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는 개는 메리, 고양이는 나비라는 이름이 대한민국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처럼 국민네이밍이었다. 흰둥이도 메리, 검둥이도 메리, 발발이도 메리! 아주 가끔 얼룩이가 태어나면 특별히 '바둑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한 친구는 변함없이 '메리'였다.
그리고 사회초년생 때부터 한 아이의 엄마가 될 때까지 함께한 반려견은 '메리'라는 이름이 아닌 '예삐, 쫑이, 뽀이, 삼순이'까지 개성에 맞게 불리어져 짧게는 7년, 길게는 17년간 정을 나누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 뒤로 10여 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반려동물과의 여정을 결심하는 일은 쉽지 않을 만큼 그 이별은 제법 큰 상흔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반려동물과 산책을 나오는 광경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걸음을 멈추고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지인들이 며칠 가족여행을 간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캣맘, 펫시터를 자진하면서도..
정작 내 가족으로 결심하는 일은 어렵기만 했던 어느 날, 포인핸드라는 앱의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본 한 새끼고양이가 계속 생각났다.
그 아래로 줄줄이 구조된 아깽이 사진 옆에 하얀 국화꽃(안락사)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그날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결국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쁘지 않아? 한번 잘 봐봐!!" "공고기간 지나고 나면 이렇게 안락사가 되나 봐."
긍정의 대답을 강요하기라도 하듯 입양에 대한 나의 의지를 은근히 어필했다. 새끼고양이를 구조한 지역이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면 입양신청을 하더라도 후순위라는 점을 얘기한 끝에 그럼 원이라도 없도록 한 번 입양신청이라도 해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고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고양이를 보호하고 있는 동물병원에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입양신청이 많이 왔는지, 입양자가 벌써 결정이 되었는지, 언제쯤 연락(통보)이 오는지 제법 직원들을 귀찮게 한 모양이다.
입양 적격여부를 심사한 뒤 결정이 되면 보호자에게 연락을 할 건데 나머지 분들에게는 따로 연락이 가지 않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는 통화를 마지막으로 그저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입양 결정연락이 오기로 한 날 오후 6시가 지나고, 안 됐구나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아파트 주변을 하릴없이 걷고 있는데 눈에 익은 타 지역번호로 벨이 울린다.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황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동물병원인데요, 입양신청심사 끝에 입양자로 결정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떨어진 줄 알았던 대학입시에서 합격 전화를 받기라도 한 듯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을 진짜냐고, 지금 데리러 가면 되는 거냐고, 빨리 가겠다고 등등 속사포랩을 하느라 전화를 끊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메리의 보호자는 익숙하지만, 나비의 보호자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주변에서 집사 고년차들에게 어찌어찌 입양하게 된 상황을 설명한 뒤 당장 준비해야 할 필수용품을 묻고 또 물으며 조언을 구했다.
현재 보호소에서 급여 중인 사료와 동일한 것의 사료, 밥그릇과 물그릇
먼지 없는 제품 브랜드의 벤토나이트 모래와 화장실
사막화 방지 매트(대형일수록 추천)
바닥형 스크래처와 숨숨집
놀이형 낚싯대와 딸랑이
그리고 데리고 오기 위해 필요한 이동장까지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캣타워와 캣샴푸, 치약칫솔과 발톱 깎기는 시간을 두고 준비해도 된다고 했다.
출산준비할 때 아기용품을 구비하듯 품목별로 추천하는 브랜드까지 알아둘 것들이 제법 많기도 많았다.
그렇게 묘생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이 된 유기묘의 이름은 '나비'가 아니라 '크림'이다.
온몸의 털 색깔이 뽀얀 크림색인 고양이에게 앞으로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의미로 음식이름을 지어주면 좋다는 고년차 집사들의 조언을 따른 끝에 결정된 이름, 크림이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