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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n 11. 2017

삶의 양면성

멀리서 보면 내 삶도 코미디일까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


‘사는 거 정말 힘들어. 하긴 다들 힘들지’ 이런 말 한 번쯤 듣고 해본다. 다들? 아닐 걸. 내가 가장 힘들걸? 남이 힘들겠구나 싶은 건 상상력이 동원된 시뮬레이션이고 내 손톱 밑에 가시는 직접 체험이다. 같을 수 없다. 죽을 만큼 힘들다고? 맞다. 당신이 제일 힘들다.


이럴 때 보통 주위 사람을 찾는다. 문제는 내가 남을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듯이 남도 그렇다. 상상된 공감에는 나만의 독특함과 개별성이 없다. 그러니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이해? 나와 같으리라는 착각? 내려놔야 한다. 그거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거다.


이러니 남의 조언은 일반적이고 진부하다. 원래 그렇다. 잘 모르면 다수 의견을 따르잖나. 더구나 ‘내’가 감당하지 않을 상황에 극단적인 조언? 난 절대 안 하지만 너는 한 번 해보라는? 당신을 아끼는 이는 그런 말 안 한다. 그러니 아무리 그 사람이 좋고 그 생이 맘에 들어도 그의 조언이 내게 맞춤형 일리 없다.


내겐 맘을 뒤흔든 조언이 있다? 그건 당신의 해석 덕분이다. 같은 말, 같은 의도라도 상황과 해석에 따라 늘 달라진다. 웃프지만 그의 의도는 당신이 받아들인 것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이것이 제삼자 입장에서 볼 때 인생이 코미디가 되는 상황이다.


가까이서 보면 개개인은 죽은 만큼 힘들지만 멀리서 보면 이런 코미디도 없다. 관계로 흥하는 SNS에서 흔히 보지 않던가. 거품 물고 성토한 그 사람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열심히 누른다. 내게 살아갈 힘을 주는 말 한마디가 실은 뒤에서 나를 비난하던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러면 안 된다? 남을 믿지 말자? 아니다. 흠결 없이 매 순간 일관된 삶은 위인전에만 있다. 그 사람을 현실로 불러오면 그도 같으리라. 일관성과 진전성은 자기 시각으로는 볼 수 없다. 여행 동행자가 요거트 열량으로 냉장고 앞에서 30여분을 보내는 걸 봤다. 그 분은 콜라를 먹는 내게 간접 잔소리를 늘어도 놨다. 그리곤 다음 날 조식에서 설탕과 쨈이 범벅된 도넛을 맛있게 먹더라. 생의 한 단면을 잘랐을 때 나도 이럴거다. 남의 흠결은  잘보인다. 내 삶은 복잡하고 어렵지만 남의 생은 쉽고 단순하니까.


즉, 사람은 자기 합리화의 천재다. 우린 늘 오락가락하지만 자신은 늘 일관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내 모습이고 당신 모습이다. 비극을 멀리서 볼 때 코미디로 만드는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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