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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ul 09. 2021

문맹이자 이방인으로 살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자전적 이야기> 독서 노트


내가 외국에 나와 산지도 벌써 8년째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럼 그곳 언어를 잘하시겠네요" 나는 입을 네모나게 만들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지도 않아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의 외국어 실력에 대해 성찰 아닌 성찰을 하게 된다.


나의 외국어는 굉장히 단순하다. 쉬운 표현과 몇 개의 단어로 돌려 막는다고 보면 된다. '편협하다'는 단어를 몰라서, '그 사람은 이해를 잘 못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각해'라고 하는 식이다. 맛있어, 잘됐다, 잘했어, 좋은데? 는 하나의 단어로 퉁친다. 경상도 사투리의 '쫌!'이나, 일본어의 도모(どうも)와 같은 이치랄까. 물론 이 때는 미묘한 표정 변화를 곁들이기도 한다. 게다가 나는 이곳에서 지극히 이방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말을 완벽하게 못 해도 웬만한 현지인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한다. 딱히 불편함이 없으니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안 든다. 그러니 8년을 살아도 외국어 실력이 맨날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다.






스위스에 도착하고 5년 후, 나는 프랑스어로 말을 하지만 읽지는 못한다. 나는 다시 문맹이 되었다. 네 살부터 읽을 줄 알았던 내가 말이다.

p.71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자전적 이야기>는 외국어(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책을 냈던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헝가리에서 나고 자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혁명을 피해 스위스의 뇌샤텔 지역으로 쫓겨간다. 그곳에서 낮엔 시계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어린 자식을 돌본다. 함께 스위스로 건너온 지인들이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바스러지고, 그리움에 바짝 마른 정신적 사막을 거니는 사이사이, 그녀는 적(敵)의 언어를 꾸역꾸역 삼킨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뛰어난 3부작 소설을 펴낸다. 그것도 프랑스어로!





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요즘 같이 번역이 쉽게 되는 시대에 살았더라면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텍스트를 입력하면 불과 몇 초만에- 아니, 사진만 띡 찍어도 알아서 문자를 발라내 척척 번역해주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고생해서 언어를 익히지 않아도, 글을 해석하는데 큰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이 문장을 쓰고 어쩐지 스스로가 창피했다)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는 자랑스러워하시지만 나의 독서 병은 대개의 경우 비난이나 경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매일 읽기만 해." (…) "저건 게으른 거지", "쟤는 ……을 하는 대신에 읽기만 해.", "더 실용적인 것은 아주 많잖아. 그렇지 않아?"

p12. '시작'





하지만 감히 생각하건대,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면 그래도 프랑스어를 공부했을 것 같다. 스위스 국경을 몰래 넘을 때 그녀는 가방 하나에 사전을 담아 갔다. 짐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전이라니. 읽기 위해서, 알기 위해서, 느끼기 위해서- 그리하여 살아있기 위해서 그녀는 '언어'를 선택해 가져 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에게 활자란 중독의 차원을 넘어 떼어낼 수 없는 자신의 일부와도 같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서라는 치유되지 않는 병에 걸린' 것이다.




"모국어가 가진 문법 규범과 언어 체계 안에는 결코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고 발견해내는 순간. 그것은 외국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끝내 경험할 수 없는 마법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 <문맹>의 옮긴이 백수린의 말 중에서-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책을 읽진 않는다. 문학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행간에 스며든 작가의 생각과 그가 빚어낸 세계를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더 넓고 깊은 세계를 헤엄칠 수 있다. 그렇기에 최 씨 일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무려 열여섯 권에 걸쳐 읽고(박경리作 <토지>), 고작 몇 줄의 시를 통해 울기도, 웃기도, 위로받기도 하는 것이다. 하물며 외국어를 알게 된다면 그 세계는 또 얼마나 넓어지겠는가.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가 건네줄 수 없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울림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읽고, 나는 게으름에 발을 푹 담근 나의 외국어가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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