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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a Jun 08. 2024

케이블 선이 맞지 않아서

   평소 수업 시간에 노트북을 항상 들고 들어갑니다. 보여주기도 하고 들려주기도 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수업이라 디지털 기기 없이 가트치기가 힘듭니다. 더구나 오늘 나가야 할 진도는 강의식으로 화면에 파워포인트를 띄워주면서 진행해기로 계획된 수업입니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제가 입실하기 전부터 영어 반장의 선창에 따라 한 문장씩 큰 소리로 단원 본문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들고 들어온 노트북을 교탁 위에 올려놓고 교실 TV모니터로 송출하기 위해 HDMI 선을 꽂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노트북 화면이 모니터에 나오질 않습니다.


"어! 왜 안 나오지? 이전 반에서는 아무 이상 없이 잘 되었는데?"


"수학 시간에도 그랬어요. 다른 교과 시간에는 이상 없이 잘 나오는데 영어 시간과 수학 시간에만 그래요. 보니까 두 선생님이 같은 사양의 최신 노트북을 사용하시는데 그것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말에 갑자기 난감해졌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별 탈 없이 사용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각자의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활용하여 학습하는 활동으로 재빼르게 대체하여 수업했겠지만 곧 지필평가가 있는 데다 시험 범위까지 얼른 나가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할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노트북 사운드 볼륨을 최대로 크게 하여 원어민의 발음 소리를 들려주면서 칠판에 필요사항을 판서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학급입니다. 다행인 것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핵심 멤버들을 따로 불러 개별 상담을 마친 터라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혀 있었습니다. 어느 반보다도 더 집중력 있게 임하며 협조해 주는 학생들 덕분에 불편함 가운데에서도 진도 나가는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수리 업체가 학교를 방문하기에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간단한 설명과 함께 수리 신청을 했습니다. 업체 기사도 학생들 중 몇몇의 판단처럼 사양이 높은 노트북을 TV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교체해 볼 케이블 선을 들고 왔습니다. 그 학급이 이동수업이어서 빈 교실일 때와 제가 수업이 없을 때의 교집합 시간에 맞춰 업체에서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케이블 선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TV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선을 바꾸자마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수업부터는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답답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던 아이들도 다행이라면서 기뻐했습니다.


   최근에 받은 사양 높은 노트북이어서 이전 버전의 TV와 잘 안 맞아서 그런 것이라며 설명해 주고 떠나는 기사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모든 것에는 서로 맞는 사양이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V잘못도 노트북 잘못도 아닌데 서로 연결해 주는 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깨달음이 왔습니다.


   세대와 세대,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국가와 국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항상 불일치하는 점이 있는 법인데 이들을 연결해 주는 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또는 서로의 기능 차이에 따라 연결선의 작동 여부가 달라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연결선일까 노트북일까 TV일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나 모든 위치를 번걸아가며 담당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삐걱거림과 분쟁과 냉소 또한 누가 잘못하고 말고 없이 서로 사양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은 원인이 밝혀지지도 하고 어떤 것은 원인도 모른 채 분리되어 불편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에 대한 진단과 문제 파악은 전문가의 몫인 듯합니다.


   관계나 일의 진행 절차 또는 방법 등에서 우리는 문제를 종종 만납니다. 각자에게 문제가 없고 좋은 의도로 다가간다 할지라도 언제 어디서든 삐그덕거릴 수 있습니다. 어제는 괜찮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문제를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구하거나 중재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전문가가 늘 우리 주변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제 때에 맞춰 나타나 주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전문가를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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