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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Aug 10. 2017

당신의 치타델레는?

베트남 베다나 라군

괴테는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자아란 개념을 치타델레(Zitadelle)라 명했다. 달리 말하면 자기만의 공간되겠다. 이미 그런 공간이 있다 해도 ‘이런 곳?’이라며 이상적인 장소를 꿈꿀 수도 있을 거다. 본 것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보고픈 것을 그리는 사람도 있는 거니.


살다 마주친 궂은날에 ‘아.. 거기’라고 떠올릴 곳을 찾는 것, 그 또한 내 여행의 목적이다. 시야 끝까지 펼쳐진 하늘, 매연과 소음에서 벗어난 숲, 나무 사이 산책길. 난 이런 곳을 꿈꾼다. 어딘가 있을 거고 몇 군데 찾기도 했다. 멀고 비싸니 떠나기까지 꽤 망설이게 하는 문제가 있지만. 가까운 곳에 있다면 훌쩍 짐 싸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베트남을 찾는다. 다낭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 베다나 라군(Vedana Lagoon). 지금까지 찾은 최적의 장소다.


하늘과 함께 하루를...


해돋이와 해넘이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던가? 아니, 하늘 한 번 올려다본 날이 얼마나 될까? 밝아오면 아침으로 어두워지면 저녁으로, 하늘 한 번 안 보고 산다. 애써 찾지 않은 이유도 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고층 건물에 시야가 막힌다. 조각나 기워진 하늘은 그저 건물의 일부 같다.


하늘과 나 사이 빈 공간으로, 지평선과 수평선까지 고스란히 펼쳐졌다면? 지금보단 훨씬 많이 보며 살지 않았을까. 사는 곳에서 못해 본 하늘과 함께 하루를 여닫는다.

최상의 날이 아닐때도 이리 하늘이 물든다

아침, 저녁 하늘을 보니 해돋이와 해넘이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비슷한 톤으로 물든다. 생의 시작과 끝도 이러려나. 바로 쨍하게 시작하지 않고 서서히 물들며 시작되고 마찬가지로 끝날 때도 서서히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시작과 끝은 맞물려 있으니 당연하려나. 물드는 하늘과 함께 하루를 열고 닫는 건 차분하게 생각이 많아진다. 꽤 괜찮은 경험이다.


고즈넉한 시간


살수록 점점 예민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소음이다. 사는 곳에 채워진 소리는 자동차 경적, 부수고 뚝딱대는 공사음, 왁자지껄한 목소리, 갖가지 알림음까지. 소리가 아닌 말대로 소음이다. 시끌벅적해야 사람 사는 곳? 글쎄다. 때론 저 소음 사이에서 제정신으로 사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지 싶다.

두 번째 날 발코니에 앉았다가 문득 낯설다. 너무 조용하다. 없어진 소음들.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로 채워진 공간. 이 소리 속에 앉아 있으니 괴팍한 나라도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자연이 내는 소리는 신경을 긁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인간이 낸 소음이라곤 새벽녘 통통배 소리가 전부다.

물론 사람은 도시에 모여 살아야 된다. 나도 도시에 살아야 한다. 길들여진 편의를 무시하기 어려우며 그나마 모여 살아야 다른 생들에게 이롭다. 사람이 들어서면 그건 다른 생명에겐 멸종의 증후일 거다. 인간은 대멸종의 대가니까. 바라지만 할 수 없고 하면 안 된다 하면서도 난 사람이 파헤쳐 만든 이 곳에 들어와 있다. 뭔가 아이러니하다.


자전거로 산책을


여긴 꽤 넓다. 덕분에 숙소마다 자전거가 있다. 물론 대부분은 버기를 불러 이동하더라. 그러니 자전거를 타는 내내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롯이 혼자 한산한 나무 사이 길을 달리는 거 꽤 괜찮다. 출근 길이 이렇다면 매일매일 출근하겠다.


서울에서 자전거? 절대 안 탄다. 길이 좋아 타는 거지 스피드나 자전거가 좋은 건 아니니까. 강변, 공원에도 호젓한 이런 길은 없다. 어딘가 있단들 그곳까지 가는 길이 지옥이려니와 그곳엔 또 무리들로 넘친다. 호젓함과 고즈넉함은 도시에서 꽤 찾기 어려운 조건이다.


다시 간다면...


물론 난 다시 올 거다. 단, 휴가철만은 사양하겠다. 최적의 장소를 최악의 시기에 찾은 덕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날씨? 아니다. 최적의 시즌은 아니더라도 운 좋게 꽤 맑았다. 여행 운은 날씨도 물가도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가깝게는 옆에 있는 사람부터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여행 운을 좌우한다.


구명조끼를 입은 여자가 남친에게 매달려 괴성을 지른다. '발이 안 닿아.. 너 자꾸 그리 장난치면 네 예비장모에게 이를 거야' 무려 한 시간 째다. 그래 이 곳 풀장은 무지 깊다. 무려 1.5m 깊이고 넌 구명조끼까지 입었다. 많이도 무섭겠다. 그리고 예비 장모? 니 엄마? 아니 저건 무슨 한국말이지 싶다. 저리 부여잡으면 질려서 도망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조금 지나니 애기가 소리 높여 운다. 무서운데 아빠가 수영을 배워야 한다며 굳이 어른 풀장에 밀어 넣는다. 못 보셨나? 여긴 유아풀도 있는데. 휴가를 와서도 뭘 가르쳐야 되나 보다. 아기 울음소리보다 더 큰 부모 목소리. 분명 말 배울 때 발성법을 잘못 익히신  듯하다.


풀장에서 괴성과 고함을 지르는 저분들, 커플부터 가족까지 다양한 그룹이 한국에서 왔다. 여름휴가철인 거다. 어떤 물웅덩이도 워터파크로 만들고야 마는 저 능력이 놀랍다. 놀이는 꼭 괴성을 지르며 해야 된다는 듯, 옆 사람들 따위는 사뿐히 무시하는 저 대담함도 경이롭다.


그리보면 인종이나 국가와 상관없이 어느 곳에나 비슷한 사람들은 꼭 있다. 이것도 다양성이라 해야 되나? 맞다. 우린 우리가 욕하는 옆 나라 사람들과 정확히 같다. 무례하며 시끄럽고 떼 지어 다닌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많아서 눈에 더 잘 뜨일 뿐이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이 좋은 날씨, 평온한 풍경을 앞에 두고 옆에선 워터파크가 한창이다.


다행히 풀장과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시끄러운 무리들은 없다. 그들은 자전거 산책길에도 해돋이와 해넘이 시간에도 안 보인다. 넓은 부지와 적은 객실 덕에 사람 자체를 마주칠 일도 없다. 그분들 덕에 난 맘에 드는 하루 시작의 조합을 찾았다. 해돋이 보고 자전거 산책과 수영.

여름이 아닌 철에 찾기로 한 건 쏟아지는 별 때문이다. 저녁만 되면 몰려든 구름 덕에 4일 내내 별을 못 봤다. 꽤 아쉽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도시는 밤에도 빛으로 휘감은 덕에 별 빛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사는 곳에서 지워진 별을 보러 꼭 다시 오리라.



나와 너는 다르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나 여행 장소 추천해 달라할 때 난감하다. 비슷하게 SNS에서 보고 갔는데 별로라는 말도 많다. 우린 서로 비슷하지만 그만큼 또 많이 다르다. 이 곳이 최고이라는 건 당연히 '나'에게 한정된 말이다. 당신에겐 아닐 수 있다. 실망이 예상되는 분들 미리 꼽아본다.

   

넘치는 시간, 사라진 외부 자극 앞에 무료함으로 당황하는 이들에겐 따분한 감옥이다. 액티비티? 없다. 그나마 두 곳(풀장과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사람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짧게 머문다. 그 이상 지나면 지루해질 걸 알기 때문 아닐까.  시간 보내는 거 익숙지 않은 분들 힘드실 거다.


고립된 위치다. 대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꽤 들어온다. 아니면 배로 들어와야 될 거다. 당연히 현지 물가보다 꽤 비싸다. 베트남은 꼭 저렴해야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졌다면 적잖이 당황할 거다. 먹고 마실 때마다 계산기 두드려야 직성이 풀리면 번화한 곳으로 가는 것이 맞다. 저렴하고 동시에 조용하며 친절하고 관리도 잘 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벌레!!!  숲 속, 물가엔 당연히 벌레가 많다. 이거 죽어도 적응 안되면 머무는 동안 스트레스가 상당할 거다. 사실 나도 얘들과 친하지 않다. 처음엔 불편하더니 하루 만에 적응되더라. 나가 살라고 적당히 내보낸다. 원래 여긴 그들이 사는 곳이다. 내가 아니고.

여행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이 있다. 대부분은 잊히고 흐릿해져도 몇몇 장면과 장소는 선명하다. 마주쳤던 사람들의 불운을 넘길 만큼 이 곳은 내겐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살다 문득 '아... 거기'라며 꼭 다시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곤 가볼까라는 생각이 부담 없이 들겠지. 그런 의미에서 운 좋은 여행으로 기억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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