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딜레마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라고 느낀다. 고마워한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두려워서 아니면 막막해서 미처 들쳐보지 못한 마음의 자리를 누군가 살뜰히 드러내주면 덩달아 후련해지기 때문이다.
- 글쓰기의 최전선 | 은유 -
쓰다 보면 반응이 신경 쓰인다. 누군가 공감해주면 고맙다. 문제는 집착하면 자기 검열이 강화된다. 그때부터 쓰기가 두렵다. 좋아해 줄까? 이런 주제가 재미있나? 표현이 거친가? 보고 기분 나쁠까? 등등.
브런치를 훑다가 제목이 눈에 띄어 읽은 글이 있다. 쓴 이는 전에 쓴 글이 정보와 철학적 내용에도 공감도가 별로였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에는 공감도가 폭발했다는 거다. 그의 주제는 공감이였다. 브런치에서는 어떤 글이 흥하나랄까. 누구나 공감에 집착하나 싶어 웃었다.
공감의 비법? 모른다. 하지만 이전 글의 문제는 알 것도 같다. 현학적인 언어로 버무린 말들은 생각보다 쉽게 티 난다. 본인이야 뿌듯할지 몰라도. 소화되지 않은 남의 말을 옮기면 둥둥 떠있다고나 할까. 남의 말에는 자기감정의 폭발력이 없다. 진솔함이 결여된 글은 뭐랄까… 낚인 느낌? 헛웃음? 특히 쓰면서 읽는 사람이 꽤 있는 브런치에서 그런 글이 다가올리 없다.
댓글을 달았다. 개인 경험이어서 더 다가왔을거라는 내용으로. 답글이 왔다. 고맙지만 개별 경험이 공감을 끌 순 없다고. 인기, 공감. 중요한가 보다. 나도 놓지 못하는 그 공감. 그런데 쓰기의 방점이 정말 인기일까? 중요한 건 내가 정말 내 언어로 쓰는가. 나만의 고유한 글을 쓰고 있나가 아닐까.
글쓰기는 이미 정해진 상식, 이미 드러난 세계의 받아쓰기가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구성한 상식, 내가 본 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글, 그 사람만 쓸 수 있는 고유한 글이 나온다.
- 글쓰기의 최전선 | 은유 -
말이라고 다를까? 회사 동료 중 믿을만한 의견을 주던 이가 있었다. 어찌 보면 뾰족한 말들이지만 겉치레 없는 말에 꽤나 믿는 사람이었다. 서는 위치가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고 하던가. 자리가 올라가며 그 사람의 의견은 무뎌졌다. 어찌 보면 무난한 의견들. ‘일을 미워하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라는 식의 좋은 말들.
저런 말들은 자기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말들이 아니다. 어디선가 들은 좋은 말 중 상황에 맞는 말이 튀어나오는 거다. 그러면 듣는 이가 무릎을 치며 그거다 싶을까? 아니다. 그런 말들이 나올 때 속으로 외쳤다. ‘아니 무슨 개소리? 넌 그 말이 뭔지 알고나 하니?’ 맞다. 내겐 무용지물이었다. 명언집에 나온 말을 듣자고 의견을 구한 건 아니니까.
말에도 글에도 그 사람만의 폭발력이 나와야 다가온다. 눈길을 끄는 주제, 화려한 수사, 탄탄한 문장력이 넘을 수 없는 벽. 진솔한 자기표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