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전
짙은 갈매기 눈썹, 감상자를 뚫어져라 보는 듯한 눈빛. 다소 유치하고 단순해 보이는 초현실적 묘사. 기이할 정도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화상들. 미디어가 사랑하는 미술가, 셀리브리티, 여성 작가주의의 대표적인 아이콘 프리다 칼로.
하지만 나는 프리다 칼로의 대표작도 모르고, 흥미도 없었다.
픽사의 애니 코코에 등장한 작가. 맥시코가 엄청 자랑하는 작가.
희한한 갈매기 눈썹이 아이콘처럼 박힌 자화상을 많이 남긴 작가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왜 그렇게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지, 화풍은 왜 그렇게 이질적인지… 전혀 관심도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미술관은 2020년부터 특별전을 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무지해서 잘 몰라도, 이 동네, 미국에서는 유명인인가 보다.
코로나로 인해 입장이 제한되었고, 회원 사전 예약자들만이 입장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사람들이 관람하러 왔기 때문이다.
미술관 입구 한쪽에는 프리다 칼로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입고, 머리에 장식을 단 사람들이 꽤나 무리 지어 서있었다.
사진 촬영 금지라는 팻말을 지나 전시장으로 입장했다.
드영 박물관은 이전에도 몇번 관람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시장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묘사, 사진가인 아버지가 찍은 그녀의 사진들, 가족사진들, 스케치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자, 성인 프리다 칼로가 지은 블루하우스, 그리고 그녀의 행적을 설명하는 신문 기사들, 그녀가 주로 입었던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녀의 특별전이라고 하기엔, 몇 개의 자화상이 있을 뿐 작품수가 현저하게 적었다.
'속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 이것이었구나'
'칼로의 대표작은? 칼로의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들의 비교는?'
이게 뭐야~!!
아무리 드 영 미술관이라지만, 이렇게 부실한 전시가 있을 수가...
나는 회원 등록으로 무료로 입장했지만, 일반 입장은 일인당 35$인데...
코스프레를 하고 온 팬들을 위해서도 부응하지 못한 것은 순전한 미술관의 책임은 아닐까?
아....
가족 머릿수만큼 등록한 돈이 아까워서 한 바퀴 더 돌았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공간이 있는지 더 꼼꼼히 살폈다.
하하하....
내가 본 것보다 뭔가 더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실망했다.
며칠 전, 피카소의 작품을 보기 위해 드 영 미술관을 다시 한번 방문했다. 무료입장 기간에 맞춰 다시 프리다 칼로의 전시관을 돌아보았다. 삼세번. 내가 잘 모르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엔 달랐다. 갑자기 전시 의도가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큐레이터가 이런 기획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좀 더 살펴보기 위해 노력했다. 전시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왜 이 전시가 의미가 있고,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번 방문에서 다른 것을 보았는가?
나는 눈앞에 놓인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둘러싼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눈앞에 있는 작품을 상품처럼 판단하고 그 가치를 인식했었다.
가령, 눈 앞의 작품이 얼마나 예쁘고 마음에 드는지,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는지,
얼마나 유명한 작가가 만든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인지,
통상적인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래서 이 작품이 얼마에 거래가 되는지... 이런 질문들 말이다.
그런데... 예술 작품은 공산품이 아니잖아. 왜 이 공간에 전시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그림을 보러 가는가. 아니면 그림을 평가하러 가는가.
그동안 내가 평가질 빌런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얼마나 꼴사나웠는지 곱씹어보았다. 아우 쪽팔려.
초밥을 먹으러 가면 그 초밥을 먹으면 되지, 꼭오오옥 만화 같은 데 나오는 설명충처럼 팔 한쪽을 괴고 하나하나 무엇이 부족한지 찾으려 한다던가.... 제법 알려진 뮤지션의 공연에서 구석 한 곳에 앉아 팔짱을 끼고 뭔가 알아냈다는 눈으로 있다던가...
작가가 작품을 공개할 때만큼 떨리고 두려운 것이 있을까. 그들은 평가를 바라고 있을까, 아니면 인정을 바라고 있을까. 나는 그림을 보러 가서, 내가 미술학도였을 때보다 더 잘 그렸는지 아닌지 그걸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현대 미술은 감상자의 표현력, 화풍, 기교, 주제의식들과 같은 작품 하나에서 해독해 낼 수 있는 정보나, 작품과 연결되어 있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고 감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작가가 그동안 천착해온 주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표현하는지를 공감하는데서부터 그 작품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한다.
아니 그림 보는데 무슨 그런 공부가 필요해요, 사과가 맛있으면 맛있다 시면 시다 하면 되지 그게 왜 필요해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안됐지만, 요즘 시대의 작품은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치가 그림을 보는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울림이 있는 드라마와 연극을 봤을 때의 희열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얼굴이 예쁜 아이돌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 작품이 최애 작품이 되는 것과 같다. 그림이 조금은 이상하고 그래도, 그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서 오는 감동은 또 다른 울림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그 작품이 뜻한 메시지도 의미 있게 평가하지 않는다. 트뤼포 감독이 그랬던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면,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치라고. 예술가에게 메시지 따위가 무엇이란 말이냐. 프로파간다의 시대를 지나면서, 억지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그 수많은 도전들은 예술로서의 미술이 누군가를 개화시키는 데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드 영 미술관은 내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명확한 기획을 한 것이었다. 관람자가 그녀의 작품을 보고 싶으면 집에서 인터넷으로 보면 그만이다. 어차피 불편한 몸으로 그린 그녀의 그림들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기교 따위가 의미 있을 리 없으며, 실제로도 돈을 내고 볼 만큼 아주 대단한 묘사력을 갖추지도 않았다. 미술관은 미술관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이름 있는 미술관은 발견되지 않은 자료들을 모을 수 있고, 정당한 목적으로 개인 사료를 수집할 수 있으며, 이를 재구성해서 그전에 없던 텍스트를 만들 수 있다. 아버지가 기록한 그녀의 삶. 그녀의 노트. 소아마비와 사고로 인한 장애의 후유증으로 매일을 지옥같이 보내던 그녀가 다뤘던 보조기들. 그녀가 평생을 의지했던 진통제. 사랑과 배신에 의한 정신적 고통을 드러내는 신문 기사들. 유명 화가의 아내라는 들러리 유명세에서 벗어나 스스로 독립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어필한 그녀의 패션. 과격한 멕시코 독립, 공산주의 사회활동의 지원 등. 그녀가 살아가면서 남긴 조각들을 조명한 것이 이 전시의 명확한 목표였다.
왜냐하면,
프리다 칼로는
고통으로 점철된 그녀의 몸뚱이를 예술의 도구로 여기고,
스스로 작품화한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삶도, 미켈란젤로의 삶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그녀의 삶이 하루하루가 투쟁이었음을 되짚어 보는 것이
그녀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커다란 양분이 되기 때문이었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accident-september-17-1926/LgFAr4V44hbS0w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작품들을 좀 더 찾아보았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봤다.
관찰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동자. 갈매기 눈썹과 입꼬리로 각인된 '나 프리다 칼로'들. 그림과 사진을 넘나들며 남긴 수많은 '나'. 어떤 표정은 수줍고, 어떤 표정은 고통이 있었고, 어떤 표정은 묘한 셀럽으로서의 당당함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자화상을 관통하는 것은 숨기지 않는 자의식. 표현하는 작가로서 뒤에 숨지 않은, 자신을 매게로 한 작품이었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self-portrait-wearing-a-velvet-dress/9QHUrLhK3UEXqw?hl=en
나름대로 분명한 일정 수준 이상의 묘사력과 화풍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표현한 양식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과는 그 궤가 같다고 할 수 없다. 호소력은 강하지만 유치한 직설적 묘사, 불필요한 덧칠, 깔끔하지 않은 마무리 등 작품에서 감상의 불편한 부분이 있다.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헌신한 모습도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어떠한 사상적 진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정진한다는 것이 꼭 예술가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한 필요조건일까.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예술가 스스로 유일한 영역을 뚜렷이 남겼다. 반복적으로 자기 복제를 통한 자의식을 투영함으로써, 스스로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몰았으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상처와 고통을 작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멕시코의 유행 양식을 기반으로 초현실주의 기법을 빌려 직관적 묘사를 통해 한 장의 그림 안에 그녀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는데 집중했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he-broken-column/EgGMbMFBQ
그녀가 자신이 겪었던 삶의 사건들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방식,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없었기에 치열했던 '일상의 도전',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갈구한 사랑과 인정,
사고와 고통 속에서 타다 남은 나르시시즘 위에 세운 작품에 대한 정의와 태도는
작품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영감을 얻도록 이끈다.
내가 타박한 그 의상들. 그 의상들은 그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였다.
평생을 장애로 얻은 신체적, 정신적 컴플랙스를 숨기면서, 동시에 그녀의 타고난 매력을 투영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자화상과 자신을 찍은 사진을 통해 표정과, 눈빛, 시선, 공상을 조합해 여성으로서 멕시코 사회에서 겪은 일들을 풀어냈다. 자신의 존재가 예술 작품으로써 진정성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도전을 의도를 가지고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시 전반에서 읽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메시지는
그녀는 작품을 그리는 것이 아니면 살 수 없었다.
죽지 않기 위해 예술을 한 사람에게 진정성을 묻는 다는게 얼마나 실례인가.
중세를 지나면서 미술은 사진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 상황 묘사적 기법과 교조적 메시지의 전달 수단으로써 벌이가 되는 존재였다. 미켈란젤로로 상징할 수 있듯이 작가라는 것은 '신이 존재한 상황'을 관찰하여, 그것을 '신의 손놀림으로' 그려냄으로써 조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칼로가 한 일은 작품 뒤에 관찰자, 전달자로서만 존재한 작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작품으로서 끌어올렸다. 자기 경험의 진정성을 기반으로 '나'의 이야기를 압축하여 자아와 고통을 자신을 매게 삼아 표현하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기존 작가의 질서를 바꾸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준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거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누굴 거장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https://fridakahlo.org/frida-kahlo-photos.jsp#prettyPhoto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