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살다보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en Feb 08. 2017

쉬운 세상 어렵게 살기

내가 싫은데 남이라고 좋을까?

짧게, 빨리, 쉽게


바쁜 세상이다. 그 세상의 문화, 스낵 컬처!!! 


짧게, 빨리, 쉽게. 사는 걸 단편 조각들로 채운다. 여기에 책이라니. 어림없다. 단락이 넘는 활자? 목에 걸린 고구마 같다. 글보다 사진을 달라한다. 한눈에, 노력 없이 훑고 싶다. 마치 '내겐 너를 봐줄 시간이 없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내 글이 길다면서 바로 덮는 지인도 있다. 읽었다면서 엉뚱한 질문도 날아든다. 그냥 훑은 거다. 그저 그 사람의 관심이 거기까지라 생각한다. 자기만의 주절거림, 성의 없는 던짐, 흥미 없는 내용은 나도 대충 무시한다. 


짧고 쉬운 걸 찾는 시대, 그럼 무절제한 나열과 주절거림은 줄어들까? 보통 선호하는 걸 자신도 하려고 하니. 과연 자신은 쉽고 짧게 정리할까? 글쎄다.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건 반대인 거 같다.



넌 짧게, 난 길게


지인이 사진을 쏟는다. 같은 접시, 그 접시에 회 한 조각인 사진 20여 개를 줄줄이. 마치 틀린 그림 찾기 같다. 좋은 식당에 신난 거다. 찍은 거 그냥 다 던지니 정리는 알아서? 근데 내가 사진을 달라고나 했던가? 난감하다. 


물론 신나면 '적당히'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무더기에 상대가 집중 할리 없다. 허공에 던진다고 할까? 문제는 이후 내용도 훑는다. 꼭 보게 하려던 거였다면? 최악의 방법을 쓴 거다.


단체 채팅방에서 약속을 정한다. 간단한 질문에 답이 두서없다. 모든 일정을 줄줄이 읊는다. 세세한 내용과 오락가락 가변성까지. 그래서 결국 된다는 건지 안된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이즘 되면 말하고 싶어 미친 거 같다. 


횡설수설로 정작 필요한 내용은 보는 이가 알아서 추려내라는 거다. 이게 반복되면? 그 사람 말이 시작될 때 조용히 덮는다. 어차피 정리는 내 몫이니. 다 끝나면 한 번에 하리라.


누군가는 사진으로 줄줄이 밀어 넣고 누군가는 요점 뺀 말이 늘어진다. 바쁘고 귀찮아서 긴 글은 덮고 짧은 글도 훑지만 정작 자신은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요약, 저절로 될까?


정리된 요약은 받긴 쉬워도 직접 하려면 어렵다. 맥락을 이해하고 대응도 예측하며 다듬어야 나온다. 맞다. 해봐야 는다. 더구나 남이 보게 하려면 요약까지 아니더라도 정리는 필수다. 안 하면? 당신도 조금만 길면 무시하거나 훑지 않던가. 나도 그렇다. 성의 없으면 조용히 덮는다.   


귀찮다. 사는데 지장 없다? 지장 있더라. 보증금 반환 문제로 집주인과 오간 지인의 문자를 봤다. 수 페이지에 걸쳐 오간 나만의 말들. 꼬투리 잡는 응대가 넘친다.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그러다 보니 실수한다. 내게 불리한 기한을 못 박는다.


듣게 하려면 상대를 움직일 내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은 성의를 보태야 한다. 손 봐서 정리한 몇 문장에 집주인이 움직였다. 미루던 보증금을 준단다. 하지만 지인이 홧김에 정한 그 불리한 기한까지다.

성의 없다면 냥이도 무시한다. 뭐래? 자던 잠이나 마저...

인지의 습관


꼭 책 읽고 글 써야 하는 거 아니다. 문제는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습관이다. 뇌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에너지가 적은 방향이랄까? 쉬운 경로로 간다. 그러니 해보다 안 하면? 지운다. 결국 하던 것만 하는 습관이 고착된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진다고 한다. 일면 맞다. 새로울 거 없으니 집중하지 않고 흘린다. 거기에 습관으로 계속 그리 살았다면? 더 날아간다. 기억력만큼은 자신 있다던 지인이 걱정될 정도로 멍한 걸 자주 본다. 저러다 나중엔 가장 원초적인 '좋다'와 '싫다'만 남을 거 같다.


기억력 따위? 없는 데로 살면 된다. 근데 살면서 남에게 꼭 전달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 꽤 도움된다. 기술로 마주하는 대신 메시지가 늘어난다. 누구는 인간미 없다 혀를 찬다. 달리 보면 서로 존중할 기회다.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버는 거잖나.


사람은 더디다. 최신 기술로 편리해져도 관계의 방법은 여전히 느리다. 그러니 나를 듣고 읽게 하려면? 쉬운 세상을 약간은 어렵게 살아야 한다. 최소한의 성의를 보태는 수고, 그 정도는 들여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기와 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