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작하는 7월 17일 새벽 나는 상당히 흥분한 상태다.
감정이 굉장히 격앙되어 있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몇 년 전 블로그에 내키는 대로 쓰다 말다 한 이후 목표를 가지고 나름 붙잡고 써본 게 작년이 처음이었다.
오로지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강제가 없으면 (말만 그런게 아니라 진짜로)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극강의 게으른 인간이 처음으로 밤샘이라는 걸 해 보고, 혹시나 하고 켜 두었던 타이머의 앞자리가 9가 되는 순간도 경험했다.
직접 겪은 일을 세세하게 써보는 일은 자신있었다. 잘 쓴다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 솔직하게 허세없이 못난 내 자신을 꺼내보이는 글에 있어서는 꽤 내공이 쌓였다 자부했기에 내심 기대를 했나보다.
혹시나 설마가 사람 잡기를 바랐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무려 50명을 뽑았다는데 아무리 봐도 내 이야기는 없었다.
수상작 공지를 보니 8,150편이 응모되었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작가를 꿈꾸며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전시된 당선작들의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내 글과의 괴리감에 또 한 번 움찔했다.
그림으로 치자면 어릴 적 딱 한 번 사생대회에 나가 아무 상도 못 탄 적이 있었는데, 수상작들을 보니 모두 특유의 결 같은 게 느껴졌다. 내 글이 평가하는 사람 입장에서 바라보는 어떤 범주 안에 전혀 속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자평하자면 그냥 나 혼자 신나서 쓴 느낌이었다.
어쨌든 무슨 이유가 됐든 나는 탈락했고, 아직 출판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일만 한 실력은 없음이 확인되었다.
한 동안 잠잠하다 싶었던 특유의 자학 회로가 발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많이 써서 실력을 늘려 다시 한 번 도전하자 같은 긍정 회로가 내 안에서 돌아갈 리 없었다.
그래도 일말의 미련은 또 있어서, 혹시나 급한 마음에 못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며 다시 한 번 당선작들을 꼼꼼히 살핀 뒤, 슬프지만 익숙하게 현실을 또 한 번 받아들이기로 했다.
빠른 속도로 인터넷 창을 닫고 바로 컴퓨터 시스템을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는 브런치에 접속하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오늘 7월 중순의 새벽.
즐겨찾기된 특정 사이트를 들어가려다 어째 클릭 실수로 브런치를 들어오고야 만다(?).
솔직히 될 놈은 된다. 노력도 중요한 건 맞지만 작은 도전에도 난놈은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는 법이라 생각하는 염세주의자답게 브런치는 그 동안 내 뇌구조에서 거의 사라져 있었다.
작년에 자주 들어올 땐 자동 로그인이 됐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아이디까지 새로 입력해야 했다.
심지어 사이트 이름이 그냥 브런치에서 브런치스토리라고 바뀐 것 같았다. 순간 다른 사이트에 들어온 줄 알았다.
너무 간만이라 그 사이 혹시 누가 악플이라도 하나 달았을까 싶어 아이디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틀렸단다.
아이디는 맞는 것 같은데 비밀번호가 진짜 기억이 안 났다.
결국 다시 카카오톡으로 본인 인증까지 여러 차례 거치고 나서야 힘겹게 올 해 처음으로 브런치에 로그인을 하게 되는데...
?
??....?
헐??????????????????
뭐야 이거
로그인이 잘못됐나?
이게 대체 무슨..일......?
원래 내 브런치 구독자는 0명이었다. 통계를 보면 조회 수 역시 10도 안 되었고 심지어 0인 것도 있었다.
노출 자체가 안 되거나 보다가 그냥 넘겼거나 어쨌든 조회 수 0이라는 건 아무도 안 본다는 얘기였다.
조회 수가 낮은데, 아니 아예 없는데도 당선이 될 수..있으려...나?
하트를 많이 받은 글은 어떤 건지 몇 개만 읽어보기로 했는데, 하필 내 눈에 띈 글 하나가 맞춤법이 거의 친한 친구들과 톡방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수준으로 도배돼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을 보고 현타가 씨게 와서 브런치 자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지기도 했고, 거기에 당연하다는 듯 탈락 소식을 접하니 절로 손길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몇 개월 전에 벌어진 일에 이제서야 너무 놀라 그 동안 달린 댓글들을 모아서 싹 다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능이 없는 건지, 있는데 내가 못 찾고 있는건지 고작 10개의 글을 일일이 눌러가며 깨알같이 달린 댓글 하나 하나를 눈 부릅뜨고 정독했다.
너무 소중한 댓글들이었다.............ㅠㅠ
어떤 분은 당연한 듯 작가님이라고 언급해주신 걸 보고 찔끔했다.
진심이 느껴지던 장문의 응원은 읽고 또 읽었다. 나중에 혹시 내가 잘 된다면(?) 이 분 덕분이라 감히 말하겠다는 상상까지 했다.
죽어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 한 광경에 아닌 밤중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신들린 듯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자연스럽게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그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루아침에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떡상했다는 경우가 이런 걸까. 통계를 보니 올 3, 4월에 집중적으로 몇 천회의 조회 수가 기록돼 있었다. 댓글 또한 그 때 달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여전히 봐주실까하는 두려움이 생기지만 55라는 숫자에 가슴이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인간이란 동기부여의 동물. 나에게 필요했던 건 약간의 관심과 응원이었나보다.
매번 익숙하게 좌절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피드백과 작아도 확실한 칭찬이 필요하다.
이 글도 몇 번이나 다시 보고 발행으로 전환할 지 벌써 고민 시작이다.
그림처럼 글도 수정하다 보면 끝이 없다. 고치고 싶고 다듬고 싶은 곳이 계속 보인다.
지겹지만 다시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롭게 수정할 부분이 튀어나온다.
이런 걸 보면 나란 인간이 타고난 재능은 없어도 타고난 성향은 참 작가인지도 모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쓰는 사람들의 목적은 결국 인정받는 게 아닐까.
결과물로 읽혀서 많은 이들에게 가닿았으면 하는 바람. 읽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감동이 되고 재미가 되고 세상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누군가는 오바라 하겠지만 내가 느끼는 바는 대략 이렇다.
이렇게나 기합이 들어갔는데 일상 기록용 블로그st가 될 수는 없다.
구독자가 생긴 이상 이것도 일종의 강제라 생각해야겠다.
이 글을 최_최종_최최종_진짜최종.으로 마무리하는 오늘은 24일이고 처음 쓴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