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달리 죽음을 터부시 할 필요가 없으며 더 이상 죽음이 무섭지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화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행 중인 독서 모임에서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주제를 확장시키고 싶었다. 각자 "나의 낙화는 이런 뒷모습이면 좋겠다" 내지는 "40대에 미리 써보는 유언" 같은 것도 생각해 보면서 진솔하게 나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일 때 현직 의사인 김범석교수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라는 책으로 독서 나눔의 기회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김범석 교수는 “뜻하지 않게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고,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암 환자와 가족, 의사인 김범석 교수의 선택과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나의 삶을 그리고 죽음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더 나아가 언젠가 나와 내 가족에게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종착역으로 향해 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하다.
내가 만일 갑자기 말기 암 환자가 된다면 40년 조금 넘게 살아온 내 삶을 정리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적어도 6개월 이상은 필요할 것 같은데 누가 내게 두 달 안에 정리하라고 한다면 일단 화 날 것 같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잘 죽는 것이 힘든 나라인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붙들고 끝까지 항암 치료에 매달리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삶을 정리하기 위한 논의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채 말이다. 삶을 마무리할 최소한의 여유도 없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애를 쓰다 죽는다. 웃픈 얘기로 한국은 살기도 힘들지만 죽기도 힘든 나라인 것이다.
어떻게 몇십 년 가까이 살아온 인생을 두 달 만에 정리하겠는가?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며 삶을 정리해 나간다는 것은 극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분명히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깊어질 수 있다. 무한히 지속될 것 같았던 생이 유한하고 소중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은 분명히 변한다.
갓 스무 살이 된 내게 찾아온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나의 유년시절,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며 바로 눈앞에서 투병 과정과정을 지켜보았던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그날의 충격적인 슬픔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숙이 가라앉은 듯하다. 아버지라는 보호막 없이 홀로 선다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을 오롯이 겪어야 하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아야 하는 것! 왜 나만 비를 맞아야 하느냐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치조차 부릴 여유가 없는 것! 아버지라는 그늘 아래에 머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던 나이에 정신 차리고 보니 무방비 상태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그 시절 나를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붙들어야 한다는 것은 외롭고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잔인한 생도 생이어서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는 점이다. 내 경우에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그 굴레가 어느 순간 느슨해졌고, 이제는 그 흔적을 쓸어보며 그때만큼은 아프지 않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첫 만남, 첫사랑, 첫눈, 첫 월급, 처음 학교 가던 날..
우리는 대부분 첫 순간을 잘 기억한다. '처음'의 순간은 누가 뭐래도 분명하고 저마다 거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마지막'은 잘 모른다.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음은 늘 지나서야 깨닫기 때문이다. 처음이 긴장과 설렘으로 수식된다면 마지막은 씁쓸함과 아쉬움, 후회 같은 단어가 뒤따르곤 한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끝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수많은 처음과 마지막이 있을 테지만 우리 인생의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은 탄생과 죽음이다. 그리고 살면서 맞는 여러 처음과 마지막과 달리 이 시작과 끝은 내가 아닌 타인의 기억으로 남는다. 또한 탄생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맞이하는 것이지만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면 죽음만큼은 준비할 수 있다.
언젠가 분명히 '죽음'의 순간이 온다는 건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을 어쩌다 갑자기 맞는 죽음으로,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고 끝내지 않기를 바라본다.
꽃은 바람에 기대서 살고 바람은 구름에 기대어 살며 상처받고 또 상처받아도 사람은 사람에 기대어 산다
가끔은 상처받을 때도 있고, 또 가끔은 기쁨을 주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는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보기도 한다. 누군가의 관계에서는 틀어지고 깊어지는 가운데에서 한편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오늘을 기억하며 고마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채워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