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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May 07. 2024

300만원 적금 깨고 운 날

나는 악마를 보았다 1


이럴 줄 알았으면 초반에 고소를 하는 건데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병이 날 줄 알았으면. 



가슴이 수시로 콱 막히고 답답하여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구토에, 설사에, 어지럼증에 집 앞 나서기조차 겁이 날 지경이 될 줄 알았으면 그 악마의 고문이 시작되던 초기에 법적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막급입니다. 



그놈에게 무려 3달을 하루 같이 시달리다 결국 제가 이기긴 했지만, 몸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가 이제야 표현하네요. 나 죽을 것 같다고. 마치 고문 후유증처럼. 



마음은 어떻게든 참아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지만 몸은 이리도 정직하네요. 몸과 마음 중에 믿을 것은 몸이네요.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은 있어도, '내 몸 나도 몰라'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되는 거네요. 아니, 나는 내 몸을 몰랐어도 내 몸은 나를 잘 알고 있던 거네요. 







하재열 작가의 '심상'





변호사를 만나긴 했습니다. 딱한 제 사정을 감안하여 소송비도 300만원에 해 주겠다고 했지요. 저는 그때 그 악마에게서 벗어날 길이 그 길밖에는 없다고 판단했기에(그때 판단이 옳았던 건데) 지인으로부터 좋은 변호사를 소개받았던 터라 비용면에서나 내용면에서 최상의 조건으로 소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법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감옥에 처넣지 않고는 끝날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비록 이겼다해도 이렇게 몸이 가버렸으니. 



"아무개는 법없이도 산다."는 말은 완전히 잘못된 말입니다. 법은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법없이도 살 사람을 죽도록 괴롭히는 일이 생겼다면 법없이는 그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 andretaissin, 출처 Unsplash





그러나 결국 마음을 바꿨지요. 그때 마음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지금 병이 나지 않았을 텐데. 늦은 후회입니다...



변호사로선 최소한의 수임료지만 저한테 300만원은 큰 돈이었으니까요. 매달 15만원 씩 붓고 있는 600만원 만기 적금이 마침 300만원에 도달해 있던 터라 더욱 망설여졌습니다. 적금을 깨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을 옥죄어 왔습니다. 



이 돈이 어떤 돈인데... 독일 손자를 한국으로 한 번 부르려고 저로서는 마른 행주 짜듯 절약하여 모으고 있는 비행기값입니다. 








제게는 다섯 살 짜리 손자가 있습니다. 큰 아들이 낳은. 지금은 애 엄마와 헤어졌지만. 그럼에도 애 엄마와 저는 서로 잘 지냅니다. 



애 엄마는 독일여성인데 제가 독일어도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지만 AI 번역기 파파고 덕분에 필담을 나누기엔 불편함이 없지요. 제게 파파고는 하나님 다음으로 감사한 존재!



저는 생활비에서 한푼 두푼 모아 1년에 두 번, 손자의 생일과 애 엄마 생일에 용돈을 보냅니다. 그리곤 따로 매월 15만원 씩 적금을 부어 두 사람의 비행기값을 모으고 있는 거지요. 마른 행주를 짜다 못해 행주가 찢어질 지경이죠. ㅎㅎ  



이렇게 모은 피 같은, 아니 피 자체인 내 돈을 그 악마에게서 벗어나겠다고 한 순간에 날린다는 건 죽어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진짜 죽게 생겼네요. 또 말하지만 그때 법에 호소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적금을 깨고 말았습니다. 그 악마가 제 밥벌이를 기어코 끊어낸 바람에 당장 생활비가 없어서... 



적금을 깬 날, 은행 창구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손자의 비행기값이 공중으로 날아갔으니, 손자를 만날 날이 기약없이 멀어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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