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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a Jun 15. 2024

할머니 목에 뭐가 걸려서 숨쉬기 힘드시대ㅠ

30주년 결혼기념일 아침 딸이 보낸 톡!

   결혼기념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가족 톡방에 다급한 말투의 톡이 올라왔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여느 때처럼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목에 뭐가 걸려서 숨 쉬기 힘드시다며 말하기 힘드니 끊으라고 하셨다는 딸의 톡이었습니다.

   30주년 결혼기념일을 기념하여 퇴근 후에 남편과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못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문제가 있으신지 안정되지 않은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선을 타고 제 휴대폰 속으로 흘러 들어와 제 귀에 고스란히 꽂혔습니다. 

   밥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는데 목구멍이 막혀 숨을 쉴 수 없을 때 마침 손녀가 전화했던 모양입니다. 겨우 물을 마시고 넘겨 해결한 후 다른 한 술을 뜨고 계신 찰나에 저의 전화를 받으셨음을 어머니의 상세 설명 없어도 몇 마디 말씀을 듣고 감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으니 걱정 말고 얼른 출근하라시는 말씀에 안도의 숨을 쉬며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남편에게서 곧바로 가족톡방에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드려 상황을 파악했는데 지금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거의 동시에 손녀, 맏며느리, 맏아들의 전화를 연이어 받으신 셈입니다.

   감사하게도 퇴근 후에 예정대로 궁평항에 갈 수 있었습니다. 궁평항은 제게 남편에 대한 아주 좋은 추억을 발라 놓고 온 곳입니다. 그래서 어디 가고 싶은지 묻는 남편에게 저는 서슴없이 궁평항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지만 하늘은 맑고 화창했던 직년 2월 초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면서  뜬금없이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평소 바다 보러 가고 싶다는 둥의 말을 잘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따라 바다가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전화로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이상하게 오늘 오후에 왠지 바다 보러 가고 싶다고...  그러면서 이런 아내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사랑의 정도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는 짓궂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아침에 선약이 있다고 말했었던 터라 크게 기대하지 않고 배튼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약속을 취소하고는 저를 궁평항으로 데리고 가서 멋진 낙조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평소 먹고 싶다고 노래 불렀던 살이 통통하게 들어있는 랍스터를 사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속마음이 남편에게 전해졌던 것일까요?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약속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그런 소리하느냐고 한 마디 핀잔을 주고 제 말을 무시했을 법도 한데 아무 말 없이 저를 곧바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바다인 궁평항으로 데려가 주는 남편이 얼마나 멋지고 고맙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살면서 쌓아두었던 자질구레한 서운함들을 궁평항에 대부분 다 털어내 버리고 왔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궁평항은 제게 무조건적인 멋진 추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날며 노래하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작년에 정말 맛있게 먹은 기억 때문에 랍스터가 든 수족관을 찾아 직행한 후 기웃거렸습니다. 그런데 랍스터가 들어있는 수족관이 별로 눈에 띄지도 않을 뿐더러 튼실한 랍스터도 아니었고 가격도 생각보다 많이 비쌌습니다. 알아보니 봄에는 랍스터 철이 아니라서 값도 비싼 데다 살도 차있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은 봄도다리가 제철이라고 합니다. 랍스터를 포기하고 제철 해물인 봄도다리 회로 메뉴를 변경했습니다.

   곁들이찬으로 해물 회가 종류별로 상차림으로 나와서 회를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이 밝아 더욱 좋았습니다. 평소 매운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오늘따라 매운탕도 먹으면서 맛있다고까지 합니다.

   식사 후 어둠이 내린 궁평 낙조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0년을 자기한테 맞춰주면서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걷다 보니 지난번 왔을 때는 가보지 못했던 바다 건너편 차박 마을까지 가서 구경하고 왔습니다. 바다 위에 놓인 낙조길을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건너갈 당시 찰랑찰랑 차서 찰싹거리던 물이 어느새 빠져나가 바닥이 많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저 물이 썰물인지 밀물인지 아느냐며 남편이 테스트를 해왔습니다. "빠져나가서 썰렁해졌으니 썰물이지." 했더니 자기가 가르쳐준 것 잘 기억한다고 칭찬해 쥽니다. 밀물과 썰물이란 용어에 대해 혼돈하는 아이들에게 기억하기 쉽게 그런 식으로 가르쳐준다며 제게도 말해준 덕분에 이젠 저도 헷갈려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밀물처럼 뭔가 몰려올 때도 있고 썰물처럼 마구 빠져나가 썰렁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밀려오는 것이 더 많고 나이 들면 빠져나가는 것들이 더 많은 것이 순리처럼 느껴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밀물을 만나면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잡지 못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 것은 썰물의 때에 마음을 비우고 다시 가다듬어 다음 밀물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일운 죽을 때까지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밀물의 때에 다 맞이하기 버거우면 자신이 감당할 분량만큼 쥐면 됩니다. 이번에 잡지 못해도 다시 밀물의 때가 올 터이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고 서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올해 말이면 결혼해서 제 둥지로 이동하게 될 딸을 생각하면 썰물인가 싶어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 새로운 가정으로 인해 새롭게 밀물처럼 밀려올 미래를 생각하며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밀물과 썰물의 때를 번갈아 맞이하면서 키운 딸이 이젠 결혼기념일을 즐기고 오라고 용돈도 보내주는 기특한 딸로 자라 밀물처럼 밀려오는가 하면 어느새 썰물처럼 저만치 서서 제 짝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썰물이 빠져나가 썰렁한 가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무언가로 채운다면 마냥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비워내고 다음 밀물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썰물의 때를 이름 짓는다면 분명 밀물의 때보다 훨씬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마땅히 보내고 맞이해야 할 것들을 잘 분류해서 맞이함과 보냄을 자연스레 대하면 마음의 평정이 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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