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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대 Sep 03. 2021

그때 그 말

처음 마주한 거짓말 "종대가 불냈데이"

처음 마주한 거짓말 “종대가 불 냈데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겨울, 또래 친구 머슴아 한 명, 가시나 한 명과 불장난을 모의했다. 성냥이 필요했다. 우리 집이 가장 가까웠다. 부엌에 몰래 들어가 성냥을 훔쳐 나왔다. 동네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을 뒤쪽에 있는 산 아래 밭에서 모닥불을 피워 놀기 시작했다. 산불을 의식하며 불을 작게 피워 불놀이를 했다. 작은 불이 시시했던 것일까! 가시나가 불타고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빼 들고 산과 연결되어 있는 밭둑으로 걸어갔다. 위험을 직감하고 소리를 질렀다.

“00아 산불 난다 하지 마라”

“괜찮다”

말릴 새도 없었다. 가시나가 밭둑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바람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휘익~’ 소리를 내며 몰아쳤다. 밭둑 불은 금세 산불로 번졌다. 연기가 하늘로 피워 올랐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산불이 났다는 마을 방송이 들렸다. 도망 칠 생각조차 못했다. 어쩔 줄 몰라 근처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산불을 끄기 위해 몰려왔다. 산불을 낸 가시나가 자기 엄마에게 달려갔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종대가 산불 냈데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너무 당황하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산불이 난 산을 동네에서는 ‘똥뫼’라 불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큰 산과 떨어져 있는 똥 덩어리 모양의 조그마한 산이라 산불은 이내 진화되었다. 산불을 낸 방화범은 아니었지만 성냥을 훔친 원죄가 있어 죄의식이 있었다. 마을 어른들에게 벼락같은 꾸지람을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종대 네가 산불 냈나?”

“아니라예 저는 성냥만 가져 왔어예!”

한 번만 더 물어오면 가시나가 산불을 낸 범인이라는 말을 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앞으로 불장난하지 마래이” 

가시나가 산불 냈다는 말도 못 했는데 어른들의 꾸지람은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누명을 벗지 못해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성냥을 훔친 죄가 있어 집에 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동네에서 시간을 때웠다. 날이 어두워져 집에 들어가야 했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 골목에서 엄마 눈에 띌 때까지 어슬렁거렸다. 엄마가 나를 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머뭇거렸다. 엄마가 형에게 시켰다.

“00아 종대 델꼬 온나”

형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갔다. 빗자루 몽둥이를 든 엄마가 달려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안방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상했다. 아무도 산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저녁상이 들어왔다. 기가 죽어 밥상 근처에 갈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불렀다. 반찬을 챙겨주시며 밥을 먹으라고 했다. 속으로 ‘어 이게 아닌데 크게 혼이 나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한술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그제 서야 긴장이 풀리고 막혔던 말문이 터였다. 오늘 산불은 가시나가 냈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이야기를 막 쏟아냈다. 가족들에게 말하고 나니 억울함이 쫌 해소되었다.    


“종대가 불냈데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거짓말과 누명이었다. 너무 당황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른들이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거짓말을 한 가시나의 말을 더 믿는 것 같아 억울했다. 다행히 어른들에게 큰 꾸지람을 듣지 않아 상처로 남지는 않았다. 누명과 상관없이 산불이라는 엄청난 사고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꾸지람을 하지 않는 어른들의 침묵이 이상했다. 어른들은 산불 방화범이 누군지 별 관심이 없었다. 산불에 크게 놀란 아이들 혼이 나갈까 봐 혼내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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