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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대 Sep 20. 2021

그때 그 말 4

누명의 여파

누명의 여파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옆 짝지가 돈을 잃어버렸다. 짝지는 나에게 한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담임 쌤에게 일러바쳤다. 

“쌤예 종대가 내 돈 훔쳐 갔어예”

“내가 언제 훔쳐 갔노”

낮은 목소리로 대응을 했지만 이미 쌤 귀에 들어간 옆 짝지의 고자질을 되돌릴 수 없었다. 

“종대 니 00돈 훔쳐 갔나?”

“아니예 안 훔쳐 갔어예!”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소용없었다. 쌤은 내 자리로 다가와 책가방을 책상 위에 올리라고 했다. 책가방을 올렸다. 쌤이 책과 공책을 꺼내고 가방 속을 이 잡듯이 뒤졌다. 돈이 나오지 않았다. 쌤이 책상 아래 수납공간에 손을 넣어 뒤졌다. 돈이 나올 리가 없었다. 쌤이 “종대가 돈 안 훔쳐 갔네”라고 말하며 이쯤에서 끝낼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돈을 훔치지 않았는데 왜 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앞으로 나갔다. 쌤이 교탁 옆에 서라고 했다. 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책상 첫 줄을 경계로 구경꾼으로 자리 잡았다. 난 창경원 원숭이 신세가 되었다. 쌤의 공개 조사가 시작되었다. 바지 주머니를 밖으로 꺼내라고 했다. 바지 주머니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나올 게 없었다. 윗옷을 벗어 뒤집어라 했다. 윗옷을 벗어 뒤집었다. 나올 게 없었다. 바지를 벗어서 뒤집어라 했다. 바지를 벗어 뒤집었다. 나올 게 없었다. 난닝구를 벗어 뒤집어라 했다. 난닝구를 벗어 뒤집었다. 나올 게 없었다. 빤스만 남았다. 이제는 진짜 끝나는 줄 알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옷을 챙길 준비를 했다.

“빤스 벗어라”

내 귀를 의심했다. 여자 선생님 입에서 나온 진짜 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쌤 얼굴을 쳐다보았다.

“빤스 벗어라” 

진짜였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반 친구들의 모든 눈이 내 빤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벗을 수 없었다. 초 2학년이었지만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은 있었다. 무너질 수 없었다. 쌤이 큰 소리로 말했다. 

“종대야 빤스 벗어라” 

몇 번을 재촉했지만 난 버터야 했다. 쌤이 다가와 빤스를 강제로 벗길까 봐 고무줄 있는 부분을 꽉 잡았다. 

“종대야 빤스 털어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빤스를 탈 탈 털었다. 먼지 말고 나올 게 없었다.

“들어가라”

이제야 끝이 난 것 같았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실망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에이 없네”    


나는 돈을 훔치지 않았다. 빤스까지 탈 탈 털렸어도 십 원짜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도 반 친구도 종대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종대가 도둑놈이라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했다.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옆 짝지의 돈 분실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세월이 흘러 20대 초가 되었다. 바지나 팬티를 입지 않은 부끄러움 때문에 밖에 다니지 못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 꿈속 스트레스가 현실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왜 아랫도리를 입지 않은 꿈을 계속 꾸는 것일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해결해야 했다. 알지 못하는 기억 속 어떤 사건이 원인일 것이라 판단되었다. 가까운 기억부터 먼 기억까지 하나하나 복기하기 시작했다. 초 2학년 그날 그 사건과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0 같은 0! 범인이 아니라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야지”   

그랬다. 그때 그 사건이 나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20대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원인을 밝혀내자 아랫도리를 입지 않은 부끄러운 악몽은 멈추었다. 


“빤스 벗어라”

의식 세계에서는 잊혔지만 무의식 세계에서는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던 사건과 말의 기억이었다. 반 친구들이 빤히 지켜보는 앞에서 초등학교 2학년이 겪어야 했던 수모를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선생님 말 한마디! 학생들 미래가 달려있다. 나는 스스로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의식 속 기억 때문에 오늘도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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