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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주 May 04. 2023

님아, 제발 불을 켜지 마시오.

상처로 성장하는 법


탁, 불이 켜졌다. 과거에 받았던 상처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다. 그중 남편과 육아로 갈등하면서 겪었던 상처들을 골라냈다. 



"육아에 있어서는 애엄마를 믿어"


사람들 앞에서 남편이 종종 하던 말이다. 자신만만하게 말하길래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 행동은 전혀 다르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때 느낀 배신감이란.......



"아빠가 아이에게 (상황)을 하고 출근하면 그걸 수습해야 하는 내가 힘들어. 그러니까 하지 마."


라는 호소의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동의하는 대답이나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틈이 보이면 언제든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행동을 아이에게 했다. 


그러면 일과가 틀어졌다. 나는 이걸 바로잡기 위해 또 애써야 했다. 지겨웠다.


손님이 우리 집에 놀러 온 날, 아이가 씻을 시간이 되었다. 내 몸은 자동적으로 움직여졌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씻기지 마."



어제와 오늘이 다른 점은 뭐지? 손님의 있고 없고 차이인가? 의문은 들지만 내 몸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지인이 말했다.


"애가 목욕하면 노곤해져서 잠을 잘 자긴 하지."


"그럼 씻겨."



남편은 육아에 관해서 애 엄마를 믿지 않는다란 명제가 증명되었다.




토요일, 축복이는 열이 났다. 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밥도 잘 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잠깐 괜찮아졌는지 도넛 하나를 먹었다. 그리고 체했다.


괴로워하는 아이. 단단히 아픈 것 같았다. 그래서 밀가루 음식을 금지시켰다. 아픈 아이는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잠깐 괜찮아지면 면 요리를 못 먹는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식욕이란 이런 것이지. 난 이해했지만 빨리 낫고 먹자고 했다. 그게 나으니까!


일요일 저녁, 좀 괜찮아진 축복이는 우동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안된다고 했는데 남편은 밥을 먹고 우동을 조금 먹는 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더 반대를 하고 싶었지만 멈추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먹어도 탈은 없겠지.'

이게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리고 우동을 먹였다.


월요일 아침, 속이 안 좋다고 밥을 잘 먹지를 못했다. 기운이 없고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어제 우동을 못 먹게 했어야 했는데...


그때, 과거에 겪었던 상처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거기서 날 뭘 찾고 싶었던 걸까? 남편에 대한 원망? 나약해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 과연 무엇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약한 척을 했을까? 이걸로 내가 얻어낸 것은 뭘까? 아무것도 없고 바뀔 것도 없는데 나약함을 유지한 이유는 뭘까?


상처를 파헤칠수록 아팠고 무기력하게 되었다. 모든 걸 멈추고 감정을 정리해야 함을 깨달았다. 정리하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제일 약한 땡큐에게 엄하게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잠시 쉬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어린 땡큐는 보드게임을 하자고 보채었고 나는 화를 냈다. 소리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다짐했건만.... 무능력까지 추가되었다.


머릿속에서 나쁜 생각들이 돌아다니며 기분 나쁘게 간지럽혔다.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지금 당장 타임아웃을 해야 한다. 그동안 아이들은 누가 지키지?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든 나의 행동에 기분이 나빠져서 침대에 자빠져 있는 남편이 보였다.



"난 지금 너무 괴로워. 그러니 가서 애들하고 뭐라도 좀 해. 감정만 정리되면 내가 할게."

괴로움에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부탁했다. 남편은 거실로 나갔다.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안되니까 눈물만 흘렀다. 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 감정이 가라앉았음을 알 수 있었다.


방문 너머로 땡큐의 목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나가보니 남편은 거실 소파에 잠들어있고 축복이는 방에 누워있고 땡큐는 혼자 역할극을 하고 있었다.



나는 괴롭고 슬프고 아파도... 우리 아이들을 지키려면 육아를 해야 하는구나.




나에게 주어진 엄마로서의 책임이 있다. 아이들이 살면서 꼭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기초생활습관을 잡아줘야 한다. 변화하는 아이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성숙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성장하면서 다방면으로 관계를 쌓아야 한다.


남편에게 잘한다는 인정과 수고한다는 격려, 함께 잘해보자는 협력을 바랐다. 그것이 무엇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힘겹고 슬프고 무거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아이들을 향한 사랑? 아니.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흔들릴 때는 잠시 쉬어도 된다는 것, 돌아왔을 때 그 자리에서 다시 나아가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돌아온 그 자리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이 있어준 것처럼 말이다.



"축복아, 엄마가 힘들 때 지켜줘서 고마워."

내가 힘들 때 우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축복이었다. 그 작은 아이가 더 작은 아이를 단속하느라 애를 썼다. 본인도 몸이 안 좋으면서...


장난스럽게 화해를 시도하는 남편에게 단호함을 보이며 내가 힘들다고 할 때는 아빠가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물어봐도 알았어라고 말할 뿐, 그 속내는 내가 알 수 없다.


밝은 곳에서 나의 상처들을 다시 본다. 남편을 향한 원망 속에 숨겨둔 나약함이란 핑계를 꺼내어 말한다.



이제 이 핑계는 필요 없어. 난 스스로를 책임지기로 했거든.


상처를 통해 책임을 찾았다. 잘 아팠네.


남편에게는 엄마가 잠시 쉴 때 김남매를 돌보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빠가 되기를 바란다. 감정을 정리하고 돌아올 아내를 믿고 잠시동안 기다리면서 버텨주면 좋겠다. 이 소망이 이루어질까?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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