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오후 4시, 진영동 성당.
“♪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
성당 안에 아이들의 맑은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열 명 남짓한 어린이 성가대원들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진은 성당 뒤편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아이들의 노래에 미소를 지었을 테지만, 오늘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저 아이들을…….’
우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 아이들이 그날, 그 자리에 있게 된다니.’
하나가 말해준 비전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런 참혹한 장소에 성당의 아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할까…….’
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리 아이들이 가지 않는다 해도, 결국 다른 아이들이 그곳에 가게 될 테니…….’
피아노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어린이 성가대를 지휘하는 청년부 수아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 주 미사 전에 연습할 테니 그때 만나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우진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막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부님!”
그때 수아가 우진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신부님, 아이들 노래 어땠어요?”
우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잘하네요.”
“그쵸? 12월에 수호타워에서 노래한다는 얘기 들었어요! 아무래도 성가보다는 가요가 나을 것 같아서 「You Raise Me Up」 준비하고 있어요. 오래된 노래긴 하지만, 헤헤.”
“네, 좋네요…….”
수아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우진은 결심했다.
하나와 함께 타워 붕괴를 막는 것, 그것이 최우선이다.
-
그날 저녁 7시, 『주간시사』 사무실.
간간이 야근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 국장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퇴근하세요?”
맞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오 국장이 고개를 들었다.
태수였다.
“그래…….”
오 국장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네. 그럼…….”
태수가 꾸벅 인사를 하곤 오 국장을 지나쳐 갔다.
오 국장도 인사를 받아주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오 국장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태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때 오 국장이 엘리베이터를 잡은 채 태수를 불렀다.
“태수야.”
태수는 그 소리에 멈칫하고선 돌아봤다.
“네, 국장님.”
“너 아까 뭐라고 했어.”
태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수호그룹 취재 건, 내가 손 떼라고 하면… 손 떼는 거다.”
오 국장이 태수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러자 태수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래… 내일 보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
밤 9시, 오정환 국장의 오피스텔.
딩동~
검은 봉지를 든 한 남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오 국장이 문을 열고 반갑게 그를 맞았다.
“대표님! 어서 들어오세요.”
『주간시사』의 창립자이자 현 대표인 한정혁이었다.
육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그는, 오 국장과 20년 넘게 함께한 동지였다.
“뭘 이렇게 사오셨어요.”
“자네 족발 좋아하잖아. 족발에 소주 한잔 어때, 좋지?”
“말해 뭐 해요.”
두 사람은 거실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오 국장이 잔을 준비하는 동안 한 대표가 족발 포장을 풀었다.
“제수씨는? 잘 지내신대?”
한 대표가 가볍게 물었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지난주에 통화했어요.”
“통화는 매일 안 해?”
“매일은 저도 싫어요.”
오 국장의 아내는 아들의 유학을 뒷바라지하러 캐나다에 가 있었다.
“애가 몇 살 됐지?”
“내년이면 열다섯이에요.”
“하하, 자네 일 한참 더 해야겠구먼. 애 대학 졸업할 때까진 일해야 할 거 아냐.”
“에휴, 그죠.”
한 대표가 소주병을 열어 잔을 채웠다.
“짠.”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울려 퍼졌다.
처음 몇 잔은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가족 이야기, 최근 근황.
그러다 어느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
침묵을 먼저 깬 건 한 대표였다.
“애들이 사고쳤다면서.”
오 국장이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한 대표가 오 국장의 빈 잔을 채우며 말했다.
“김 실장이 길길이 뛰지?”
“실장님 입장에선 그럴 일이니까요…….”
오 국장이 두 손으로 잔을 들고 대답했다.
둘은 다시 건배를 하고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오 국장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그러나 오 국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한 대표가 대뜸 오 국장에게 말했다.
“오 국장아.”
“…네.”
“이하나 그 녀석, 면접 때 기억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오 국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면접 때요?”
“그래 면접 때. 내가 그 녀석이 그날 말한 게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한 대표의 눈빛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뭐라고 했었죠?”
“기억 안 나? 그 녀석이 우리 『주간시사』를 우리나라 1등 언론사로 만들겠다고 당차게 말했잖아.”
“아……!”
그러자 오 국장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하하, 맞아요. 그때 그랬죠.”
“그래서 네가 ‘1등 언론사로 만들겠다니, 그럼 우리 회사가 1등이 아니라는 거냐’ 그렇게 쏘아붙였었지.”
“하하, 쏘아붙인 건 아니고요. 제가 그렇게 묻긴 했죠. 궁금하잖아요. 그랬더니 그 녀석 당차게 그렇게 말했죠. 『정론일보』가 1등이라고.”
-
5년 전 『주간시사』 면접장.
회의실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오 국장과 한 대표, 그리고 몇 명의 간부들이 있었다.
“아니, 그 말은 우리 회사가 1등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오 국장이 날카롭게 물었다.
“네… 저도 아쉽지만, 지금은 그렇죠.”
하나가 주눅 들지 않고,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1등은 어디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아마도 『정론일보』?”
면접관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정론’? 우린 주간지고 거긴 일간지… 아니 그걸 떠나서 독자 수로는 ‘대한’이 최고인데, 5대 일간지에도 들지 못하는 ‘정론’이 왜 1등이에요?”
“독자 수로 정한 건 아니에요.”
“그럼 뭘로 정했는데요?”
-
다시 현재.
“그래, 그날 그 녀석이 한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그 시기 기자 준비하는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가 ‘정론’이라고 했었지. 가장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어. 그 시절 ‘정론’에 대한 세평이 실제로 그랬지.”
한 대표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 국장아.”
“네, 대표님.”
“내가 오늘 자네가 무슨 말 할지 모르고 왔겠어?”
“…….”
“애들이 하자는 대로 해. 그리고… 네 판단 대로 해.”
“그럼… 회사는요.”
“지금부터… 그 걱정을 해야겠지, 내가.”
두 사람은 한 동안 말 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게 걜 왜 뽑았아요.”
“어어? 오 국장 네가 뽑자고 그랬잖아.”
“에에? 제가 언제요?”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2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