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에서 만난 터닝포인트
“너 같은 애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둘 가치를 못 느끼겠어.”
그의 말은 심장을 후벼 팠다. 그러나 나는 아픔 속에서도 생각했다. 어쩌면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답이 그의 말에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모든 사람을 비슷하게 대하려 애썼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완전히 달랐을지도 모른다. 관심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극명하게 구분했으니까. 아니면 그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나도 그처럼 내 삶에 소중한 사람들만을 남겨두고 그들에게 집중했어야 했나. 아니면 그처럼 미련 없이 내쳐야 했을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나를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기억에 남아 서글퍼지기 때문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여자 주인공처럼, 나 역시 지나간 인연들에게 에너지를 쏟으며 그들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이토록 많은 사람을 생각하는데도 나의 인간관계는 왜 이리 공허할까 고민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그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선택과 집중'인가 보다. 나의 주치의가 '에너지를 아끼라'라고 했던 말과 같은 뜻이겠지.
그와 나는 나고야에서 처음 만났다. 조울증을 진단받은 지 2년, 발병 추정 시점은 그보다 15년 전이었다. 나는 홀로 나고야로 떠났다. 그저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충동적인 결정. 어느 날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에너지가 넘치면, 나는 미친 듯이 여행을 검색하고 하루 만에 비행기 표와 호텔을 결정했다. 내 삶의 거의 모든 결정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혼자 여행을 가면 이 답답함이, 이 정체된 삶이 해결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여행을 했다는 경험이라도 남으니까. 굳이 나고야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예전에 혼자 떠났던 후쿠오카 여행이 내게 엄청난 도파민을 선물했듯, 나고야 역시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두 도시의 공통점은 딱히 할 일이 많지 않고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 나는 당시 음식에 탐닉하는 중이었다. 머릿속은 유명 음식점 정보로 가득했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나와 달리 비건이며 식사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그를 보고 내 생각이 빠르게 바뀌었다. 음식을 탐닉하고, 레스토랑에 대한 지적 허영을 내세우는 것도 어쩌면 조울증의 증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인생에는 먹는 것보다 중요한 과업들이 있는데. 그처럼 라떼 한 잔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한 적이 있었던가. 늘 먹는 게 먼저였고, 할 일은 뒷전이었다. 아니, 어쩌면 해야 할 일을 미룰 핑계를 만들기 위해 먹는 것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미식가적인 태도는 나의 심리적 공허함을 채워줄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나고야에 도착했다. 조울증으로 인한 각성 상태로 정오의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체크인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고야성으로 향했다. 부슬비는 곧 세찬 소나기로 변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면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면 되니까.
나고야성에 도착해서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나고야성에서 자체적으로 우산을 빌려주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나는 브로슈어를 우산 삼아 들고 영상까지 찍어가며 그 상황을 즐겼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아쓰다 신사로 향했다. 구글 지도가 알려준 역은 생각보다 멀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나 우산 좀 씌워주지 않을까? 누가 히치하이킹이라도 시켜주지 않을까?”
그때, 누군가 정말로 내게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바로 그였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난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정말 온 우주가 도와주나 봐, 역시 시크릿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일본에서 운이 좋다. 점쟁이가 말했던 섬에 가면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 사실인가? ’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게 사실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 나는 해외여행할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기잖아!’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 엄청나게 생각이 많은 것도 조울증의 증상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도 공통점과 패턴,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것도 말이다.
우산을 씌워준 그의 호의는 고마웠다. 그는 역까지 동행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우산이 필요했지만, 동시에 귀찮았다. ‘나는 조울증 환자잖아. 이런 사람들을 무조건 쳐내면 안 돼. 외국에서는 좀 더 오픈마인드로 밝고 당당하게 대해야 해.’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여전히 귀찮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그의 외모 칭찬에 비아냥대고, 나이가 많아 보인다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모두가 나를 포기하고 떠났는데.
‘나는 이 사람을 사귀고 싶은 걸까, 그냥 관심만 받고 싶은 걸까. 지하철값도 내주니까 그냥 편히 만나? 아니 근데 그것도 불편해. 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아쓰다 신사까지 함께했다. 그는 사진을 찍어주고, 대화를 잘 들어주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는 카페에 계속 가고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비도 오고 길을 찾기 힘들어서 내가 원래 가기로 한 장어 덮밥집을 가지 않고 말이다. 그는 비건이라니까. 그런 사람과 같이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왜그럴까. 왜 나는 그가 그렇게 까지 좋지도 않은데, 그가 뭐라고? 그를 맞춰주고 내가 가고싶은데를 안간거지? 물론 카페는 집으로 가는 역근처에 있긴했지만. 그리고 길도 그가 찾긴했지만. 돈도 그가 냈지만. 이건 다 역시나 내 조울증 떄문이었던 거 같다. 아무리 타인이라도 조금의 불편함과 갈등을 만들기 싫었던거고 조금도 이기적이게 보이기가 싫었던 나의 가면 때문이었을것이다. 지금이라면 이제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계속 나를 따라오길래 다시 도시로 돌아가서 쇼핑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에도 우리는 만났다. 나는 그를 단호하게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나의 이러한 양가적 감정은 그를 떠나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통의 남자라면, 아니, 여자라도 모두 나를 말없이 떠나갔다. 그런데 그는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는 출장 중이었고, 후쿠오카로 떠났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와의 만남은 내게 엄청난 도파민을 끌어올렸다.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남들이 동경하는 ‘비포 선라이즈’ 영화 같은 삶이 현실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직업은 매우 훌륭했고, 그는 어릴 때부터 꾸준함을 무기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절대 없는 꾸준함이었다. 그는 객관적으로도 잘생기고 자기 관리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멋을 내는 것도 지쳐서 해외여행에 와서야 겨우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차려입는 사람이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그의 배경을 좋아했을까. 배경을 좋아한들 뭐가 나쁘겠는가. 남자들도 여자의 외모만 보는데. 나는 그저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 같은 만남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아쓰다 신사에서의 데이트는, 내가 좋아했던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송정사 절 데이트와도 닮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역시 내 인생은 위대해. 조울증은 내 영웅 일대기의 작은 흠일 뿐이야. 내 인생은 역시나 영화와 같아. 나는 운이 좋고, 여전히 매력적인 사람이야. 간절히 원하면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시크릿'이 잘 통하는 사람이야.’
나는 그와의 연애가 사랑이라기보다, 하나의 표창장처럼 느껴졌다. 내 삶이 옳다는 하나의 ‘증명’ , 내가 양극성 장애가 아닌 멀쩡한 사람이라는 확신.
그리고 그와 헤어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드디어 돌아볼 수 있었다. 그와 나의 엄청난 간극이, 너무나도 다른 삶이, 내가 조울증임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그가 하늘이 내게 보내준 선물이고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것마저도 조울증 환자인 나의 확대 해석일 것이다.
그리고 그를 ‘정상적인’ 성공한 사람이라는 기준치로 두고 또 그와 나의 삶을 비교 분석하고 규칙을 찾고 성공하고 싶어 하면서 왜 내가 실패했는가라고 자책하는 것 역시 내가 조울증이란 것을 의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