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나?
여행은 세 종류의 시간으로 경험된다. 출발 전 설레며 들떠 준비하는 시간, 도착 후 그곳을 경험하는 시간, 그리고 돌아와 한참 후 다시 떠올려지는 시간. 어찌 보면 인간의 시간과 닮았다.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
아직 지나지 않은 시간은 기대감으로 설렌다. 그곳을 떠올리며 이미 절반쯤 그곳에 가있다. 정보를 찾고 예약을 하고 다른 이의 사진과 추억을 보며 이미 여행 중이다. 그곳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특이하리라. 보내는 시간과 장소는 지금 여기와 다르게 아름다우리라. 그렇게 기대하고 암시하며 난 거기서 분명 행복하리라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은 현재가 된다. 현실은 머리 속보다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자질구레하다. 준비하며 그렸던 시간에는 1분 1초가 모두 들어있지 않다. 하루가 적당히 편집되어 좋을 것 같은 장소와 시간만이 들어있다. 그래서 떠나기 전 설레고 기분 좋은 거다.
막상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정에는 당연히 일상이 있다. 먹고사는 평범한 하루가 줄곧 핑크빛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안다. 가끔씩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은 강렬하지만 짧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건 여행이잖아? 다를 거라 확신한다.
도착 전 가지치기된 시간에는 없던 별의별 사소한 것이 장애물이 된다. 거슬리는 동행자의 말과 행동, 바보처럼 당했다는 자책, 외면과 무시당했다는 자조감, 욕심에 무너지는 체력, 사진보다 못한 장소들, 하다못해 나쁜 날씨까지.
사실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삶은 SNS에만 있듯이 상상 속 완벽한 여행도 편집된 사진과 여행기에만 있다. 그러니 여행을 끝까지 하려면 무던히 순간을 넘기고 순간을 즐기는 마음가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이 일상보다 나을 것이 없다. 남의 SNS만 보면 내 삶이 불행한 것처럼.
이러니 여행 중이나 직후 질문이 난감하다. '거긴 어때?' '좋았어?'라는 물음에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섞여있는 그 복잡함에 우물쭈물 대답한다. 반반이지 뭐.
그리고 다시 돌아와 여행은 과거가 된다. 생생한 순간이 희미해지고 부글부글 끓거나 팔짝팔짝 뛰던 느낌도 사라진다. 과거로 깊숙이 밀어 넣으면 뾰죡하던 감정들이 가라앉고 비로소 그리움이 드러난다. 여행 전의 설렘이 현실의 가지치기로 얻어진다면 여행 후 그리움은 숙성의 시간이 빚어낸 아련함이다. 그렇게 다시 나만의 여행이 된다.
같이 여행을 하더라도 서로 다르게 남는 이유는 익어가는 시간 때문이 아닐까? 같은 여행도 시간에 따라 남는 잔향은 계속 달라진다. 시간의 편집 과정은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는 마법이다.
그래서일까? 익어가는 시간을 건너뛰고 쓴 여행 글은 날이 선 채 뾰족하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곳곳에 묻어 난다. 정성껏 거른다 해도 시간이 정리하게 놔둬야 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거다. 결국 읽는 이의 눈에 거슬려 한 소리 듣는다. ‘글이 너무 뾰족해. 그 여행은 많이 힘들었나 봐’ 그렇게 덜 발효된 감정은 아무리 숨겨도 어딘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계로 보면 다수가 꼽은 여행의 가장 좋은 시간은 미래다. 설레고 들뜬 시간이겠다. 내게 여행은 과거의 시간이 더 좋다. 무르고 익어 내 것으로 만들어지는 순간들. 경험한 그 순간과는 또 다른 생각들이 버무려지는 순간들.
그럼 살아갈 땐 어떨까? 보통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에 집착한다. 정작 지나가지도 않은 시간과 이미 지나간 시간으로 현재는 없다. 그 현재가 같은 것으로 반복되면 그 또한 지루하다.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라는 말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리라.
인간의 시간은 순간이 아닌 연결된 일직선이다. 과거와 미래에 연결되지 않고는 현재가 없다. 순간이 없다는 것, 과거와 미래를 늘 인지하고 산다는 것은 '행복' 앞에서는 불행한 숙명이다.
인간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은 순간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매 순간은 끝없이 지연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순간 자체만을 즐길 수 없다.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로 그 순간 만의 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은 끊임없이 앞으로 뒤로 유예되어 버리고 현재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현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이라면 ‘오늘도 똑같은 산책길인가? 한 번쯤 다른 곳으로 좀 가 주면 안 돼? 그놈의 해변, 지긋지긋해! 그리고 제발 팽오쇼콜라 좀 그만 먹자! 하도 먹어 대니 내가 팽오쇼콜라가 된 것 같네!’라고 불평할 것이다. 그 불평조차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시간의 화살에 매료되고 혐오하기를 반복하면서, 우리 인간들은 그 혐오감으로 인해 시간의 화살에서 일탈하는 새롭고 다른 것들에서 기쁨을 찾는다.
철학자와 늑대 | 마크 롤랜즈
난 아직도 여행의 현재가 힘들다. 반복되어도 이건 마찬가지다. 오르내리는 감정, 복닥거리는 자질구레함,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 의연히 '행복하다' 할 수 없다. 나도 인간의 시간을 산다. 그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기엔 앞뒤로 연결된 미래와 과거가 크다. 그래서 가지치기된 미래와 편집된 과거를 부여잡으며 여행을 계획하고 정리할지 모른다.
누군가는 여행이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라 했다.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굳이 여행이 필요할까? 그리만 되면 일상이 여행이다.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망혜답편롱두운(芒鞵踏遍隴頭雲)
귀래소념매화후(歸來笑拈梅花嗅)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학림옥로(鶴林玉露) | 작자미상
봄을 찾아 짚신이 닳도록 헤매었는데 그 봄은 집 매화나무에 있었다는 얘기다. 나도 결국 돌고 돌아 일상을 지내는 방법을 배우느라 그 먼길을 다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