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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l 08. 2023

아이가 공황이 오다

 2023년 5월 23일 오후 4시,

평소와 달리 Y의 번호가 찍힌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음을 뿜어낸다.

'30분 전에 통화했는데 또 무슨 일이지?'

이상하고 불길한 예감은 참말로 빗나가는 법이 없다. Y의 폰번호로 전화를 건 사람은 낯선 남자다.

자신을 119 대원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Y가 지금 공황발작이 와서 쓰러져 있고, 조금 전에 센터 담당자로부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상황이니 어머님께서 지금 바로 오셔야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나서 여기까지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구체적으로 찾아올 센터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귓속이 먹먹해진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분명 내 아이 폰번호로 걸려온 전화인데도 마치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설마 나날이 진화한다는 새로운 수법의 보이스피싱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만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일이 급선무니 당장 튀어나가자 하는데 몸이 마음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손에 꽉 쥔 차 키를 몇 번이나 떨어뜨리고, 방금 통화를 끊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도 어디 있는 거지 허둥대는 모습에 한숨만 새어 나올 뿐이다.

집에서 센터까지 가는 데 최대한 신호등이 적은 2차선 도로로만 내달려 5분이 채 안되어 도착한 곳에는 119 대원복을 입은 남자분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차를 버리다시피 주차장에 내팽겨둔 채 따라 올라간 곳에는 정말 우리 아이, Y가 누워 있었다. 눈물범벅이 된 채 가쁜 호흡을 뱉어가면서!

Y는 엄마를 보고도 전혀 안도하지도 반기는 내색도 없다. 그저 세상을 다 잃은 듯한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천장에 고정한 채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올해 6학년이 된 Y의 신학기는 무난히 청신호일 것이라는 안도하는 마음이 있었다.

학교에서 처음 전교임원으로 활동하게 될 모습에 대한 설렘도 있고, 특히 겨울방학 때 드럼 특강을 하면서 리듬감이 좋다는 칭찬을 들은 뒤 자신감이 제대로 붙어 장래 직업을 '드러머'로 정할 만큼 목표도 뚜렷하고 드럼에 쏙 빠져있었다. 뭔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고 생각하여 두 달 정도 망설임과 고민, 주변의 조언 끝에 결국 전자드럼을 집에 들여놓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불과 3주가 지났을 뿐인데 공황발작이라니!

Y의 호흡이 안정을 찾아가는 동안 119 대원으로부터 출동 당시 상황과 경과 설명을 자세히 들으면서 '분명 이유 없는 공황은 아니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Y가 있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오는 내내 풍경처럼 스쳐간 몇몇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중에서도 D와 J는 뭔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D와 J는 6학년 같은 반으로 새로 사귀게 된 친구들이고, 여러 번 마주친 얼굴이라 낯익은 아이들인데도 결코 아는 척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웃는 얼굴로 다가가 먼저 인사를 하려고 해도 검은색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 쓰고 Y의 엄마인 날 피하기까지 한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불닭볶음면이며 과일, 과자, 음료수를 먹으면서 같이 웃고 떠들며 놀았으면서 말이다.

Y가 D, J와 친해지면서 달라진 행동은 비단 사춘기에 들어서라고 치부하기엔 충분치 않은 것들이 제법 많다. 보통 오후 3시에는 학교 수업이 끝나는데, 방과 후 수업도 없고 학원도 다니지 않는 Y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가 하면 그래놓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방문을 닫은 채 통화하느라 킥킥거리고 늦게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작년까지 한 번도 안 하던 용돈 타령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친한 친구들이랑 밥을 먹을 건데 Y가 사주고 싶다, 이래서 저래서 수시로 돈이 필요하다고 하질 않나 한 번은 Y가 유치 중에 충치가 심해 발치를 해야 되는 데 치과 가는 것을 무서워해서 미뤄둔 발치를 치아당 1만 원씩 주면 하겠다고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저렇게 D, J랑 다니면서 사주고 먹고 쓴 돈이 한 달 만에 무려 10만 원이다.

그렇게 Y는 D, J에게 충성스럽게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쌓아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황발작으로 쓰러져있는 Y를 보고도 D, J는 다른 친구 무리에만 있으려는 모습이 석연치 않다.  D, J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는 생각에 다가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알고 있는 대로 누가 얘기해 줄 수 있겠니?"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간곡한 말투로 물었더니 서로 눈치를 살피는 듯 머뭇거리다가 J가 와서 핸드폰을 내민다. 조금 전 Y와 주고받은 DM이라면서.

그 내용에는 더는 같이 어울리기 싫으니 절교하자는 J와 사실이 아니다, 오해하는 거라고 내 말을 좀 믿어달라, 앞으로 내가 더 노력할 테니 제발 그 말(절교)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우리 아이, Y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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