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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May 08. 2024

옳지 않아!

나는 악마를 보았다 2

"옳지 않아!"



수십 년 전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가 절규하듯 내 뱉는 대사입니다.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 자식까지 있으면서, 돈과 출세에 눈이 멀어 시쳇말로 '환승연애'로 배신을 '때리는' 남자에게 '그건 옳지 않다'고 호소하는 심은하.  












그 대사가 제 대사가 되었습니다. 



"옳지 않아!" 



그 한 마디 때문에 이렇게 당하고 급기야 병이 나고 만 거죠. 



어제 국회에서 개최된 <1923 간토대학살> 시사회에 갔습니다.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화장실이 급해 도중에 나와야 했습니다. 이러다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하려는 말도 100년 전 간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선인 6661명을 학살한 것은 '옳지 않아!' 입니다. 



제게는 무엇이 옳지 않았던 걸까요? 저는 어떤 옳지 않은 일을 당했던 걸까요?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는 거지요. 



지난 해 9월 2일, 도쿄에서 열린 간토대학살 100주기 추도제를 다녀온 후,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간토대학살에 관한 책을 내고자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씨알재단으로부터 느닷없는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즉, 그 악마로부터. 












주문이 아니라 명령이었습니다. 재단 이사장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이른바 '용비어천가'를 부르라는. 어이없었습니다. 간토대학살에 관한 글에 왜 씨알재단 이사장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리소리를 지르며 그렇게 쓰지 않을 거면 아예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책을 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책을 내지 않을 경우 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여간 그 악마는 고발, 고소를 즐깁니다. 뻑하면 소송한다고 겁을 주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왜 그래야 하냐고 따졌습니다. 네가 뭔데 나더러 글을 쓰라마라 간섭이냐고. 



재단 이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뿐, 나는 재단 직원도 아니고, 간토대학살 추도제도 내 돈 내고 갔으니(물론 재단 돈으로 밥은 몇 끼 얻어먹었지만) 내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쓸 자유가 있다고, 너무나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래도 했습니다.  












각설하고 이사장이 주인공이 되는 간토대학살 책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씨알재단 이사장이 간토대학살과 무슨 상관이 있냔 말이죠. 간토대학살에 관해 평생을 천착해 온 연구자도 아니고, 유족도 아니고, 깨달은 바가 있어 뒤늦게 여생을 걸기로 결의한 분도 아닌데 왜 그분을 부각하는 책을 내야 합니까. 정 원한다면 차라리 자서전을 한 권 써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게만 써주면 저를 돈방석에 앉혀주겠다고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고시방(그 악마는 제가 고시방에 사는 줄 압니다.)에서 빼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고시방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다 해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죠.   



간토대학살 책을 씨알재단 이사장을 칭송하는 식으로 쓰면 돈방석에 앉는다? 



매우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옳지 않은 게 아니라 뭔가 범죄 냄새가 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악마가 범죄적 발상을 하고 있었던 거죠.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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