미국 할머니는 흔하고 흔하다. 하지만 그렇게 삶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분은 참 드물다. 레인 할머니는 참 성숙된 크리스찬이시다. 그런 할머니와 한 달에 한번 만나 정기적 소통을 하기로 했다.
▮일단 해보는 거야
의도와 목표, 방향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의 그림을 막상 그릴려니 우려되는 바가 좀 있었다. 성경에 대해 완전 초보자에서부터 오랜 신앙생활을 하신 분에 이르기까지 몇 명 되지 않는 모임이지만 그 안에 차이가 컸다. 또 영어로 듣는 줌 대화러 영어 소통 능력이 중요한데, 그들의 영어 소통 능력도 차이가 컸다. 게다가 서로 완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열게 하고 그 내용을 이해시킬지 우려가 되었다.
할머니께도 이미 이러한 사항을 말씀드렸고 미리 조율하기 위한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처음으로 비영어권 사람들에게 그것도 줌으로 바이블 스터디를 진행하시는 70대 중반의 미국 할머니이신 레인은 신경이 쓰이셨는 지 2주 반 전부터 미리부터 읽을 바이블 부분을 알려주셨다. 첫 시작은 (창세기 1~3장) (마가복음 1장)을 미리 읽고 줌 미팅에 오라고 미션을 주었다. 그리고 미리 묻고자 하는 질문을 던져주셨다.
Who does Jesus claim to be?
What do others say about Him?
Who do you think Jesus is?
Why did Jesus die? Why did He come?
What does it mean to follow Jesus?
What is the gospel?
Genesis 3 gives us information about the "bad news". How would you explain what happened in the garden, and does it affect us today?
과연 할머니의 이 진중한 질문을 그 멤버들이 소화할 수 있을까?
▮드디어 the- Day 밤 9시
카톡 캘랜더 기능을 걸어두어 참석유무를 미리 알려달라고 했으나 아직 그 툴이 서투신지 결국 무응답이 여러 명.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인 카톡 메시지를 보내니 다행히 전원 다 참석~
신기하다. 멀리 미국 사는 내가 언니라 부를 만큼 오랜 세월 알고 지내던 분,
최근 스터디 그룹에서 만난 새로운 분들,
무엇보다 미국 남부 시골 고즈넉한 마을 숲 가운데 살고 계시는 레인 할머니를
이렇게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게 가능하다니.
그것도 성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다니...
그 먼 옛날 난 30분 운전해서 가야 겨우 그 할머니 집 거실에 앉아 이런 저런 스몰 토그와 성경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이제 이렇게 세월이 5년씩이나 지나고 이렇게 멀리 한국으로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할머니 집 그 거실에서 듣던 이야기를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신기하다.
▮무료 Zoom 버전
한 달에 2시간 정도만 줌 모임을 하기 위해 유료 회원 가입을 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결국 무료 버전으로 첫 모임을 해보기로 했다. 40분 후 자동 로그 아웃이 되니 40분이 되었을 때 미리 공지하고 다시 로그인 해오면 되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40분을 최대한 아껴쓰려고 9시 정각에 시작했다. 다행히 6명 멤버 (Cathy, Angie, Milk, Soyoung) 모두 거의 정각에 입장해오셨다. 비디오를 켜는 거, 오디오를 켜는 거도 아직 바로 습관이 안되셨는 지 한 참후에야 얼굴이 보이는 분도 계셨다. 다행히 카톡으로 메시지를 남겨 비디오를 켜달라고 하기도 했다. 아무튼 줌이 다들 자주 해본 모임 방식이 아니라 적응이 좀 안되었다. 누군가가 작은 소리를 내기만 해도 그 사람이 화면한 가운데 나타나는 식이라 약간 산만했다. 그리고 아무리 얼굴을 보고 있지만 세세하게 서로 간에 소통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명쾌하진 않았다. 어떨 땐 두 분의 말이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군다나 할머니를 위해서 다 영어로 말까지 해야 하니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긴장을 하는 듯 하다.
첫 40분 세션이 끝날 무렵 나는 이제는 말해야지 저제는 말해야지 하고 최적의 순간을 잡으려 했으나 할머니의 설명은 계속 이어지니 대략 난감했다. 그래서 결국 아무런 메시지 없이 그들은 강제 로그아웃 당했고 할머니의 말도 중간에 그냥 사정없이 잘려버렸다. 그리고 녹화 버튼을 중지하고 나니 동영상으로 파일 전환을 선택하니 또 몇 분이 소요되어 결국 그 옵션을 포기했다. 대부분 멤버들은 내가 다시 그 줌의 대기실에서 나의 클릭을 기다리고 있다. 첫 40분의 내용을 동영상 파일로 남기지 못하고 급하게 다시 로그인 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중간에 맥이 끊기니 대화를 다시 원래 상황으로 돌리려니 잉여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40분 후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애초에 모임을 한 시간으로 예상했기에 두 번째 세션은 녹화를 눌러 동영상으로 변환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이번에는 녹화 버튼 누르기를 깜빡했다. 그리고 역시나 두 번째 40분 모임도 결국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다시 40분 무료 버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로그인이 안되고 10분 후에 로그인이 된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강제로 10분 휴식을 했다. 이미 시간이 밤 10시 반을 넘겨가고 있었다. 역시 무료 버전으로 이런 깊은 내용의 미팅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다음 모임엔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되었다.
▮모임에 대한 피드백
레인 할머니의 첫 온라인 성경 스터디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할머니께서는 가르치려 생각하신 부분을 다 언급하셨다. 할머니는 참가자들의 피드백이 많이 궁금하셨는 지 카톡으로 나의 피드백을 기다리고 계셨다. 다음 날 오전 두어 분을 만나 여쭤보니, 결국 내 예상대로 무료 줌 버전의 한계가 있다. 그리고 영어로 성경을 설명하니 스스로 이해하는 것에 확신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중간에 우리말로 설명이나 요약을 해주면 훨씬 도움이 될 거라 하신다.
나 역시 그 모임을 어떻게 하면 더 상호작용이 있게 할까 궁리를 해봤다. 성경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할머니의 강연은 무척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평생 성경을 처음 읽게 된 사람에게는 그 내용이 너무 함축적이고 양도 방대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할머니께 챗GPT를 활용해서 기본적인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해보라 귀뜸해드렸다.
70대 할머니가 챗GPT를 활용해서 줌으로 성경 공부를 그것도 외국인에게 한다는 것은 참 대단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는 기꺼이 챗GPT를 밀튼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해보리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이메일로 질문 리스트를 보내오셨다.
40분 마다 줌이 끊기고 다시 들어가는 방식이 가장 고민이었는데 이 문제도 밀튼 할아버지가 해결해주셨다. 할아버지가 이미 선교를 위해 다른 나라 목회자들과 줌 미팅을 하고 계시다고 하시며 이 모임에 당신의 줌 아이디를 사용하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녹화를 하면 그 대용량 파일을 나에게 보내는 부분은 좀 더 알아봐주신다고 하신다.
▮내 인생의 두 번 째 산
멀리 계시는 밀튼, 레인 할머니와 공동의 프로젝트를 한다는 사실이 참 즐겁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게다가 할머니와 함께 아직 신앙이 없으신 분께 그 길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는 게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두 번째 산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브룩스 (p. 21 )
이번 주일 목사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인용 해주셨다.
대단한 업적을 이룬 위 책의 저자는 첫 번째 산을 넘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교사인 내가 감히 첫 번째 산을 넘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난 이제 그 첫 번째 산 보다 두 번째 산을 바라봐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게 나를 좀 더 성숙되게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면 기꺼이 난 그 산을 바라보고 싶다. 다행히 나에게는 그 산을 이미 올라가 계신 레인할머니, 밀튼 할아버지가 함께 해주신다니 난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