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토닌 캡슐을 손에 쥔 채, 나는 기사를 다시 읽었다

“자연스럽고 안전한 수면제”라는 말 뒤에 붙은, 심부전 이야기

by 전의혁

밤 1시 반, 책상 위에는 노트북 불빛과 반쯤 마신 허브티, 그리고 작은 하얀 캡슐 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멜라토닌.


야근이 길어진 어느 날, 약국에서 집어 온 이후로
잠이 안 오는 밤이면 한 알씩 꺼내 들곤 했다.
“몸에서 원래 나오는 호르몬이라 괜찮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안심 버튼처럼 작동했다.


그러다 며칠 전, 한 기사를 읽었다.
“장기 멜라토닌 사용, 심부전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손에 들고 있던 캡슐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이 데이터는 아직 학술지 논문이 아니다.
2025년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심장협회(AHA)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초록이다.


AHA는 이런 초록들은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았고,
전문 학술지에 논문으로 실리기 전까지는
‘예비적’ 결과로 봐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럼에도 숫자는 꽤 눈에 쏙 들어온다.


뉴욕 브루클린의 SUNY 다운스테이트/킹스 카운티 1차 의료 연구자들은
5년에 걸쳐 모은 13만 828명 성인 데이터를 들여다봤다.
모두 만성 불면증을 가진 사람들, 평균 나이 55.7세, 이 중 61.4%는 여성.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12개월 이상 멜라토닌을 처방받아 복용한 사람들,
그리고 한 번도 멜라토닌 처방을 받지 않은 사람들.


그 결과, 1년 이상 멜라토닌을 쓴 사람들에게서
새로 심부전이 진단될 가능성이 90% 더 높았다.
숫자로는 4.6% 대 2.7%.


심부전으로 병원에 입원한 비율도 달랐다.
멜라토닌을 쓴 사람들은 19.0%,
쓰지 않은 사람들은 6.6%.
거의 3.5배 차이다.


연구를 발표한 에케네딜리추쿠 은나디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멜라토닌 보충제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만큼 무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많은 위험 요인을 보정한 뒤에도
이렇게 일관되고 의미 있게 건강 결과가 나빠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20251212 _ 멜라토닌 캡슐을 손에 쥔 채, 나는 기사를 다시 읽었다 _ 2.png


AHA의 또 다른 전문가,
‘다차원 수면 건강’ 성명서를 이끈 마리-피에르 생옹즈 박사도 한마디를 보탰다.


“의사들이 불면증에 멜라토닌을 처방하고
365일 넘게 쓰게 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적어도 미국에서 멜라토닌은 불면증 치료를 위해 승인된 약이 아닙니다.
명확한 적응증 없이 만성적으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보충제 업계였다.


천연물협회(NPA)는
식이보충제는 애초에 질병을 치료·치유·예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1994년 식이보충제 건강·교육법(DSHEA)에 이미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NPA의 회장 다니엘 패브리컨트는 말한다.
이번 예비 연구는
보충제 업계가 겨냥하는 ‘일반 건강한 소비자’가 아니라
만성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
기존 문헌에서는 멜라토닌의 단기 사용이 안전하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들도 이렇게 선을 긋는다.
“명확한 적응증과 의료진의 긴밀한 상담 없이
만성 불면증 치료를 위해 멜라토닌 보충제를 복용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멜라토닌의 심장에 대한 장기 안전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추가 연구에는 찬성한다고 밝혔다.
업계가 FDA의 cGMP(우수 제조관리기준)를 지키며
고품질 제품을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른 업계 단체인 미국 기능성식품기업연합(CRN)도 나섰다.


CRN은 2024년 멜라토닌 자발적 표시 가이드라인을 내고,
최대 권장 용량과 함께 이런 문구를 넣도록 했다.


“간헐적 또는 일시적 사용에만 해당합니다.”
“장기간 수면 장애를 겪고 있다면 의료 전문가와 상의하십시오.”


CRN은 멜라토닌을
“수면 타이밍과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몸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호르몬”이라고 설명한다.


수십 년간의 소비자 경험과 여러 임상 연구를 근거로
지시에 따라 사용했을 때
저용량·단기 멜라토닌은 건강한 성인에서 안전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 AHA의 관찰 데이터가
이 안전성 프로필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덧붙인다.


“단일 연구, 특히 예비 초록 하나로
보충제 전체에 대한 과장된 공포 헤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연구의 한계도 분명하다.


연구진은 ‘TriNetX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이라는
국제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료를 모았다.
여기에는 멜라토닌이 ‘처방약’인 나라(예: 영국)와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나라(예: 미국)의 데이터가 섞여 있다.


환자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고,
미국처럼 멜라토닌을 자유롭게 사 먹을 수 있는 나라에서
보충제 형태로 복용하는 사람들은
이 연구에선 죄다 “멜라토닌을 안 쓴 그룹”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즉, 진짜 복용자들이 상당수
‘비멜라토닌 그룹’에 섞여 들어갔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한계는 “과연 인과관계가 맞느냐”는 질문을 더 크게 만든다.


20251212 _ 멜라토닌 캡슐을 손에 쥔 채, 나는 기사를 다시 읽었다 _ 2-1.png


NPA는
이번 연구가 간헐적인 멜라토닌 사용이나
FDA 규제를 받는 특정 보충제 형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
만성 불면증은 “보충제로 대충 버티는 상태”가 아니라
의사가 원인을 평가하고
치료 전략을 함께 짜야하는 질환이라는 것.


둘째,
멜라토닌이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이고
“자연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몇 달, 몇 년씩 아무 생각 없이 먹어도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셋째,
지금 손에 쥔 한 알의 의미는
“오늘 잠이 안 올 것 같은 밤을 무사히 넘기려는 작은 도움” 정도에
멈춰야 한다는 것.


노트북을 덮고 불을 끄기 전에
나는 멜라토닌 병뚜껑을 닫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이 한 알이 진짜 필요하다면,
그 이유와 횟수를 나 자신에게 솔직히 설명해 줄 것.
그리고 이런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다면,
보충제 병이 아니라 진료실 문을 먼저 두드릴 것.


자연스러운 것과,
무해한 것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 작은 캡슐이 조용히 일깨워 주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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