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말하는 동사는 '기다리다'가 아닐까
봄을 좋아한다. 추워서 웅크렸던 몸과 마음이 노곤노곤 풀어지고, 옷차림이 가벼워지며, 나뭇가지에 초록이 맺히는 그 생기 넘치는 계절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는 봄 내내, 얼마쯤 간질거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다만 봄이라는 그 사실 하나로 때론 모든 게 다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기분이 들떠 밖으로 나가는 횟수도 늘어난다. 거리로, 산으로, 공원으로, 교외의 미술관과 한강으로 시간만 되면 향한다. 거리는 따스한 기운에 젖어 있고, 어디선가 흩날려온 민들레 홀씨 같은 게 공기 중을 반짝이며 떠돈다. 그런 날이면 어디까지고 걸을 수 있을 것 같단 기분이 든다.
나는 걷는다. 구경하고, 감탄하고, 웃고, 무언가를 와구와구 먹고, 걷는다. 장소는 매번 달라지지만 대체로 서울이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종로로 빠질 때에도 있고, 인사동과 안국동, 혹은 삼청동과 효자동, 또 어느 때는 언덕배기 길을 한참 올라가 부암동에도 간다. 완만한 산에 모인 오래된 동네는 그만의 정취를 가지고 봄을 맞이한다. 궁궐을 에워싼 키 큰 나무들은 초록의 잎을 드리우고, 오랜 집들의 담벼락 사이사이에 핀 민들레나 잡초나 이름 모를 꽃들은 다소곳하게 제 존재를 드러내며, 경로당 앞 정자엔 바둑을 두는 노인들이 나와 앉아 있고, 봄나들이를 나온 유치원 꼬마들은 하얀 눈송이 같은 손으로 서롤 꼭 부여잡고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그건 모두 봄이다. 만물에 봄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봄 구경을 하다 배가 고프면 백반집엘 간다. 요즘은 흔하지 않다지만 그럼에도 옛 동네엔 제법 있다. 간판은 낡고, 구불구불 휘어진 골목 안에 위치한, 식당이란 말보다 밥집이 더 어울리는 장소들.
오랜 시간 밥지어 남을 먹여온 식당주인의 손은 두꺼비처럼 두텁고, 말엔 군더더기가 없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소복이 담긴 쌀밥과 몇 가지 반찬, 그리고 뜨끈한 국-달래가 들어간 된장찌개가 최고다-을 먹으면 사람 산다는 게 뭔가 싶어 진다. 가난한 이건 부자이건 밥 벌어먹고사는 이치는 매한가지인데, 우린 왜 이렇게 고달픈가. 뭐 그런 인간사 유구한 고민. 그러나 지금 눈앞에 놓인 나물이 너무 맛있고, 된장국에 들어간 달래는 또 너무나 향긋하여 올봄은 잘 나리라 시답잖게 넘기면서. 뭐 그런다.
봄이 온다면.
나는 그냥 그렇게 걷고, 먹고 싶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사랑하는 이와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들로 킥킥대며 봄의 따스한 볕에 나를 내다 말리고 싶다. 봄은 어쩌면, 그러라고 만들어졌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